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새 비상대책위원회의 출범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당권 레이스가 서서히 활기를 띄고 있다. 당내 혼란이 일단락되면서 차기 전당대회에 다시 시선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현재 여권에선 권성동·권영세·김기현·안철수·정진석·주호영 등 현역 의원 6명과 나경원·원희룡·유승민(이상 가나다순) 전 의원 등 원외 3명이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중이다.
이 중 김기현(4선)·안철수(3선) 의원은 이미 차기 당 대표 출마 의사를 대외적으로 밝힌 상태다. 김 의원은 지난 9일 대구 지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전당대회 출마를 묻는 질문에“여러 가지 잠정적인 계획들이 있다. 우리 당이 새로 정비가 되어야 한다”며 당 대표 도전을 공식화했다. 지난달 9일 “역할이 있다면 마다하지 않겠다”고 당권 도전을 처음 시사한 안 의원은 이후에도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며 일관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들은 각각 ‘새로운 미래 혁신24’(김기현), ‘위기를 넘어 미래로, 민·당·정 토론회’(안철수)라는 공부모임을 조직해 상대를 견제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김 의원이 자신의 공부모임에서“지나고 나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회)에서 무엇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참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고 지적하자, 인수위원장이었던 안 의원이 그날 오후 “인수위 역할에 대한 부정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부정”이라고 곧바로 공개 반박한 적도 있다.
임기를 막 시작한 정진석(5선) 비대위원장, 최근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권성동(4선) 의원도 당권 도전 가능성이 있다. 권 의원의 경우 이른바 ‘원조 윤핵관(윤석열 측 핵심 관계자)’으로 여당 혼란에 책임을 지고 원내대표에서 물러난 게 큰 부담이긴 하다. 하지만 지난 8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그는 향후 거취에 대해 “당분간 좀 쉬면서 당과 나라를 위해 정치인으로서 어떤 역할을 할 건지 천천히 생각하겠다”고 여운을 남겼다.
‘윤핵관 맏형’으로 불려온 정 위원장도 지난 9일 언론 인터뷰에서 당권 도전 여부에 대해 “내가 비대위원장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잘 해내면 당원들이 제대로 전당대회에 출마하라는 요구가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답했다.
한편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돌연 직무정지를 맞은 주호영(5선) 전 비대위원장 역시 잠재적 당권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다만 친윤계 일각에서 “이미 한 차례 원내대표를 지냈지만, 또 할 수도 있다”며 그의 원내대표 재출마를 권유하는 움직임이 있는 게 변수다.
원외에서는 유승민·나경원 전 의원이 주목받는다. 코리아리서치가 MBC 의뢰로 지난 7~8일 전국 성인 1001명에게 물은 국민의힘 차기 당 대표 선호도 조사에서 유 전 의원이 23.6%로 2위 안철수 의원(12.3%), 3위 이준석 전 대표(11.8%)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나경원 전 의원이 24.7%로 1위였고, 안 의원(17.3%), 이 전 대표(11.7%), 주호영 의원(10.3%) 순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조)
당내 유승민계 의원들 사이에서는 지난 4월 경기지사 후보 경선 패배 후 정계은퇴를 예고한 유 전 의원에 대해 “주변 요구야 있겠지만 내가 아는 정치인 유승민이라면 아마 나오지 않을 것”(수도권 중진)이라는 반응이 많다. 당원 투표 비중이 70%에 달하는 전당대회 구조상 출마를 결심해도 당심 확보가 만만치 않다는 게 유 전 의원의 최대 난관이다.
나 전 의원은 12일 방송에 나와 “아무래도 현역 의원이 아니다 보니까 지금 이런저런 고민은 많다”면서도 “지금은 특별히 출마를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가 최근 부쩍 페이스북 메시지와 언론 인터뷰를 늘린 걸 두고 당내에서는 “사실상의 몸풀기”라는 평가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내각 소속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의 당 대표 차출 가능성도 제기한다. 취임한지 넉달 밖에 되지 않은 장관이 자리를 비우고 당으로 컴백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지만 “둘 다 언젠가는 당 대표에 도전할 사람들”이라는 게 당내 평가다.
전당대회 시기는 일단 ‘연내 개최’ 주장이 우세하지만, 여러가지 현실적 어려움을 감안하면 최근 ‘내년 1월말~2월초’ 개최가 낫다는 의견도 최근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이준석발 ‘사법 리스크’도 변수로 꼽힌다. 이달 중 법원이 3·4차 가처분에서 한차례 더 이 전 대표 손을 들어줄 경우 비대위가 또 해체되고, 최고위 체제 복귀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조기 전당대회가 불가피한 상황이 된다.
전당대회가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징계 종료(내년 1월 8일) 이후에 치러지면 이론상 이 전 대표의 재출마도 가능해진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 전 대표가 연일 SNS에서 당원 가입을 독려하는 게 명예 회복을 위한 재선 도전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