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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쇼크, 美 고용호조…'긴축 발작' 원화값 장중 연저점 기록

중앙일보

입력

31일 달러당 원화 가치가 장중 1352.3원까지 떨어졌다. 연합뉴스

31일 달러당 원화 가치가 장중 1352.3원까지 떨어졌다. 연합뉴스

'파월 쇼크'와 미국 경제 지표 호조에 원화값의 자유낙하가 이어지고 있다. 이틀 만에 장중 연저점을 또다시 갈아치웠다. 미국 고용지표가 호조를 보이며 경기 둔화 우려가 줄면서 미국이 긴축의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힘이 실리는 '수퍼 달러'(달러 강세) 흐름과 반대로 원화 가치는 맥을 못 추고 있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가치는 전날보다 3.3원 떨어진(환율 상승) 달러당 1350원에 개장했다. 이후 장중 달러당 1352.3원까지 밀리며 2거래일 만에 장중 연저점을 다시 찍었다. 세계금융위기인 2009년 4월 28일(달러당 1356.8원)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오후 들어 하락세가 주춤하며 전날보다 9.1원 오른 달러당 1337.6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원화 가치는 세계금융위기 이후 13년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번 달에만 연저점을 다섯번 갈아치웠다. 정부도 올해 들어서만 다섯 번의 구두개입에 나섰지만, 원화값 하락세를 막는 데는 역부족이다.

미국, 긴축 기조 장기화 예고 

원화값 약세를 부추기는 건 미국의 긴축 기조다. '인플레 파이터' 본색을 제대로 드러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의 속도를 높여가고 있다. Fed가 다음 달 20~21일(현지시간) 열리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다시 한번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Fed 관계자들은 강경한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는 30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매우 높고 경제 역류가 넘쳐난다"며 "수요와 공급을 맞추고 물가 목표치 2%를 달성하기 위해 한동안 기준금리를 높게 유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도 "제롬 파월 Fed 의장의 잭슨홀 발언이 시장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 (주식 시장 하락을) 보면서 기뻤다"고 말했다. 파월은 지난 26일 잭슨홀 미팅에서 “당분간 제약적인 (통화) 정책 스탠스 유지가 필요하다”며 강도 높은 매파(통화 긴축) 발언을 내놨고, 시장은 요동쳤다.

완화적 통화정책으로 'Fed 피벗(Pivot·태세 전환)'을 기대하는 시장은 낙담하는 눈치다. 미국의 경제 지표가 순항 중이라서다. 중앙은행의 강력한 긴축이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통화정책 전환을 압박하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상황이 나쁘지 않아서다. 나쁘지 않은 경제 지표에 그야말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모양새다.

미국 민간경제연구기관인 컨퍼런스 보드에 따르면 8월 미국 소비자신뢰지수는 103.2다. 전달보다 7.5포인트 상승하며 4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현재 여건 지수(현재 경기에 관한 평가)도 139.7에서 145.4로 상승했으며 미래기대지수도 65.6에서 75.1로 올랐다.

미국 노동시장도 여전히 활황이다. 미국 노동부는 7월 미국 기업의 구인 건수가 1120만 건으로, 전달보다 20만건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는 구직자 대비 두배 많은 수치로, 구직자 1명당 2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의미다. Fed가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셈이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게다가 여전히 물가는 높은 수준이다.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지난 3월부터 석 달 연속 8%대에 머물렀고, 지난 6월에는 41년 만에 최고 수준인 9.1%를 기록했다. 지난 7월(8.5%) 상승세가 다소 꺾였지만 Fed가 마음을 바꿔 먹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Fed가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수도 있다. 투자 심리가 위축되면 안 그래도 높은 달러의 몸값이 더 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미 달러 가치는 2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30일(현지시간) 주요 6개국 통화대비 달러화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1973=100)는 108.74원을 기록했다. 지난 28일엔 109.18을 찍었다.

미국의 긴축뿐만 아니라 유로 등 다른 통화의 약세도 달러 값을 더 밀어 올리고 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유럽의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며 유로화는 약세를 보이고 있다. 최근 ‘1유로=1달러’인 패리티(Parity)가 깨지며 유로화가 공식 출범한 2002년 12월 이후 처음으로 유로화가 달러보다 싸졌다. 30일 유로 가치는 0.9998달러로 마감했다.

중국의 경기 둔화도 달러 가치를 끌어올리는 요인이다. 위안화 가치도 2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중국인민은행이 31일 위안화 가치를 전날보다 0.15% 올린 달러당 6.8906위안으로 고시하면서 원화 약세가 다소 진정돼 종가 기준 연저점은 피했다”고 분석했다.

시장에선 원화 가치가 달러당 1400원까지 밀릴 수 있다고 본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것보다 '러시아 에너지 의존'을 줄여 에너지 가격을 떨어뜨리는 것이 물가 상승 압박 해소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며 "세계 외환 시장의 패닉을 막기 위해 미국이 주요 신흥국과 '달러 스와프'를 체결해 자국만이 아닌 세계 경제 안정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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