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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강원, 단감은 대구산…기후변화에 과일 출신지도 바뀐다

중앙일보

입력

'간소화 표준안'대로 차린 9가지 음식의 차례상. 연합뉴스

'간소화 표준안'대로 차린 9가지 음식의 차례상. 연합뉴스

#1.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의 농부 김계동(57)씨는 올해 6000여 평의 사과밭에서 총 60t의 사과를 수확했다. 김씨가 강원도에서 사과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13년 전. 그때 임계면 내 사과농가는 11개였지만 지금은 300개가 넘는다. 김씨는 "강원 산지 사과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사과밭이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2. 대구특별시 달성군 유가읍에서 단감 농장을 운영하는 김미숙(54)씨는 몇 년 전부터 ‘대구 단감’의 입지가 달라진 걸 느꼈다. 대구 단감의 가격이 서서히 오르더니 식감이 좋고 달기로 유명한 '남쪽 단감'과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12년 전부터 단감을 수확하고 있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가격이 꾸준히 상승세"라고 했다.

온난화 못 막으면 경북 사과 사라진다

기후변화가 추석 차례상에 오르는 과일들의 출신지를 바꾸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우리나라 주요 과일이 맛있게 익는 환경이 조금씩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어서다. 통상 식물학자들은 기온이 1도 올라가면 작물의 재배한계선도 81㎞만큼 올라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반도 기온이 오를수록 차례상에서 경북 사과 대신 강원 사과를, 창원 단감 대신 대구 단감을 더 많이 보게 된다는 뜻이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왼쪽의 과거 30년(1981~2010년) 지도에 비해 오른쪽 2030년대 예측지도에서는 재배지가 북쪽으로 올라가 면적이 줄어든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왼쪽의 과거 30년(1981~2010년) 지도에 비해 오른쪽 2030년대 예측지도에서는 재배지가 북쪽으로 올라가 면적이 줄어든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가 올해 내놓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과일 재배 적지의 북상 속도는 지난 2013년 연구보다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예측한 미래 기온이 더 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2040년까지 한반도 평균 기온이 1.8도 오르는 고탄소 시나리오를 가정해 과일 재배지 변동을 예측해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 차례상 과일은 사과다. 사과는 지난 30년 간 주로 전북, 충북, 경상 지역에서 재배됐다.7℃ 이하에서 1200∼1500시간을 보내고, 성숙기에도 고온에 노출되지 않아 사과가 맛있게 익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2030년대 내륙 지방에선 사과 재배 적지가 대부분 사라지고, 2050년대엔 강원도 일부 산지에서만 사과를 재배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지금 재배 지역 기온이 10여 년 뒤에는 강원 산지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강원도 사과밭. 독자 제공

강원도 사과밭. 독자 제공

배는 2030년대까지 총 재배 적지 면적이 증가하다가 2050년대부터 줄어들기 시작한다. 배는 따뜻할수록 당도가 높지만, 껍질이 거칠어지기 때문에 서늘한 산에서 품질이 더 좋다. 고탄소 시나리오상 2090년대엔 우리나라에서 고품질 배를 재배할 수 있는 지역은 거의 남지 않는다. 대추도 재배지가 줄어들 전망이다. 대추는 6~7월 기온이 높고 건조할수록 잘 자라지만 최근 강도가 세지는 장마와 태풍에 취약하다. 충청북도농업기술원대추연구소는 고탄소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우리나라가 대추 재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50년 뒤 강원 감귤 날 수도

한편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자라는 단감과 감귤의 재배 적지는 점점 넓어진다. 현재 국토의 9%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단감은 약 30년 뒤 산간지역 제외한 중부 내륙 전역에서 재배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지금은 대부분 제주에서 나는 감귤을 2050년대 강원도 해안 지역에서도 수확할 수 있다. 그러는 동안 제주도 지역엔 애플망고, 올리브 등 아열대 작물 재배지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감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왼쪽의 과거 30년(1981~2010년) 지도에 비해 오른쪽 2030년대 예측지도에서는 더 많은 지역에서 감을 재배할 수 있게 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감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왼쪽의 과거 30년(1981~2010년) 지도에 비해 오른쪽 2030년대 예측지도에서는 더 많은 지역에서 감을 재배할 수 있게 된다.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온난화대응농업연구소는 과일 재배 적지가 이동하면 많은 사회적 비용을 농민이 부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품종과 재배법을 개발해야 하고, 새로 재배한 과일이 국민의 입맛에 맞지 않아 한 해 판매량이 급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경환 연구관은 "생계를 걸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수밖에 없는 농민 입장에선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비한 재배 기술이나 품종을 개발에 힘쓰고 있지만 불확실성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문 연구관은 "많은 분들이 미래 과일지도를 보면서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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