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코트의 악동' 27년 꿈 이뤘다...세계 1위 디펜딩 챔피언 꺾고 US오픈 8강행

중앙일보

입력

US오픈 8강행을 확정하고 주먹을 쥔 닉 키리오스. AP=연합뉴스

US오픈 8강행을 확정하고 주먹을 쥔 닉 키리오스. AP=연합뉴스

'충격의 이변.'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홈페이지는 '코트의 악동' 닉 키리오스(세계랭킹 25위·호주)의 2022 US오픈 8강 진출을 이렇게 표현했다. 키리오스는 5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세계 1위이자 디펜딩 챔피언인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를 2시간 53분 승부 끝에 3-1(7-6〈13-11〉, 3-6, 6-3, 6-2)로 물리쳤다. 지난 7월 윔블던에서 개인 메이저 최고 성적인 준우승을 차지한 키리오스는 이날 승리로 생애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2차례 연속으로 8강에 올랐다.

키리오스의 승리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는 테니스 재능을 타고 났지만, 다혈질이라서 코트에서 불같은 성격을 주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대회마다 심판, 관중, 볼퍼슨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충돌했다. 복장도 강렬하다. 미국프로농구(NBA)를 떠올리는 헐렁한 민소매 유니폼 상의에 모자챙을 뒤로 삐딱하게 돌려쓰고 경기에 나선다. 여기에 귀걸이와 목걸이 그리고 빨간색 조던 농구화를 착용한다. 흡사 힙합 무대에 서는 래퍼를 연상케 한다.

이번 대회 단식 2회전 경기 도중엔 비속어를 쓰며 "경기장에서 대마초 냄새가 난다"며 주심에게 항의하고, 상대 선수 쪽을 향해 침을 뱉었다. US오픈조직위원회는 비신사적인 행위를 한 키리오스에게 벌금 7500달러(약 1000만원)를 2일 부과했다. 올해 윔블던에서도 관중석을 향해 침을 뱉고, 심판에게 폭언을 퍼부어 두 차례 총 1800만원의 벌금 징계를 받았다. 같은 기간 전 여자친구를 폭행한 혐의로 법원에 출석하라는 통보도 받았다. 영국 익스프레스는 키리오스의 통산 벌금 액수를 무려 70만 파운드(약 11억원)로 추정했다. 통산 상금은 160억원 정도다.

이날 키리오스는 승부에만 집중했다. 두 선수는 서브에이스에서 키리오스 21개, 메드베데프 22개로 팽팽했으나, 위너에서는 키리오스가 53-49로 앞섰다. 집중력도 돋보였다. 키리오스는 7번의 브레이크 기회 중 5번(71%)을 성공했다. 키 1m93㎝의 장신인 키리오스는 높은 타점에서 꽂히는 시속 200㎞ 이상의 파워 서브가 주무기다. 서브 에이스를 쉽게 따낸다. 자존심 강한 조코비치가 "(서브) 에너지가 최고"라고 극찬을 정도다. 단순히 힘만 앞세운 건 아니다. 그는 베테랑 선수 못지않게 네트 플레이가 섬세하다. 신인 시절엔 레전드 '로저 페더러와 라파엘 나달을 합친 선수'로 기대를 모았다. 나달은 역대 최다인 메이저 22승, 페더러는 20승을 거둔 남자 테니스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20대 초반 세계 13위까지 올랐다.

키리오스는 승리 후 코트 인터뷰에서 "마침내 뉴욕 팬들에게 내 재능을 보여줄 수 있어서 기쁘다. (테니스를 시작하고) 무려 27년이나 걸렸다"며 감격했다. 반면 이날 패한 메드베데프는 이 대회 직후인 12일 발표되는 세계 랭킹에서 1위에서 밀리게 됐다. 대회 16강에 진출한 라파엘 나달(3위), 카를로스 알카라스(4위·이상 스페인), 카스페르 루드(7위·노르웨이) 중 한 명이 새 1위가 된다. 키리오스의 다음 상대는 카렌 하차노프(31위·러시아)다. 상대 전적은 1승 1패로 팽팽한데, 그중 최근인 2020년 호주오픈 3회전에서는 키리오스가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이겼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