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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 울리는 쪼개기 상장…‘3중 방지턱’ 생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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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앞으로 상장 기업의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는 ‘기업 쪼개기’ 이전 주가로 주식을 팔고 탈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기업이 쪼갠 자회사를 상장할 때 일반 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이 미흡하면 상장이 막힌다. 또 물적분할 관련 기업 공시는 한층 강화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이런 내용의 ‘물적분할 자회사 상장 관련 일반 주주 권익 제고 방안’을 4일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자본시장 혁신과 투자자 신뢰 제고로 모험자본 활성화’ 후속 대책이다.

인적분할과 물적분할 개념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인적분할과 물적분할 개념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물적분할은 기업이 주요 사업부를 떼어내 자회사로 만들고, 추가 상장해 투자금을 끌어오는 것을 말한다. 이때 분할 회사가 신설 회사의 100% 주주다. 기업은 지배주주의 지분 희석 없이 성장성이 큰 사업에 자금을 끌어올 수 있다. 하지만 소액 주주는 주식가치가 희석되면서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볼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에 따르면 기업 쪼개기 상장에 나선 경우 모회사의 기업가치(PBR)는 상장 후 약 30% 하락했다. 실제 LG화학이 지난해 9월 핵심 사업인 배터리 사업을 분사(LG에너지솔루션)하고, 상장에 나서기로 하자 LG화학 주가는 내리막길을 걸었다. 당시 LG화학 기존 주주들은 ‘앙꼬 없는 찐빵’에 투자한 꼴이 됐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금융당국이 소액주주의 피해를 막기 위한 3중 보호장치를 마련한 이유다. 내년 1월 도입되는 주식매수청구권이 핵심이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상장 기업의 주주가 물적분할식 기업 쪼개기에 반대하는 경우 기업에 주식을 사줄 것을 청구하는 권리다.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물적분할이 추진되기 이전 주가로 주가를 팔 수 있다. 매각 가격은 원칙적으로 주주와 기업 간의 협의로 정한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만일 협의가 되지 않으면 자본법령상 시장가격(이사회 결의일 전날부터 과거 2개월, 과거 1개월, 과거 1주일간 각각 가중평균한 가격을 산술 평균)을 적용한다. 이조차도 어긋나면 법원에 매수가격 결정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

모회사 주주에게 자회사 신주를 우선 배정하는 방안은 대책에서 제외됐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 대선공약이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신주 우선 배정은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 의견에 중·장기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기업의 공시 의무도 강화한다. 기업은 앞으로 이사회 의결 후 3일 이내에 주요사항보고서를 통해 물적분할의 구체적인 목적, 기대 효과, 주주보호방안을 공시해야 한다. 특히 분할 자회사 상장을 계획하는 경우 예상 일정 등을 공시해야 한다. 추후 상장 일정이 변경됐을 때는 정정 공시도 해야 한다.

물적분할 이후 자회사 상장 심사 문턱은 높아진다. 물적분할 이후 5년 내 자회사를 상장하려는 경우, 거래소가 모회사 일반주주에 대한 보호 노력을 심사하고, 미흡한 경우 상장이 제한된다. 이미 물적분할을 끝낸 기업도 분할 후 5년이 지나지 않았다면 이번에 강화된 상장심사를 받는다.

금융위 측은 “심사 시 형식적인 주주 소통만으로는 주주 보호 노력을 했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기업의 실질적 노력을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의견이 엇갈린다. 김규식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쪼개기 상장에 따른 소액주주의 피해를 막는 대책이 나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다만 그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가격에 시장가격 대신 공정가액 등 유연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매각 가격을 시가로 고정하면 자칫 기업이 주가를 끌어내리는 등 유리한 시점을 택해 소액주주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2본부장은 “물적분할 제도는 기업의 원활한 구조조정이라는 순기능도 있다”며 “모든 물적분할에 주식매수청구권을 도입하기보다는 핵심 부문을 물적분할하는 경우로 한정하는 등 제도의 순기능을 살릴 방법도 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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