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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역사' 차범근축구교실 존폐 위기…훈련장서 쫓겨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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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출범해 34년 역사를 자랑하는 차범근축구교실이 훈련장 입찰 경쟁에 밀려 운영을 중단한다. 연합뉴스

1988년 출범해 34년 역사를 자랑하는 차범근축구교실이 훈련장 입찰 경쟁에 밀려 운영을 중단한다. 연합뉴스

지난 1988년 국내 최초로 유·청소년 전용 축구 교육 기관으로 출범해 34년 간 역사를 쌓아 온 차범근축구교실이 갑작스럽게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 1997년 이후 23년 간 훈련장으로 활용해 온 공간을 내주게 됐기 때문이다.

차범근축구교실은 지난 16일 홈페이지와 SNS를 통해 “서울시 한강사업본부의 축구장 사용 허가 기간이 연장되지 못함에 따라 부득이하게 이촌축구장에서의 수업을 종료한다”면서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차범근축구교실 지도자들과 임직원 역시 말로 형언할 수 없는 아쉬움과 상심에 힘들 뿐”이라 알렸다.

차범근축구교실은 지난 1988년 출범해 유소년 선수 육성을 시작했으며, 지난 1997년 이촌축구장에 터를 잡고 현재까지 운영해왔다. 2005년엔 현재와 같은 4개 면의 크고 작은 그라운드와 관리동을 짓고 전문적인 선수 육성 인프라를 갖췄다. 이후 차범근축구교실측은 해당 시설을 서울시에 기부채납하고 공개 입찰을 통해 계약을 연장하는 방식으로 운영해왔다.

차범근축구교실 운영 중단을 알리는 공고문. 사진 차범근축구교실 인스타그램

차범근축구교실 운영 중단을 알리는 공고문. 사진 차범근축구교실 인스타그램

갑작스럽게 운영 중단을 발표한 건 최근 공개 입찰에서 낙찰 받지 못해 이촌축구장 사용 권한을 잃었기 때문이다. 입찰 경쟁에 나선 A법인이 감정가(9700만원)의 3배에 이르는 3억50원을 써내 차범근축구교실(응찰가 2억5300만원)을 제치고 해당 공간의 향후 사용권을 확보했다. A법인은 추후 비슷한 형태의 축구 아카데미를 운영할 계획을 갖고 현재 지도자와 직원을 모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차범근축구교실이 장소를 옮겨서라도 기존의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이러니컬하게도 매머드급 규모 때문이다. 현재 이촌축구장에서 교육 중인 유소년 회원은 1400명 안팎인데, 이들이 기존 스케줄을 유지하며 축구를 배울 대체 공간을 당장 구하기가 어렵다.

축구교실 관계자는 “급히 다른 축구장을 수배해 일부 수강생만이라도 교육을 재개하는 방식을 검토했지만, 형평성 측면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면서 “일단 축구교실 운영을 중단한 뒤 체계적인 검토와 준비를 거쳐 다음을 모색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9년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을 수훈한 차범근 감독(오른쪽). 연합뉴스

지난 2019년 독일 정부로부터 십자공로훈장을 수훈한 차범근 감독(오른쪽). 연합뉴스

차범근축구교실은 1980년대 독일 분데스리가 무대에서 최고의 공격수로 명성을 떨친 차범근 감독이 사명감을 갖고 출범한 축구 교육기관이다. 현역 은퇴 직후 독일의 여러 명문 클럽이 앞다투어 코치직을 제의했지만, 모두 고사하고 즉시 귀국한 것 또한 독일의 선진 육성 시스템을 한국 축구에 이식하겠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현재는 유명 축구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운영하는 축구교실이 흔하지만, 차 감독이 차범근축구교실을 개설할 당시엔 국내 축구계에서 ‘획기적인 시도’로 주목 받았다. 차 감독은 과거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축구교실 출범 초기엔 ‘내 선수들을 (차범근에게) 빼앗길지 모른다’고 우려한 기존 학원팀 감독들의 견제를 받기도 했지만, 이후 차츰 오해를 풀고 공생·협력 관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면서 “한국축구를 이끌 수많은 유망주를 배출한 것에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차범근 감독은 제34회 차범근축구상 수상자들과 무주에서 합동 훈련을 시행하는 등 한국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 팀 차붐

차범근 감독은 제34회 차범근축구상 수상자들과 무주에서 합동 훈련을 시행하는 등 한국 유소년 축구 발전을 위해 애쓰고 있다. 사진 팀 차붐

관련해 축구계 관계자들과 학부모들은 “차범근축구교실이 이대로 문을 닫는 불상사가 없도록 해결 방안을 다함께 모색해야한다”는 반응이다. 한 축구인은 “차범근축구교실은 한국 유소년 축구 아카데미의 역사이자 상징 같은 팀인데 갑작스럽게 운영을 중단하게 돼 마음이 아프다”면서 “문화체육의 유산을 보전한다는 취지에서도 관계 기관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범근축구교실 관계자는 “차범근 감독님은 30년 넘게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축구교실을 운영하며 한국 풀뿌리 축구 성장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남다른 분”이라면서 “본의 아니게 축구교실 운영을 중단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 축구에 기여할 새 길을 열어주실 걸로 믿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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