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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안보실까지 대폭 물갈이"…늘공도 한밤 폰 울리면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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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시퍼런 칼날이 내 코앞까지 온 게 느껴진다.”

30일 용산 청사 앞에서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런 속내를 토로했다. 대통령실 내부 전방위적 인적 쇄신 드라이브에 대한 걱정이었다. 이 관계자는 “지난주 비서관급에 이어 이번 주 선임행정관(2·3급)과 행정관(4·5급)에 대한 검증이 시작됐다”며 “업무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들에겐 사직을 권고하는 전화가 주로 밤에 가기에, 한밤중에 갑자기 휴대폰이 울리면 가슴이 철렁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족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공동육아나눔터에서 동화책 '공룡똥' 읽기를 함께하며 참가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족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다문화가정 등을 위한 공동육아나눔터에서 동화책 '공룡똥' 읽기를 함께하며 참가 가족들과 대화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100일을 전후해 선임행정관 이하 전 직원들에게 업무기술서를 써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대통령실이 업무역량과 공직윤리 등을 평가해 총원 420여명 중 최대 80명가량을 교체할 방침이란 얘기까지 흘러나온다.

쇄신의 칼날은 '늘공'(늘 공무원)들에게도 예외가 없다고 한다. 늘공은 정부 부처 출신 파견 공무원을 말한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지금까지 주로 정치권에서 온 어공(어쩌다 공무원)이 교체 대상이 됐다면 이제부터는 각 부처에서 온 늘공이 물갈이 될 것”이라며 “이미 상당수 공무원에게 온 곳으로 원대복귀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경제수석실이나 사회수석실은 물론 지금까지 물갈이 대상에서 한발 비켜서 있던 국가안보실도 포함되는 등 물갈이 폭이 계속 커지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제부처는 물론 군과 외교부, 통일부 공무원 등도 다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주된 타깃이던 어공들의 불만은 사그라들지 않는 분위기다. 최근 알려진 내부 감찰과 교체작업이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 라인 등 정치권에서 온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공’ 출신 한 행정관은 익명을 전제로 “행정관급에서 '어공 대 늘공'의 물갈이 인원의 균형을 맞추려는 듯 한데, 책임은 인사라인을 맡았던 검찰 출신에게 먼저 지게 하는 게 맞다”고 주장했다.

다른 대통령실 참모는 “수석급은 무슨 '무풍지대'냐. 업무를 지시한 사람은 살아남고 이를 실행하기만 한 실무진에게 책임을 묻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윤 대통령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꼽히는 게 내각과 대통령실 등의 인사 난맥상인데, 이를 주도한 검찰 출신 인사라인이 쇄신 대상에서 빠지는 데 대한 여론이 매우 좋지 않다. 최대 80명까지 교체할만큼 대통령실 인선이 부실했다면 인사 담당자들에게도 당연히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최영범 홍보수석을 제외한 나머지 수석급은 전원이 살아남고, 비서관 이하만 칼을 맞는 것에 대한 불만도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족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지원센터 이용 가족 및 관계자들과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구로구 가족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해 지원센터 이용 가족 및 관계자들과 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여권 일각에선 이번 물갈이 작업을 “윤 대통령의 검찰 친정 체제 구축 강화”로 분석하기도 한다. 실제로 감찰 작업을 통해 물갈이 업무를 지휘하는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의 입지는 점점 커지는 모양새다. 대선 직후 인사 라인을 책임졌던 이원모 인사비서관과 주진우 법률비서관 역시 건재하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윤 대통령이 최근 정치 현안에 거리를 두면서 민생 보듬기 행보를 강화하는 것도 '윤핵관 정치인 그룹'과 거리를 두려는 행보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다.

이날 서울 구로구 가족센터를 찾은 윤 대통령은 ‘다양한 소외·취약 가족과의 만남’ 간담회를 갖고 “국적이 어디냐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한국과 세계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강조했다. 또 “아이들이 커나가는 데 있어 부모가 역할을 다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국가가 부모를 도와, 큰 책임을 갖고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시교육청 지정 대안교육시설인 움틈학교도 찾았다. 움틈학교는 한국에 중도 입국한 학생들의 일반학교 복귀를 돕는 기관이다. 윤 대통령은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했느냐’는 아이의 물음에 “국민학교(초등학교)에 입학해서 아주 공부를 못 했다. 받아쓰기 100점 만점에 10점도 맞았고 선생님이 어머니더러 학교에 오라고 해 조심성과 집중력이 너무 떨어지는 것 같다고 걱정했다”며 “어머니가 직장을 다녀서 집에서 할머니하고 있다 보니, 뭘 제대로 배우는 게 없었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은 국어보다 산수가 자신 있었다며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다 보면 실력이 확 는다. 그러니 어렵더라도 포기하지 말라”고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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