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배추 한포기 2만원, 무서워" 추석 앞둔 전통시장, 지갑 못 연다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6일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상인 민병순씨가 채소를 정리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지난 6일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상인 민병순씨가 채소를 정리하고 있다. 최종권 기자

“배추 가격 맞냐. 무섭다” 시금치 한 움큼 ‘1만원’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6일 오전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 대목을 맞은 시장 곳곳은 명절 준비를 하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한 야채 가게 앞엔 ‘강원도 금배추 2만원’이란 종이 팻말이 쓰여 있었다. 주인 민병순(69)씨는 “속이 꽉 찬 배추 한 포기가 그 가격이고, 겉잎이 조금 시든 배추는 1만8000원, 크기가 작은 배추도 1만5000원에 팔고 있다. 장사하면서 배추 가격이 이렇게 비싼 적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민씨는 “배추는 지난 주말 한 포기에 1만5000원에도 내놨지만, 수요는 많고 생산량은 적다 보니 명절이 다가올수록 가격이 더 오르고 있다”며 “사는 사람도 힘들지만, 마진 없이 팔아야 하는 상인들도 힘든 시기인 것은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날 찾은 육거리시장은 곱절 이상 뛴 배추 가격이 가장 눈에 띄었다. 배추를 비롯한 무·시금치·애호박·열무·아욱 등 명절에 소비가 많은 채소류 가격도 줄줄이 올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5일 기준 배추 한 포기 소매 평균 가격(상품·최곳값)은 1만4500원으로 1년 전 6663원과 비교해 약 2.1배 올랐다.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 있는 한 과일가게에서 제수용 사과와 배를 진열해놨다. 최종권 기자

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 있는 한 과일가게에서 제수용 사과와 배를 진열해놨다. 최종권 기자

“애호박전 포기, 묵은김치 먹겠다” 

시금치 1㎏은 같은 기준으로 1.67배, 얼갈이배추(1㎏)는 1.9배, 애호박(1개) 1.6배, 무(1개)는 1.9배로 값이 껑충 뛰었다. 지속한 폭염에 유례없는 폭우가 겹치면서 채소류 생산량이 줄어든 탓이다. aT가 지난달 24일 조사한 추석 성수품 28개 품목 조사에서 올해 차례상 차림 비용은 평균 31만8045원으로, 지난해보다 6.8%(2만241원) 상승했다.

안 오른 게 없는 채소류 가격에 손님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못했다. 한 남성은 “어휴. 이게 배추 한 포기 값이 맞냐. 무섭다. 무서워”라며 혀를 내두른 뒤 그냥 돌아갔다. 시금치는 400g에 1만원에 파는 곳이 많았다. 쪽파는 1.3㎏에 1만원, 무는 1개에 6000원~7000원에 거래됐다.

홍현호(65)씨는 “시금치와 무골파를 조금 샀을 뿐인데 벌써 2만4000원을 썼다. 지난해와 비교해 2배 정도 돈이 더 든 것 같다”고 말했다. 김성원(68)씨는 “야채값이 너무 올라 명절에 물김치와 애호박전을 하지 않기로 했다”며 “대신 묵은김치를 먹고 음식도 간소화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주민은 한 움큼에 8000원 하는 아욱 가격에 놀라더니 “아욱국은 포기하고, 뭇국으로 대신해야겠다”고 말했다.

과일 가게는 제수용으로 마련한 사과·배가 좀처럼 팔리지 않아 울상이었다. 이곳 상인들은 상처가 나거나 크기가 작은 사과는 10개에 1만원, 배는 3~5개에 1만원으로 비교적 싸게 팔았다.

채소류와 과일 가격 외에도 제수용 과자는 식용유,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소비가를 올렸다. 최종권 기자

채소류와 과일 가격 외에도 제수용 과자는 식용유, 밀가루, 설탕 등 원재료 가격 인상으로 소비가를 올렸다. 최종권 기자

상인들 “소비 준 것 체감…파는 사람도 힘들어” 

하지만 제수용으로 매대에 내놓은 사과는 1개에 4000원~5000원, 배는 1개에 5000원 정도로 훨씬 비쌌다. 상인 장모(55)씨는 “제수용은 가격이 부담되다 보니 거의 팔리지 않고 있다”며 “물가가 오르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인지 소비도 확실히 줄었다”고 말했다.

제수용 과자는 설탕과 밀가루·식용유 등 제조 원가 인상으로 가격이 올랐다. 상인 A씨는 “약과는 한 팩에 5000원 하던 것을 원가 상승으로 올해 6000원으로 올렸다”며 “제수용 과자는 제품마다 1000원씩 올렸고, 황태포 등 건어물도 1000원씩 인상했다”고 말했다.

나물 가게를 운영하는 소윤호(60)씨는 “고사리와 도라지 가격을 1㎏당 1500원(27~33%)씩 올렸다”며 “이맘때 줄을 길게 늘어서서 나물을 사려는 손님 많았지만, 올해는 매출이 40% 정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떡집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명절을 대비해 떡을 맞추려는 사람이 해마다 줄고 있다는 게 상인들의 설명이다. 신규식(70)씨는 “송편을 만들려고 예전에는 20㎏짜리 쌀 10포대씩 준비했는데 요즘은 5포대로도 충분하다”며 “당일 날 필요한 만큼 떡을 사 가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추석 성수품 수급 안정을 위해 20대 성수품 공급을 1.4배 확대하고, 유통업계와 연계한 할인행사를 진행 중이다. 배추·무·양파·마늘·감자 등 농산물은 8일까지 3905t을 추가 공급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