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공산혁명 73주년의 현주소: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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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너져 내리는 공산당 권위/연방독립요구 해결 고르비도 역부족/국민도 군도 우유부단한 당에 불만
소련 공산주의 통치와 공산당 권위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공산주의 지배를 기념하는 7일의 볼셰비키혁명 73주년 기념식은 반공산주의 반대시위와 대통령궁 근처의 총격사건 등으로 얼룩졌다.
사회주의 혁명의 기치를 내걸었던 러시아의 영웅 레닌은 지금 소련도처에서 붕괴되고 있다. 그의 동상이 철거되고 있고 그의 이름을 명예롭게 하기 위한 도시와 거리 이름이 차르시대의 구명으로 환원되고 있다. 격하되는 것은 레닌뿐이 아니다. 사회주의의 아버지 마르크스,러시아혁명의 영웅 프룬제ㆍ칼리닌 등의 이름들도 거리이름에서 지워지고 있다.
이전처럼 이날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거창한 군사퍼레이드를 벌인 소련은 그러나 앞날이 험난하다. 연방을 구성하는 15개 공화국중 14개가 독립 또는 주권을 요구하고 경제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73년전 강력한 조직의 힘으로 차르가 지배하던 러시아제국을 무너뜨렸던 소련 공산당은 현재 자신들이 보유한 재산을 국가로 반환해야 한다는 열화와 같은 여론의 공격으로 곤경에 처해 있다.
동서 냉전의 종식과 독일통일ㆍ군비감축ㆍ핵공포로부터의 해방등 국제정치에 있어 신기원을 이룩한 공로로 금년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권위와 능력은 아르메니아ㆍ아제르바이잔 등 카프카스 지방의 민족분규,발트 3국과 우크라이나의 분리독립 요구 등을 치료하는 데에는 무기력을 드러내고 있다.
그의 경제개혁정책은 그 실시 속도,방향,범위 등을 놓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있다.
최근 우크라이나공화국은 독자화폐를 갖기 위한 전단계로 평가되는 쿠퐁제를 통한 배급제 실시를 발표했으며 러시아공화국은 「5백일 경제개혁 계획」을 연방정부와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실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발트3국은 내년초 발표예정으로 고르바초프가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새 연방법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옐친등 개혁그룹은 신문 가제타로시야를 창간,기존의 프라우다와 이즈베스티야와 「언론전쟁」을 벌이기 시작했으며 군과 KGB는 러시아혁명과 공산주의의 권위 하락에 불안해 하고 있으며 소련 지도부의 이에 대한 우유부단한 태도에 불만을 표출시키고 있다.
군부는 특히 고르바초프의 감군정책과 동유럽 국가들로부터의 철군,아프간 철수,국방예산 삭감 등으로 승진의 기회와 복리후생이 크게 감소하고 있음에 분노하고 있다.
의회내의 급진파 대의원들은 폐레스트로이카를 실시한지 5년이 지났으면서도 경제지표중 어느것 하나 개선된 것이 없고 오히려 현실은 페레스트로이카 실시 이전보다 훨씬 악화된 상황에서 고르바초프가 군부와 공모,강권통치를 실시하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다.
이같은 악조건에서 소련은 지금 다시 한번 혁명기념일을 맞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소련 인민들에게 다시 한번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자고 촉구하고 있으나 이러한 그의 호소가 얼마나 감동을 자아낼지는 미지수다.
소련과 고르바초프는 과연 어떠한 정책을 선택할 수 있을 것이며 소련의 장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소련의 전문가들은 불행히도 고르바초프가 택할 수 있는 선택이란 인민들을 설득하거나 아니면 과거의 차르 이상의 권력을 확보한 자신의 권력에 의존하는 길밖에는 없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고르바초프 스스로의 결단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그를 강요할 것이라고 전망된다.
혁명초기 볼셰비키들이 내세웠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사회주의의 우월성등은 73년이 지난 오늘날 여지없이 무너져가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최근 소련의 코메콘 체제와의 결별,혹은 차별성의 철폐로 완전히 무너져버린 상태고 사회주의 우월성 주장은 오히려 소련내에서 더욱 부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고르바초프는 말썽 많은 제국 소련을 어디로 끌고 나아갈지 궁금하기만 하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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