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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최소화, 원지형 살린 자연스런 골프 코스가 좋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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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호 26면

골프 코스 설계가 백주영 대표

골프 코스 설계가 백주영 대표가 내년 봄 개장 예정인 사우스링스영암 제3 코스 조성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화산처럼 생긴 벙커의 내부와 상부에만 잔디를 깔았고 다른 곳은 10월 중 잔디 파종을 할 예정이다. 이 코스에는 18홀 합쳐 365개의 벙커를 조성한다. 장정필 객원기자

골프 코스 설계가 백주영 대표가 내년 봄 개장 예정인 사우스링스영암 제3 코스 조성 현장을 설명하고 있다. 화산처럼 생긴 벙커의 내부와 상부에만 잔디를 깔았고 다른 곳은 10월 중 잔디 파종을 할 예정이다. 이 코스에는 18홀 합쳐 365개의 벙커를 조성한다. 장정필 객원기자

전남 영암에 있는 사우스링스영암 골프장에서 만난 백주영 대표(랜데코 GEI)는 건설 현장 일꾼 같은 모습이었다. 한여름 햇볕에 내준 피부는 까무잡잡했고 눈만 반짝였다. 환경친화적인 골프 코스 설계가 백주영 대표는 사우스링스에서 짓고 있는 세 번째 코스(18홀) 공사를 총괄 지휘하고 있다.

골프장은 자주 다녀봤지만 조성 중인 골프장은 처음이었다. 자재를 실은 덤프트럭과 골프장 표면을 고르는 셰이퍼들의 불도저 굉음 사이로 백 대표가 운전하는 차량을 타고 공사장 곳곳을 둘러봤다. 지면에서 봉긋 솟은 화산 모양의 벙커 둔덕에만 녹색 잔디가 깔려 있고 다른 곳은 잔디 파종을 기다리고 있어 색깔 대비가 이채로웠다.

스코틀랜드에서 유학한 백 대표는 국내에 드문 링크스(‘링스’라고 표기하는 곳도 있음) 코스 전문가다. 링크스는 바닷가 척박한 지형(링크스 랜드)에 자연적으로 만들어지거나 인위적으로 조성된 골프장을 말한다. 공사장 투어를 마친 뒤 백 소장과 마주앉았다.

곤지암·나인브리지 설계에도 참여

어떻게 골프 코스 설계에 입문하게 됐나요.
“고려대 생명과학대학과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조경을 전공하면서 생태와 경관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대학원에서 토지설계 과목을 수강했는데 골프장 설계 전문가(임상아 선생)의 특강을 들으면서 푹 빠져버렸죠. 그분이 ‘골프 코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다. 토목적인 엔지니어링 사고에서 벗어나 골프장 부지가 입지하고 있는 경관에 조화되도록 접근해야 한다’고 하신 게 귀에 쏙 들어왔죠.”
스코틀랜드에서 유학도 하셨죠.
“에든버러 대학에 골프 코스 설계 석사과정이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이거다’ 싶어서 신청했어요. 조경기술사 자격을 따고 사업도 차근차근 성장하던 시점이라 주위에서 ‘왜 가는데?’라고 말렸죠. 도제식으로,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으로 배우기보다는 골프 발상지에서 제대로 된 이론과 실기를 익히고 싶었어요.”
대표작을 꼽는다면?
“첫 작업으로 했던 충남 태안의 로열 링스가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에는 국내에 링크스라는 개념조차 생소했거든요. 이전까지 링크스를 밟아 보지 못했던 국내 최고의 골프장 설계가와 함께 제가 먼저 경험했던 링크스를 같이 느끼면서 한국에도 링크스를 전파하고 싶었습니다. 곤지암 골프클럽 리모델링, 해슬리 나인브리지 실시설계에도 참여했습니다.”
골프장 설계에서 가장 신경 쓰는 건?
“자연스러움입니다. 제가 영국에서 5~10파운드 내고 너무나 재미있게 골프를 했던 곳은 다 원지형을 그대로 살려서 만든 곳이에요. 산을 깎고 계곡을 메우는 방식으로 골프장을 짓는 건 자연을 빌려 쓰는 우리로서는 좀 피해야 할 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원지형을 가능하면 살리면서도 특성을 갖춘 코스를 만들기 위해 늘 고민합니다.”
국내에도 링크스 코스가 있나요?
“없습니다. 해남 파인비치, 남해 사우스케이프, 인천 스카이72 모두 링크스가 아닙니다. 링크스 스타일을 지향한 거죠. 링크스는 몇백년 동안 해변의 모래가 쌓여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는 척박한 지역을 골프장으로 만든 겁니다. 전 세계에서 오리지널 링크스로 분류되는 골프장은 246개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링크스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곳이 충남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인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돼서 골프장을 지을 수 없죠.”
국내 골프 코스도 트렌드가 있죠?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영향을 받아서 소위 명문이라는 곳은 대부분 투 그린(Two Green)에 일본식 정원 같은 분위기였죠. 안양 베네스트가 대표적입니다. 곳곳에 꽃이 만발하고 연못이 있는 아기자기한 코스를 선호했던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해외 골프장에서 라운드 하거나 중계를 보는 골퍼가 늘면서 링크스 느낌의 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골프장도 경쟁력을 갖기 시작했어요.”
골프장의 친환경 트렌드와도 관련이 있어 보이네요.
“맞습니다. 영국의 GEO(Golf Environment Organization)는 지속 가능한 친환경 골프장 인증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심사위원인데요. 환경을 보존하고 물과 농약 사용량을 줄이는 노력에 점수를 주는 거죠. 인위적인 장치나 조경을 최소화한 코스에 대해 ‘너무 황량하다’ ‘성의가 없는 것 아니냐’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기는 합니다.”
우리나라 골프장의 특징은?
“아무래도 산악 지역이 많다보니 마운틴 코스가 대세인 것 같아요. 산을 깎고 골을 메우는 엔지니어링을 모르면 설계가가 아니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죠. 그런데 저는 우리의 산악 경관을 골프장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 개념이 좋은 것 같아요. 경기도 가평 같은 데 가면 산자락이 중첩돼 펼쳐진 풍경이 있잖아요. 우리나라에만 있는 그런 자연을 살리는 스카이 홀 같은 게 좋다고 봅니다.”
백주영 대표가 사우스링스영암 제3 코스 조감도를 보여주고 있다. 장정필 객원기자

백주영 대표가 사우스링스영암 제3 코스 조감도를 보여주고 있다. 장정필 객원기자

그렇다면 어떤 골프 코스가 좋은 코스라고 할 수 있을까. 백 대표는 대답하기 참 어렵다면서 이런 얘기를 해 줬다. “골프장 오너분이 라운드를 한 뒤 ‘우리 골프장 어렵죠?’ 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근데 어렵다기보다는 억지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티샷이 잘 맞아서 떨어지는 페어웨이 한가운데 벙커를 만들어 놓는다든지, 여성 골퍼가 한 번에 건너기 어려운 넓이의 연못을 조성한다든지 하는 거죠. 잘 친 샷에 대해서는 보상이 돌아오고,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코스가 좋은 것 같습니다.”

모처럼 티샷이 잘 맞아 우쭐해 있는데 캐디가 “벙커에 빠진 것 같은데요” 할 때의 기분. 그걸 겪어본 사람은 백 대표 말에 공감할 것 같다.

환경·여성 친화적 골프코스 늘어나야

본인의 골프 스코어는?
“싱글을 할 때도 있고 90개 넘을 때도 있습니다. 골프는 동반자가 있는 게임이니까 에티켓과 규칙을 지키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코스 디자인이나 벙커 위치 등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골프장 관리가 잘 돼 있지 않으면 혼자서 중얼중얼 할 때가 있어요. 이것도 직업병인가 봅니다. 하하.”
국내 골프장이 여성 친화적인가요.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레이디 티를 대충 적당한 곳에 만들어 놓는 바람에 여성 골퍼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체적으로 여성 친화적인 골프장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은데, 여성 골퍼들도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남녀 골퍼가 공정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코스 세팅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커진다면 골퍼들이 더 즐겁게 라운드 할 수 있을 겁니다.”
골프 코스 설계가가 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
“일단 골프를 할 줄 알아야겠죠. 건축과 조경, 골프장 코스에 대해 실무 지식도 쌓아야 합니다. 또 중요한 하나는 많이 봐야 한다는 거죠. 저는 세인트 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세 번 플레이를 했는데 18홀을 그냥 걸어 다닌 것도 몇 번이나 됩니다. 직접 플레이를 하는 것과 또 다른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백 대표에게 골프 코스 설계를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고 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넓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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