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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죽어봐" 녹음 남긴뒤 숨졌다…'마약 술자리' 울분의 그날 [사건추적]

중앙일보

입력

사건이 발생한 유흥주점. 뉴스1

사건이 발생한 유흥주점. 뉴스1

“왜 이래. 이러다 진짜 죽겠다. 후”  

지난 7월 유흥업소를 찾은 손님 4명과 술을 마신 뒤 숨진 30대 여종업원 A씨가 사망 전 주변 상황을 녹음할 때 내뱉은 마지막 한 마디다. 당시 몸 상태에 이상을 느낀 A씨는 휴대전화로 녹음을 시작하고, 주변에 상황을 알렸다. 그는 담당 실장에게는 “○○○번(방) 카드로 계산했는지 확인해보라. 나에게 100% 약을 먹였다. 문제는 그 방 사람들 다 알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여동생에게는 “제정신이 아니게 되는데 옷에 물 다 묻고 입·코에서 물 나오는데 앞에서 언니들 웃고 있었다”고 했다.

6명 중 마약으로 2명 사망한 그 날의 술자리

16일 A씨 측과 손님 등의 설명을 종합해 이른바 ‘강남 유흥업소 종업원 사망’ 사건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지난 7월 5일 오전 5시쯤 20대 B씨 등 남성 3명과 여성 1명 총 4명은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한 유흥주점을 찾았다. B씨를 중심으로 모인 자리였는데, 포장마차에서 1차를 한 뒤 자리를 옮긴 것이었다. 다른 남성 2명은 B씨를 안지 약 1~2달 됐고 깊은 인연은 아니었다고 한다. 다만 지인에게 “B씨가 마른 이유는 약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이들은 기억한다. 여성 손님은 B씨와 동석한 남자친구를 따라 자리에 합류했는데, “왜 나를 여자가 나오는 술집으로 데리고 왔냐”며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방에 자리를 잡은 B씨는 여종업원 C씨를 지명해 불렀다. 이후 A씨가 이들이 있던 방에 마지막으로 들어왔다. 커플 포함 손님 4명과 여종업원 2명은 그렇게 약 2시간 동안 술을 마셨다.

지난 7월 5일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마약이 섞인 술을 마시고 숨진 여성 종업원 A씨가 담당 실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에베크(아베크)는 남녀 손님이 함께 들어온 방을 의미하는 업계 은어다. 사진 부유법률사무소 부지석·송제경 변호사

지난 7월 5일 서울 강남 유흥주점에서 마약이 섞인 술을 마시고 숨진 여성 종업원 A씨가 담당 실장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에베크(아베크)는 남녀 손님이 함께 들어온 방을 의미하는 업계 은어다. 사진 부유법률사무소 부지석·송제경 변호사

문제가 생긴 건 술 게임 직후다. 첫 게임에서 진 A씨는 벌주를 마셨다. A씨는 다른 게임을 제안한 뒤 판을 이어갔으나 또 패배해 벌주를 들이켰다고 한다. A씨는 술맛 등에서 이상함을 느꼈고 이후 녹음을 시작했다. A씨가 사망하기 전 저장한 녹음 파일 이름은 ‘니네 다 죽어봐’다. A씨 측이 제공한 파일에 따르면 방 밖 화장실에서 만난 종업원 C씨는 A씨에게 “저 욕 먹어야 돼”라고 말했다. 이에 A씨는 “언니가 왜 욕을 먹어요. 원래 저 약 먹이기로 약속했어요?”라고 물었다. 그는 담당 실장에게는 “방 언니들도 다 알고 있었네요. 저 죽이려는 거” “녹음했고 고소할 거에요”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오전 6시 45분쯤 보냈다. “제정신이 아니라서” 등과 같은 말을 직원 앞에서 반복하던 A씨는 집으로 가 오전 10시 20분쯤 숨졌다.

그날 술자리에서 나온 사망자는 A씨만이 아니다. 이날 자리를 만든 B씨는 A씨 사망 2시간 전인 오전 8시 20분쯤 주점 인근 공원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B씨 차에서는 필로폰 64g이 발견됐다. 통상 1회 투약량을 0.03g으로 봤을 때 이는 2100여명이 한 번에 투약할 수 있는 양이라고 한다. A씨와 B씨 사인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 결과 메트암페타민(필로폰) 중독으로 밝혀졌다. 다른 동석자 4명에게서는 마약 양성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동석자는 공동 정범? 엇갈리는 주장

A씨 사망 당일 A씨 여동생과 여종업원 C씨가 통화한 내용

동생)그런데 저희 언니가 화장실 간 사이에 벌주랑 마약 같이 섞어서 타놓고 그거 게임을 정해서 ‘얘 먹이자’해서 이렇게 먹이게 된 거죠?
여종업원)게임을 걔네들이 몰아가는 식으로 하긴 했어요.

신나게 계속 놀았어요. 계속 막 놀다가 그러더니 이제 “야 이제 게임이나 하자” 막 이러니까 게임을 하자 해가지고 또 그 사람이 술을 딱 해가지고 잔을 이렇게 딱딱 한 다음에 “야 술게임 하자”이러면서 그리고 이제 막 약간 언니를 몰아간거죠. “재미없다” 이러면서.

그리고 이제 자기들이 막 뭘 하고 있었어요. 저는 관심 밖이고 ‘그냥 내 잔만 신경써야겠다’ 이러고 있다가 지들끼리 놀다가 “야 우리 게임하자”하고 이제 언니 먹이고 이렇게 한 거죠. 근데 이제 약이 들어가 있었다는 거는 경찰이 와서 안거죠.

동생)언니를 원액이랑 마약을 타서 먹인 거지요?
여종업원)그 잔을 이렇게 술을 따랐지요. 걔네들이. 걔네들이 이렇게 술 제작을 해가지고 “야 야 이렇게 게임하자”하고 먹인거죠.

A씨 측은 손님 3명 등 술자리 동석자에게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지석·송제경 변호사(부유법률사무소)는 “A씨만 양성이 나왔다는 건 고의로 A씨가 게임을 지게 한 정황”이라며 “필로폰을 먹이면 죽을 수 있다는 것은 예견할 수 있고, A씨가 방에 들어오기 전 약을 먹이기 위한 게임을 준비하면서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즉 사망한 B씨가 술에 필로폰을 탔다고 하더라도 이를 묵인한 동석자들이 공동 정범에 해당한다는 논리다.

A씨 측이 공개한 사건 당일 A씨의 여동생과 여종업원 C씨가 나눈 통화녹음에 따르면 C씨는 “걔네들이 무슨 가루를 타긴 했어요. 자기들끼리” “술을 이제 그 사람들이 따르고 준비도 하고”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게임을 몰아가는 식으로 하긴 했다” “언니(A씨)를 먹이려고 했다”라고도 했다. A씨 측은 C씨도 상황을 알고 있었다고 보고 최근 그를 공동정범으로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경찰에 냈다. 다만 C씨는 현재 참고인 신분이라고 경찰은 밝혔다.

손님 측은 마약을 탄 상황을 알지 못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이들을 법률 대리하는 서지원 변호사(법률사무소 나란)는 “동석자 3명은 술에 마약을 타던 상황을 못 봤으며 서로가 친분이 깊던 사이도 아니다”라며 “커플이 싸우는 등 분위기도 안 좋았고 B씨를 처음 만난 사람도 있는데 이들이 마약을 넣자고 공모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손님 3명은 지난 8월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했다가 “휴대전화를 포렌식 해야 하니 제출하라”는 말을 듣고 그때야 피의자 전환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이들은 강압 발언 등을 이유로 수사관 기피 신청을 했고, 지난 1일 수사팀은 교체됐다. 지난 13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이들을 상해치사 공범 혐의로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놓고 “확실한 증거(시신)가 있는데 물증과 진술은 없는 사건”이라는 말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사람이 죽기 전 남긴 증거는 조작 가능성이 없어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며 “분리 조사나 거짓말탐지기 등 예리한 수사를 통해 정황 증거를 모아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약 1~2달 걸리는 휴대전화 포렌식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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