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배님 부탁하신 것"…영장자료 통째 쌍방울에 넘긴 檢수사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검찰 수사관이 수사 대상이던 쌍방울그룹 소속 임원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통째로 넘긴 정황이 공소장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은 지난 7월 18일 서울 용산구 쌍방울그룹 본사. 뉴스1

검찰 수사관이 수사 대상이던 쌍방울그룹 소속 임원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통째로 넘긴 정황이 공소장을 통해 공개됐다. 사진은 지난 7월 18일 서울 용산구 쌍방울그룹 본사. 뉴스1

'쌍방울그룹 수사 기밀 유출' 의혹으로 기소된 검찰 수사관 A씨가 쌍방울 임원 B씨에게 압수수색 영장을 통째로 넘기는 등 조직적으로 수사 기밀 자료를 주고받은 정황이 7일 검찰 공소장을 통해 공개됐다.

국민의힘 김도읍 의원이 법무부에 제출 받은 이 사건 공소장에 따르면, A씨는 지난 5월 중순 쌍방울 임원 B씨로부터 "쌍방울 관련 사건으로 검찰에서 무엇을 수사하는지 범죄사실만이라도 좀 알려달라"는 취지의 부탁을 받았다.

A씨는 수사 기밀 유출 당시 쌍방울 횡령·배임 의혹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 김영남) 소속이었고, B씨는 과거 A씨와 함께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출신으로 당시 쌍방울의 감사를 맡고 있었다.

이에 A씨는 지난 5월 24일 업무용 PC 내부망으로 형사사법정보시스템(킥스)에 접속해 쌍방울그룹 관련 압수 수색 내용이 담긴 영장 자료를 복사한 뒤 6장 분량 문서로 출력했다. 이 문서에는 쌍방울그룹 수사 대상자의 이름, 직업, 재산, 지분관계 등과 향후 검찰 수사가 이뤄질 범죄 사실, 금융계좌 추적 대상자 계좌번호 등이 담겼다고 한다.

A씨는 같은 날 오후 6시 30분쯤 B씨에게 카카오 보이스톡을 걸어 "선배님, 저번에 부탁하신 것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 집 앞에 주차장이 있는데 그쪽으로 오십시오"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8시쯤 A씨와 B씨는 해당 주차장에서 만나 '수사 기밀'이 담긴 문서를 주고 받았다.

하루 뒤인 5월 25일 B씨는 A씨로부터 확보한 문서를 C 변호사에게 넘겼다. C 변호사는 검찰 출신으로 쌍방울의 사외이사를 지내는 등 쌍방울그룹의 법률자문을 맡고 있었다. 자료를 넘겨받은 C 변호사는 '쌍방울 범죄사실.pdf'라는 제목으로 문건을 스캔해 이를 사무실에 보관했다.

그로부터 약 일주일 뒤 5월 31일 김성태 쌍방울그룹 전 회장은 돌연 싱가포르로 출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과정을 통해 조직적 증거 인멸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현재 태국에 머무는 것으로 알려진 김 전 회장에 대한 적색수배와 여권 무효화 등을 요청한 상태다.

이외에도 B씨는 6월 중순 경 A씨에게 "요즘 부쩍 언론에서 수사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도대체 압수수색은 언제 나오냐, 시기를 알게 되면 알려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이에 A씨는 검찰이 쌍방울그룹 본사 및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한 사실을 알게된 뒤 "어제 영장이 청구됐으니 참고하세요"라고 영장 청구 사실까지 누설하기도 했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6월 23일 쌍방울그룹 본사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했다.

수원지검 형사1부(부장 손진욱)는 지난달 23일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공무상 비밀 누설 등 혐의로 A씨와 B씨를 구속 기소하고 C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한편, 이번 수사 기밀 유출 수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수사하던 수원지검 공공수사부(부장 정원두)가 지난 7월 이 대표 측 변호인인 이태형 변호사 사무실 압수 수색 과정에서 형사6부의 쌍방울그룹 수사 자료를 발견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기소된 C 변호사가 이태형 변호사와 같은 법무법인 엠(M)에서 근무 중이어서 해당 유출 자료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형사6부는 올해 초 금융정보분석원(FIU)에서 쌍방울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에 대한 자료를 전달받아 2020년 발행한 45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 매각 과정 등을 수사 중이었다.

이 기사 어때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