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제품인가 창작품인가…美 미술전 우승 AI그림에 커지는 논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전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제이슨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 사진 콜로라도주 박람회 페이스북 캡처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전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한 제이슨 앨런의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 사진 콜로라도주 박람회 페이스북 캡처

인공지능(AI)을 통해 그린 그림은 예술인가 아닌가. 이건 제품인가, 창작품인가. 미국에서 이 논쟁이 격렬하게 불거졌다. 한 미술대회에서 AI로 제작한 ‘출품작’이 1위에 오르면서다.

논쟁의 불을 댕긴 건 지난달 ‘콜로라도 주립 박람회 미술대회’의 디지털 아트 부문이다. 온라인 게임 제작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제이슨 앨런(39)이 제출한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Theatre D’opera Spatial)이 1등을 수상했다. 상금은 300달러(약 40만원)에 불과했지만, 앨런이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소셜미디어에 올리자 순식간에 찬반 논쟁이 불거졌다. 이 작품은 화가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일반적인 그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앨런이 작품 제작에 사용한 건 ‘미드저니(Midjourney)’라는 AI 프로그램. 국내에도 이미 알려져 있는 이 프로그램은 텍스트로 된 설명을 입력하면 몇 초 만에 이미지로 변환시켜 준다. 몇 달 전 이를 사용한 뒤 생성된 그림에 감탄했던 앨런은 미드저니가 “악마적 영감”을 갖춘 디지털 프로그램이라고 느꼈고, 출품 기회를 찾았다. 그는 ‘콜로라도주 박람회 미술전’에 디지털아트 부문이 있음을 확인한 뒤 미드저니를 이용해 3개의 작품을 생성했다. 그리고 이 중 하나인 ‘스페이스 오페라 극장’을 출품해 우승을 차지했다. AI로 만든 이미지가 예술가의 작품을 판단할 때 적용하는 기준인 창작성과 예술성에서 인정을 받아 1등에 올랐다는 얘기다. 3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앨런은 “이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보여주고 싶어서” 출품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출품작이 창작력이 발휘된 ‘예술품’인지, 아니면 AI가 만든 ‘제품’인지를 놓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해당 미술전을 개최한 콜로라도 농무부는 앨런이 출품자 이름에 ‘미드저니를 통한 제이슨 앨런(Jason M. Allen via Midjourney)’이라고 공개했다며, 디지털아트 부문은 “디지털 기술을 통한 예술적 관행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즉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것도 확장된 예술로 볼 수 있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 부문의 심사위원들은 미드저니가 AI라는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단, 이들은 “알았더라도 앨런에게 상을 줬을 것”이라는 입장이라고 콜로라도 농무부는 밝혔다.

AI가 산업과 생활 전반에 침투하며, 혁명적 변화를 일으키리라는 전망은 이제 상식이다. 하지만 AI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시대로 진입하면서 창작과 예술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AI의 진입을 수용하는 쪽에서 이는 경계의 확장이 된다.
예술에 관한 한 인간을 대신하는 기술의 혁신이 예술에도 여파를 미친다. 대표적인 기술 혁명이 카메라의 발명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시인이자 미술 평론가인 샤를 보들레르는 사진을 놓고 “예술의 가장 치명적인 적”이라고 했다. 20세기에 들어선 디지털 편집 도구와 포토샵 등 컴퓨터를 통한 편집ㆍ디자인이 순수 예술가들과 차별화된 또 다른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림 그려주는 AI 역시 최근 쏟아지고 있다. 미드저니를 비롯해 달리-2(DALL-E2), 스테이블 디퓨전 등 국내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이들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고급 아마추어’들은 단지 몇 개의 단어를 입력해서 복잡하고 추상적이거나 사실적인 작품을 완성할 수 있다고 NYT는 알렸다. 이들 프로그램은 오픈 웹에서 수백만 개의 이미지를 스크랩한 다음 알고리즘을 통해 패턴과 관계를 인식한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2018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달러에 낙찰된 '에드몽 드 벨라미.' 세계 최초의 AI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2018년 10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3만 달러에 낙찰된 '에드몽 드 벨라미.' 세계 최초의 AI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AFP=연합뉴스

앞서 2018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선 세계 최초 AI 화가로 알려진 프랑스 예술집단 ‘오비어스’스가 만든 작품 ‘에드몽 드 벨라미’가 43만2500달러(약 6억원)에 낙찰되기도 했다. 이 그림은 온라인 시각 백과사전 위키아트에 올라온 14~19세기 초상화 1만5000점을 대상으로 한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생성됐다. 진중권 광운대 정보과학교육원 특임교수는 이와 관련 “100년 전 마르셀 뒤샹이 변기를 작품으로 들고 나왔을 때부터 논란이 돼 왔다”며 “현대미술의 논리는 누가 제작했느냐부터 이를 미학적으로 정당화하기까지를 포함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AI 그림도 누가 프로그램했는지부터 시작해 그 이미지를 고른 사람, 이후에 미학적으로 설명한 사람 등이 모두 창작의 영역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예술의 영역으로 진입하는 AI를 어떻게 볼지를 놓곤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는 “최근 AI 작품의 등장은 기존 작가들에게 ‘멘붕’이라고 할 정도로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하지만 자율주행, 서빙 로봇 등과 같이 예술에서도 시대의 흐름을 거스를 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윤리 문제와 함께 저작권 문제가 생길 것”이라며 “AI가 만든 그림이 기존 작가의 작품을 어느 정도 반영했는지 등 표절 여부의 범위를 놓고 법적 다툼을 할 소지도 크다”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