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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하면 2주 뒤에 맛볼 수 있다...연매출 40억 '손찐빵' 비결 [e슐랭 토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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찐빵마을 들어서자 '구수한 냄새' 진동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안흥리 ‘안흥찐빵마을’.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한 찐빵집에 들어서자 위생 모자와 마스크 쓴 할머니 4명이 온돌방에 모여 앉아 손찐빵을 빚고 있었다.

찐빵을 찌고 있는 솥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구수한 찐빵 냄새가 진동했다. 안쪽에선 찐빵에 넣을 팥을 삶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23년째 이 집에서 손찐빵을 만들어 온 진서운(71·여)씨는 “아침 8시에 시작해 오후 4시30분까지 일하는데 하루 몇 개를 빚는지는 모를 정도로 많이 빚는다”며 “20㎏ 밀가루 10포대 정도 쓴다. 손으로 빚어 쫄깃하니 한번 잡숴봐”라고 말했다.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대표 김성순(49)씨가 솥에서 찐빵을 꺼내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대표 김성순(49)씨가 솥에서 찐빵을 꺼내고 있다. 박진호 기자

어머니가 만들어 준 '추억의 맛' 주문 폭주 

1984년 남옥윤(72·여)씨가 문을 연 이 찐빵집(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은 아들인 김성순(49)씨가 대를 이어오며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준 찐빵 맛을 추억하는 단골이 많아서다. 요즘은 전화로 주문하면 2주 뒤에 배달이 가능할 정도로 밀려있다.

서울에서 온 김현호(66·여)씨는 “양양 낙산해수욕장에 놀러 갔다가 생각나서 먼 길을 돌아 들렸다”며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준 찐빵 맛이 그리워 자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에게 추억의 음식인 안흥찐빵 역사를 알기 위해선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평균 해발 450m인 안흥면 주민 상당수는 팥을 재배해 생계를 이어왔다.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에서 위생 모자와 마스크 쓴 할머니 4명이 온돌방에 모여 앉아 손찐빵을 빚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에서 위생 모자와 마스크 쓴 할머니 4명이 온돌방에 모여 앉아 손찐빵을 빚고 있다. 박진호 기자

‘맛·지리·입소문’ 삼박자 맞아 대박

6·25전쟁 이후 쌀 구경이 어려웠던 시절, 이 마을에선 비교적 구하기 쉬운 팥과 밀가루를 활용해 찐빵을 만들어 먹었다. 당시 횡성군 안흥면은 서울과 강릉을 잇는 42번 국도의 중간지점으로 항상 북적이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주로 강원지역 고랭지에서 재배하는 채소·감자나 목재 등을 운반하는 화물차와 일반 여객버스가 정차하던 곳이다. 안흥장터에서 식사를 하고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 판 찐빵을 맛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또 이 동네 막걸리를 팔던 가게에서 술을 넣어 숙성한 반죽으로 찐빵을 쪄 냈다. 1960년대 막걸리집에서는 단돈 5원에 찐빵과 시래깃국을 내놓기도 했다. 찐빵 맛과 지리적 이점, 입소문까지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안흥찐빵은 전국으로 알려졌다.

이후 주민들은 너도나도 손찐빵 판매에 뛰어들었다. 1990년대 이 마을에는 34개의 업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 이후 2000년 초반까지 10여개 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았다. 여기에 기계화 전환과 마을 옆으로 외곽도로가 생기면서 손찐빵 업체는 점점 사라졌다. 현재 이 마을엔 손찐빵 업체 11곳과 기계찐빵 업체 3곳 등 총 14곳이 있다.

지난달 23일 찾은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박진호 기자

지난달 23일 찾은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박진호 기자

강원 횡성군 안흥면 '안흥찐빵마을' 입구에 설치된 진빵 캐릭터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강원 횡성군 안흥면 '안흥찐빵마을' 입구에 설치된 진빵 캐릭터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박진호 기자

연간 매출액 '손찐빵 40억 원' 달해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주던 찐빵이 떠오르게 하는 맛을 내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린다. 횡성지역에서 생산한 팥을 씻는 것을 시작으로 완성된 찐빵이 나오기까지 10시간 동안 온갖 정성을 쏟아야 한다.

팥을 4시간 이상 푹 삶고 식히는 과정을 거친 뒤 밀가루에 막걸리·계란을 섞어 반죽하고 숙성한다. 30분가량 1차 숙성을 거친 반죽에 팥을 넣고 모양을 만든다. 그리고 온돌 방식을 적용해 자체 제작한 숙성실에서 2차 숙성을 한다. 숙성이 끝난 찐빵은 솥으로 들어가 찌는 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대표 김씨는 “삶는 과정에서 팥이 타거나 숙성 때 온도나 습도가 맞지 않으면 재료를 모두 폐기하고 새로 만들고 있다”며 “어느 하나라도 문제가 생기면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시던 찐빵 맛을 낼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관계자가 삶은 팥을 식히고 있다. 박진호 기자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관계자가 삶은 팥을 식히고 있다. 박진호 기자

횡성 재배 '팥 60t' 업체에 공급 

손찐빵에 들어가는 팥은 전부 횡성지역에서 재배한다. 현재 100여 농가에서 재배한 팥 60t가량이 손찐빵 업체에 공급되고 있다. 손찐빵 판매로 인한 연간 매출액은 40억 원. 이처럼 재료 공급이나 판매에는 문제가 없지만 손찐빵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주민의 고령화는 피해갈 수 없는 문제다.

일손이 눈에 띄게 줄면서 업체들은 크게 걱정하고 있다. 이 가게는 1990년대엔 주민 30명이 모여 앉아 찐빵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4명밖에 없다.

오래전 가게 앞에 구인광고까지 붙였지만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런 이유로 주말이면 누나와 여동생 등 3명이 찐빵을 만드는 데 투입된다. 평일엔 1만개, 주말에는 1만5000개를 만들고 있다. 현재 11개 업체에서 일하는 종사자 수는 비수기엔 30여명, 성수기엔 60여명에 불과하다.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대표 김성순(49)씨가 솥에서 찐빵을 꺼내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지난달 23일 강원 횡성군 안흥면 행정복지센터 맞은편에 있는 '면사무소 앞 안흥찐빵' 집 대표 김성순(49)씨가 솥에서 찐빵을 꺼내고 있는 모습. 박진호 기자

코로나19로 중단된 '안흥찐빵축제' 열려

이근영 안흥찐빵마을협의회 사무국장은 “예전엔 마을 주민 300명 정도가 안흥찐빵을 만들었는데 업체가 줄고 연세도 있다 보니 하나둘씩 일을 그만두게 됐다”며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 같다. 전통의 방식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월 이 마을엔 안흥찐빵을 주제로 한 전시체험문화 복합공간인 '안흥찐빵모락모락마을'이 문을 열었다. 안흥찐빵모락모락마을은 국‧도비 35억 원 등 총 69억 원의 사업비를 들여 안흥면 안흥리 1만3006㎡ 부지에 건축 연면적 951㎡ 규모로 건립됐다.

이곳에선 안흥찐빵을 직접 만들고 오감만족VR체험과 빵양팥군 미디어 아트 관람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또 오는 10월 7~9일 2박 3일간 ‘제14회 안흥찐빵축제’가 3년 만에 이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한편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안흥찐빵 덕에 1999년 '제1회 안흥찐빵축제'가 개최됐다. 이후 매년 10월마다 축제가 이어져 오다 2009년과 2010년 찐빵업체 사정으로 축제를 열지 못했고, 2012~2014년엔 팥 가격 인상으로 축제가 취소됐다. 또 2020년과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여파로 축제를 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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