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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결혼·이혼·재혼…지금은 연애예능 전성시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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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즐] 노가영의 요즘 콘텐트 썰(3) 

소셜 바이럴이나 시청률이 높은 콘텐트는 무조건 봐야 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그렇다 보니 대중의 검증이 시작된 이후에 시청을 시작하는 얄팍한 게으름은 있으나, ‘why’에 대한 의문에서 바이럴을 분석하고 사회를 보게 된다. 최근 예능 판의 키워드는 두말할 것 없이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과 재혼이다. 2022년 1월 외딴 섬에서 일어나는 데이팅 리얼리티쇼 ‘솔로지옥’은 넷플릭스 전 세계 4위에 등극하며 K예능 최초의 글로벌 바이럴을 이뤄냈다. 얼마 전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CEO는 명동에서 진행된 K예능 상견례에서 “전 세계가 한국의 데이팅 리얼리티쇼 앓이를 하고 있다”며 말 그대로 ‘솔로지옥’을 추앙했다. 또 5월엔 KT스카이라이프가 일반인 데이트 예능 ‘나는 솔로’로 늘어난 광고 수익에 힘입어 ‘연 매출 1조 클럽’에 입성하기도 했다.

솔로지옥    [사진 넷플릭스]

솔로지옥 [사진 넷플릭스]

이렇듯 ‘남녀 짝짓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의 호기심을 끌기에 가장 안전하고 보편타당한 콘텐트 소재이다. 그런데 최근의 트렌드는 맞선의 대표명사 격인 MBC ‘사랑의 스튜디오’나 2010년대 초반을 휩쓸었던 SBS의 ‘짝’, 채널A의 ‘하트시그널’로 이어지는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형제들과는 결이 다르다. 과거의 청춘 짝짓기에 이혼과 재혼이 더해지고 돌싱이라는 단어도 보다 편안해졌다. 젊은 부부들이 결혼과 이혼을 선택하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다룬 티빙의 ‘결혼과 이혼사이’의 디지털 바이럴 속도는 놀라웠고, 불과 20개월 만에 시즌3까지 초고속으로 이어진 MBN ‘돌싱글즈’ 역시 5~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이미 시즌4를 준비 중이다.

사회는 ‘아직’이지만 예능이 ‘먼저’ 용서한 것

연애, 결혼, 재혼 소재의 예능이 많아지고 시청률과 트래픽이 높다는 건 결국 대중의 공감이 시작됐음을 말한다. 우리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이혼과 재혼, 엄마의 애인, 아빠의 애인, 한술 더 떠 주말이면 새 아빠가 아이를 친아빠에게 내려주며 두 남자가 안부를 건네는 ‘힙(Hip)’한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보며 자랐다. 심지어 2000년대도 아닌 1990년대 초반의 영화 ‘미세스 다웃파이어’를 추억하자면, 로빈 윌리엄스의 아이들은 엄마의 애인인 피어스 브로스넌에게 서슴없게 대한다. 시청하는 우리 모두에게 훈훈한 장면이었다. 그럼에도 영화는 영화이고 우리 한국사회는 여전한 거리낌이 존재함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예능 트렌드를 보자면 우리의 일상적 가치관이 사회구조적 가치관보다 앞서고 있음이 보인다. 사회적 구조가 시청자의 의식 수준보다 더디다는 뜻이다. 즉, 사회의 구조는 ‘아직’이지만 대중문화가 ‘먼저’ 제도에 실패한 이들을 용서한 것이다. 심지어 한 예능의 출연진이 ‘요즘엔 이혼하면 나갈 데가 많다’라는 멘트로 좌중을 박장대소하게 한 적도 있다.

‘문화 콘텐트는 늘 사회적 결핍을 대체해왔다’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대한민국 사회는 한번 실패한 사람이 유턴하기에 쉽지 않은 구조이다. 경제적으로 그러하고 청춘과 기성세대 모두에게 가혹하다. 반면, 연애와 결혼에 대해서는 포용의 시선이 시작된 것이다. 젠더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결핍도 남녀 간의 사랑을 끌어안는 문화 콘텐트로 승화되어 간다. 마치 2010년대 초중반 한국의 인구 증가율이 급감하던 시점에 반대급부로 육아 예능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것처럼 말이다.

문화는 세상을 반영하고 진보시키며 치유한다

결국 이것이 대중문화의 역할이 아니던가. ‘문화 콘텐트가 왜 필요해?’ ‘무슨 소리야, 돈을 얼마나 버는데. 한국의 콘텐트 산업이 130조원에 달해’가 아니다. 지금의 대중문화가 젠더 갈등을 품었듯, 문화는 세상을 반영하고 세상을 진보시키며 세상을 치유해간다. 고작, 연애 예능 담론에서 1947년 백범의 ‘나의 소원’을 끄집어냄이 거창함을 알고 있으나 ‘…(중략)…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를 수번 되새김질하게 되는 대목이다.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사진 엠넷]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사진 엠넷]

실례로 2021년 하반기 뜨거웠던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이하, 스우파)를 보자. 한국의 TV 예능이지만 유튜브를 통해 달궈지며 전 세계에 K댄스 신드롬을 일으켰다. 문화 콘텐트로서의 역할을 보자면 ‘백Back댄서’에서 백(Back)을 없애고 ‘댄서’라는 직업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는가. ‘스우파’를 단 몇회 차라도 본 시청자라면 누구도 댄서를 가수의 주변인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2022년 여름에는 국내 최초의 성 소수자 관찰 예능 2편이 나란히 공개되었다. 성 소수자 커플 4쌍의 일상과 사회적 편견을 다룬 ‘메리퀴어’와 게이들의 연애 리얼리티쇼 ‘남의연애’가 그것이다. 모두가 환영하기 어려운 콘텐트이기에 맘카페에서는 찬반양론이 뜨거웠으며 기독교계의 반발도 상당했다. 제작진은 ‘메리퀴어’의 마지막 회차 엔딩에서 이러한 노이즈를 감추지 않고, 본 지면에 차마 담기 어려운 부정의 댓글과 긍정과 응원의 피드백을 함께 노출하며 콘텐트를 열어 두었다. 관련 커뮤니티 댓글 중에 ‘사회적인 편견이 여전하더라도 혐오하지 않게 되었다면 이 두 편의 예능은 제 할 일을 한 것’이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대중문화가 당장의 사회적 구조를 바꾸진 못하지만 우리네 일상적 가치관의 변화는 가능하다는 해석일 것이다.

결국, 연애 예능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

지금의 예능은 연애와 결혼 그리고 재혼 전성시대에 와있다. 또 그것은 온전한 리얼이어야 한다. 사실상, 과거의 버라이어티도 서바이벌 예능도 ‘리얼’의 범주일 수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대중은 그 리얼을 위해 공급자가 설계해 놓은 미션이나 챌린지도 거슬리기 시작했다. 거대한 버라이어티쇼 안에서 캐릭터라이즈된 인물에 심드렁해진 거다. 시청자가 ‘More 리얼’을 원하면서 이러한 니즈는 관찰 예능으로 이어졌고 연애와 결혼, 이혼과 재혼 콘텐트도 관찰의 시선으로 모이는 형태다.

지금 이같은 연애 예능에서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은 ‘진심을 넘어선 최선’이다. 사회에서 다양한 역학관계로 원활치 않은 그 최선 그리고 종종 배신하는 최선의 결과값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원한다. 진심을 넘어선 최선과 제대로 된 보상을 보고 싶다. 이 또한 사회적 결핍에 대한 예능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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