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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근육통과 불면 시달려"…수해 한 달만에 추석 맞은 전통시장

중앙일보

입력

추석을 닷새 앞둔 지난 5일 김한우(62)씨는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13년째 운영해 온 두부 가게에서 밤을 지샜다. 물이 떨어지는 곳에 받쳐둔 양동이를 계속 갈아대고 설비들에는 비닐을 덮었다. 지난달 8일 기습 폭우로 100여 점포 중 85곳이 침수됐고 김씨의 두부가게는 그 중 하나였다. 가게 안 창고에 보관했던 대두 4포대(약 100kg)가 젖어 다 버려야 했고 냉장고와 전기맷돌 등 설비가 고장나 1500만원이 넘는 피해를 봤다.

추석 대목을 놓칠세라 신용카드와 현금서비스까지 동원해 얻은 빚으로 가게를 복구했다. 5일은 한달을 기다린 복구 지원금 500만원이 입금된 날이었다. 김씨는 “일주일 동안 설비를 하나하나 끄집어내 쓸고 닦고, 냉장고 밑에 붙은 찌꺼기를 떼어내는데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며 “잠도 못 자고 근육통이 너무 심해서 서울시 지원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진통제를 처방받았다”고 했다.

김한우(62)씨의 가게가 지난달 8일 폭우로 물에 잠긴 모습(좌)과 지난 5일 김씨가 가게를 복구한 뒤 하룻동안 판매할 두부를 만들기 위해 간수를 조금씩 부어 콩물을 굳히는 모습. 이대로 먹으면 초두부, 틀에 담아 눌러 내면 두부가 된다. 지난달 8일 폭우에 수해 피해를 입었던 김씨의 두부 가게는 약 3주 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사진 김씨 제공, 최서인 기자

김한우(62)씨의 가게가 지난달 8일 폭우로 물에 잠긴 모습(좌)과 지난 5일 김씨가 가게를 복구한 뒤 하룻동안 판매할 두부를 만들기 위해 간수를 조금씩 부어 콩물을 굳히는 모습. 이대로 먹으면 초두부, 틀에 담아 눌러 내면 두부가 된다. 지난달 8일 폭우에 수해 피해를 입었던 김씨의 두부 가게는 약 3주 전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사진 김씨 제공, 최서인 기자

같은 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하는 김명옥(66)씨는 감자를 조리며 분주하게 손을 놀리면서도 줄곧 시름에 빠진 얼굴이었다. 김씨는 “가게는 물론 집도 침수돼 2주간 동사무소에서 지냈다. 쓰러질 것 같고 다 그만두고 싶다”며 눈물을 쏟았다. 김씨는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 수면제를 먹고 겨우 잠이 든다고 했다.

재산 피해·지친 심신·예전 같지 않은 추석 

태풍 '힌남노'가 스쳐간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남성사계시장 입구는 지난달 8일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최서인 기자

태풍 '힌남노'가 스쳐간 지난 5일 서울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 비가 내리고 있다. 남성사계시장 입구는 지난달 8일 폭우로 침수 피해를 입었다. 최서인 기자

고물가에 물난리가 겹치면서 상인들의 한숨은 추석 대목을 맞아서도 걷히지 않았다. 김명옥씨는 “손님들도 하나같이 집에 물난리가 났다. 집 고치는 데 돈 써야지, 추석 때 돈 나가지, 지갑을 열 여유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추석 명절 음식 거리는 예년의 절반만 준비했다. 원래는 명절 때 사람을 쓰는데 이번에는 혼자 버텨야할 거 같다”고 말했다. 30년간 과일 가게를 운영해 온 김모(68)씨는 “물가가 워낙 비싸다 보니 복숭아도 1만 원어치를 담아 놓으면 안 나가고, 5000원·7000원짜리 바구니만 팔린다”고 했다. 명절 대목 전에 비하면 매출이 20%가량 늘었다는 상인들도 있었지만, 매출이 배로 뛰던 예년의 추석에 비할 수는 없는 수준이라고 한다.

그나마 상인들을 보듬는 건 손님들의 위로다. 같은 날 서울시 동작구 남성사계시장에서 순댓국집을 운영하는 김모씨의 가게에도 천장까지 물이 차올랐다. 김씨는 “손님들이 5만원, 3만원씩을 봉투에 넣어서 건네는데 금액을 떠나 피 같은 돈을 내 도와주시는 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며 “5만 원어치를 드시고는 10만원을 건네는 손님도 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친척들과 군대, 서울시 공무원 등의 도움으로 가게를 정비해 지난달 31일부터 영업을 재개했다.

5000만원 손해 입었는데…지원은 500만원 뿐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김명옥(66)씨가 하루의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반찬 냉장고 위를 행주로 닦고 있다. 김씨의 집과 가게는 지난달 8일 폭우로 물에 잠겼다. 최서인 기자

5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사시장에서 김명옥(66)씨가 하루의 장사를 시작하기 위해 반찬 냉장고 위를 행주로 닦고 있다. 김씨의 집과 가게는 지난달 8일 폭우로 물에 잠겼다. 최서인 기자

관악구는 지난 5일, 동작구는 지난 7일 오후 지난달 8일 기습폭우로 침수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에게 국·시·구비로 마련된 긴급복구비 500만원을 지급했다. 피해 정도와 상관없이 정액 지급되는 돈이다. 순댓국집 김씨는 “페인트값 500만원, 고기 버린 것 1100만원어치에 냉장고와 냉동고 등 설비 수리비를 포함해 총 5000만원 피해를 봤다”며 “저축해둔 돈을 털어 복구를 마치고 나니 통장에 딱 2만 8000원이 남았다. 앞으로 어떻게 장사를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같은 시장에서 이불집을 운영하는 윤모(53)씨는 “폐기한 이불만 1000만원어치고 총 2000~3000만원의 손해를 봤다”며 “언제 지급된다는 말이 없어 우선 주변의 도움과 대출, 저금으로 해결했다. 긴급복구비로는 이달 임대료를 해결할 생각이다”고 말했다. 20평 남짓한 윤씨 가게의 임대료는 월 800만원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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