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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옷 손질해 15년 입듯, "시간 쌓아 만든 소리가 진짜 노래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소리꾼 장사익은 춤을 추듯 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용 옷을 입어보였다. 권혁재 기자

소리꾼 장사익은 춤을 추듯 어깨를 들썩이며 공연용 옷을 입어보였다. 권혁재 기자

소리꾼 장사익(73)은 노래할 때 새하얀 한복을 입는다. 그가 무대에서 입는 한복은 딱 두 벌이다. 15년 전 동대문 시장에서 맞춘 광목 한 벌에, 여름이 점점 더워지며 몇 년 전 새로 맞춘 모시 한 벌이다. 그가 직접 빨고, 다리고, 풀을 먹여가며 곱게 세월을 먹은 옷은 표백한 듯 새하얗다. 낡아 해진 자리는 직접 꿰매 감쪽같다.

4년만의 단독공연 여는 #소리꾼 장사익

장사익은 노래하는 일을 '음악농사'라고 부른다. 그의 자택에는 직접 쓴 '음악농사 짓는 날!'이란 글이 붙어있다. 그의 집 거실은 공연팀이 모여 연습을 하는 연습실이기도 하다. 김정연 기자

장사익은 노래하는 일을 '음악농사'라고 부른다. 그의 자택에는 직접 쓴 '음악농사 짓는 날!'이란 글이 붙어있다. 그의 집 거실은 공연팀이 모여 연습을 하는 연습실이기도 하다. 김정연 기자

장사익의 소리도 이 한복과 같다. 시간을 더하며 쌓이고 깊어진 소리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다. 소리꾼 장사익이 다음 달 5일 4년 만의 단독 공연 '사람이 사람을 만나'를 연다. 2년에 한 번, 숙제처럼 공연을 꼬박꼬박 해왔지만 2020년 10월 날짜까지 잡아둔 공연이 취소되면서 4년 만의 무대가 됐다. 장사익은 "팬데믹 때문에 사람이 만나는 것도 법으로 규정돼버리니까, 세상이 영 (사는 게) 아니더라"며 "굿쟁이가 굿으로 슬픈 사람은 씻어주고 기쁜 사람은 더 기쁘게 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코로나19 시기를) 지나온 것에 자부심을 갖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자는 의미로 노래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아직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다.

새 공연에서는 신곡 4곡을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우화의 강'(마종기) '뒷짐'(한상호) '뒷굽'(허형만) '11월처럼'(서정춘), 모두 시인들이 쓴 시에 가락을 붙인 곡이다. 앨범을 먼저 내지 않고 공연을 먼저 서는 건, 공연하면서 익숙해지고 노련해진 다음 완벽할 때 녹음을 하기 위해서다.

장사익이 15년간 입은 공연용 광목 옷은 여전히 하얗고 빳빳하지만, 군데군데 해진 곳을 직접 기운 흔적이 있었다. 장사익은 "여러 벌 옷도 필요 없다, 한 벌을 잘 관리하면 늘 새것같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장사익이 15년간 입은 공연용 광목 옷은 여전히 하얗고 빳빳하지만, 군데군데 해진 곳을 직접 기운 흔적이 있었다. 장사익은 "여러 벌 옷도 필요 없다, 한 벌을 잘 관리하면 늘 새것같다"고 했다. 김정연 기자

사회생활 25년 뒤 마흔다섯에 데뷔한 노래꾼

6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소리꾼 장사익을 만났다. 그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을 마주하고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소년같은 표정을 지었다. 오래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곡절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왔다"고 말한 그의 이야기와 그의 표정이 맞물렸다. 권혁재 기자

6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자택에서 소리꾼 장사익을 만났다. 그는 오래 알고 지낸 지인을 마주하고는 칠순이 넘는 나이에도 소년같은 표정을 지었다. 오래 사회생활을 하며 여러 곡절을 겪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상처는 "툭툭 털고 일어나서 왔다"고 말한 그의 이야기와 그의 표정이 맞물렸다. 권혁재 기자

1992년 태평소로 전주대사습놀이 대통령상을 받고, 1994년 1집 ‘하늘 가는 길’을 내며 대중 앞에 등장한 장사익은 ‘소리꾼’ ‘노래하는 사람’으로 불린다. 국악을 전공하거나, 누굴 사사한 적 없지만 사람들은 장사익을 ‘국악 스타일’로 분류한다. 전자회사, 가구점, 독서실, 카센터 등 "15개 직장을 부잡스럽게 옮겨 다니며 넘어지고 깨진" 뒤 마흔다섯에 첫 앨범을 낸 그의 노래에는 늘 슬픔과 즐거움이 함께 묻어있지만, “갖은 일 하며 악한 사람도 있었지만, 상처받는 것도 내가 마음이 넓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나는 슬프기보단 즐거운 인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툭툭 털고 일어나서 왔으니 이렇게 된 거지, 찡찡거리고 있었으면 지금처럼 안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슨 일을 하든 늘 박수쳐준 다정한 부모님의 응원도 그의 바탕에서 그를 지지한 원동력이다.

TV도, 유튜브에도 없는 말맛 나는 예인… "이런 취향 젊은이들이 있겠지"

그러나 명성에 비해 젊은 세대에게 장사익은 막연하게 '노래하는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다. 장사익은 TV 프로그램, 유튜브 등 매체 출연이 거의 없다. 지난 2월 KBS ‘불후의 명곡’도 제작진이 공연마다 꽃다발 들고 3년을 따라다닌 끝에 겨우 성공한 섭외다. “어린 친구들 감정과 맥박이 빨라진 것 같다”고 아쉬워하면서도, 그는 조급하지 않아 보였다. 장사익은 "젊은 음악가들과 함께 뭘 하기엔, 내가 음악 질서를 벗어나서 박자도 안 맞고 느려터진 사람이라 어렵더라”면서도 “가끔 이런 취향을 가진 어린이들이 호기심 갖고 다가온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 중 아주 적은 소수가 내 노래가 취향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표현이 독특하고 리드미컬하다. 시로 쓴 가사, 박자 없는 노래를 닮았다. 자신의 노래에 대해 “배운 것도 없는데 운이 있었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삼천포 가야지(안 됐을 텐데),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에 제가 나와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앞으로 목표를 묻자 “가늘고 길게 가는 것. 이 정도까지 온 것도 너무 감사하고, 더 유명해지면 지금처럼 인사동이며 종로 바닥을 내키는 대로 몇만 보씩 걸을 수 있겠어요?”라며 해맑게 웃는다. 말이 재미있어 혹 젊은 층에게 인기가 높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오면 출연할지 물어도 손사래를 쳤다.

초5가 매일 새벽 뒷산 올라 '아아아~' 5년, 이 소리 만들었다

장사익은 인터뷰를 위해 자택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목이 마르지 않는다"며 보이차를 내줬다. 목에 좋은 것은 이것저것 챙겨먹고, 하루 1시간 반 운동, 1시간 반 걷기를 꼭 하고, 발성법도 바꾸는 등 그는 가장 큰 자산인 '소리'를 지키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권혁재 기자

장사익은 인터뷰를 위해 자택으로 찾아간 기자에게 "목이 마르지 않는다"며 보이차를 내줬다. 목에 좋은 것은 이것저것 챙겨먹고, 하루 1시간 반 운동, 1시간 반 걷기를 꼭 하고, 발성법도 바꾸는 등 그는 가장 큰 자산인 '소리'를 지키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다. 권혁재 기자

TV도, 인기도 관심 없는 그의 유일한 관심사는 '소리'다. 그의 소리는 어린 시절 뒷산에서 만들어졌다. 어린 시절 꿈 중 가수는 없었다. 정치인이나 공군을 꿈꾸며 반장을 하던 어린 장사익은 학교에서 웅변을 잘하기 위해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도 안 빠지고 뒷산을 30분 올라 ‘아아아~’ 소리를 지르며 발성 연습을 했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국민학교 5학년 때부터 5년을 꼬박 했다. 그가 연습을 한 자리 아래는 공동묘지였다. 장사익은 “무서웠지만, 깡다구로 5년 동안 매일 했다”며 “귀신들 앞에서 새벽마다 소리 지른 건데, 그 기운으로 지금 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 이후로 목이 틔었다. 목청이 좋으니 고등학교 소풍을 가면 곧잘 노래를 불렀고, 취직해서 가수가 돼볼까 하는 생각도 싹텄다. 이런저런 회사를 다니며 국악기를 배웠지만, ‘소리’를 배운 적은 없다. 대신 낙원동에 있는 대중음악 학원에서 3년간 동백아가씨, 남진, 나훈아를 배웠다. 장사익은 “시골에서 자라며 느낀 정서, 웅변하려고 한 발성연습, 아버지가 치던 장구가락, 사회생활하며 아무 생각 없이 배운 국악기가 모이고 쌓여서 진짜 노래가 된 것 같다”며 “오늘 하루가 미래의 나를 위해서 큰 디딤돌이 되는 건데, 요즘 노래를 하겠다고 오는 젊은 친구들은 바로 데뷔하고 싶어하더라"며 아쉬워했다.

"힘없이 부르는 노래도 진짜 노래"

그렇게 어릴 때부터 겹겹이 쌓은 소리로 지금껏 노래했고, "막 질러도 소리가 쭉쭉 나는" 시절을 지냈지만 2016년부터 재발하는 성대결절로 수술과 재활을 반복하며 고생한 뒤부터는 발성법을 바꾸는 훈련을 했다. 장사익은 "옛날처럼 높은 소리는 못 내는데, 사람이 늙으면 키가 줄어들듯이 노래도 똑같은 거라고 생각한다"며 "30년 전에 불렀던 노래들을 지금 똑같이 부를 수는 없고, 남들 듣기엔 티 안 나게 살짝 내려서 부른다"고 했다.

1994년 데뷔한 장사익은 곧 데뷔 30주년이다. “갈수록 하늘과 가까워진다. 야구로 치면 9회 중 7회 중반까지 온 셈”이라는 장사익은 “힘 있을 때까지 노래를 하려고 한다. 힘이 없는데도 노래를 부르는 것이 진짜 노래다. 높이 힘 있게 안 올라가도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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