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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확 풀리는 물벼락” 지리산 ‘비명 폭포’의 정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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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지난 21일 오후 2시쯤 전남 구례군 산동면. 하늘색 비옷을 입은 김현승(11)군이 아버지 손을 잡고 폭포 아래로 다가섰다. 조심스레 멈춘 김군은 머리 위로 폭포수가 쏟아지자 깜짝 놀라며 몸을 웅크렸다. 이날 김군이 물을 맞은 곳은 15m 높이의 계곡에서 은빛 물줄기가 쏟아지는 수락폭포(水落瀑布)다.

김군 옆쪽으로는 형형색색의 비옷을 입을 피서객들이 “아~” 하는 탄성과 함께 물맞이했다. 탐방객 일부는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거나 비명을 내지르면서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김군 아버지(45)는 “폭포를 맞는 것만큼 시원하고 짜릿한 피서법은 없을 것”이라며 “몽둥이처럼 내리치는 물줄기를 맞고 나면 온몸의 피로가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락폭포를 찾은 피서객들이 물맞이를 하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지난 7일 전남 구례군 산동면 수락폭포를 찾은 피서객들이 물맞이를 하면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연일 30도를 넘나드는 더위에 폭포나 계곡에 피서객 발길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이중 ‘물맞이 폭포’는 건강에도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름 내내 인파가 몰린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구례 수락폭포가 국내 대표적인 물맞이 폭포다.

수락폭포에서 ‘물벼락’을 맞으면 신경통과 관절염·근육통 등에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허리통증과 신경통을 앓아온 인근 주민들이 모내기나 김매기처럼 고된 노동을 마친 후 찾으면서 입소문이 났다. 기암괴석 사이로 은가루 같은 폭포수가 쏟아지고 주변 경치도 뛰어나 구례 10경으로 꼽기도 한다.

폭포수 인근 맑고 청명한 공기도 피서객을 이끈다. 탐방객들은 “폭포 주변에 앉아 물맞이하는 모습만 봐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주민 박정철(59·구례읍)씨는 “머리가 복잡할 때면 수락폭포의 청정한 기운이 생각나 사계절 내내 찾곤 한다”며 “우리 가족에게는 일종의 천연 워터 테라피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수락폭포 일대의 공기 수준은 2013년 7월 전남보건환경연구원 조사 결과로도 확인됐다. 당시 수락폭포의 공기 1㎖당 산소 음이온이 평균 1만4060개, 최대 17만8100개로 나타났다. 구례군 측은 “국내 도시의 34배 수준이며, 공기가 맑기로 유명한 전남에서도 가장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공기의 비타민’으로 불리는 산소 음이온은 면역력 증진과 비염·천식 완화, 혈액 정화 등에 효능이 있다.

송만갑 선생.

송만갑 선생.

수락폭포는 판소리 역사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옛날 소리를 배우는 사람들은 이곳을 찾아 폭포보다 더 큰 소리를 내 득음을 했다고 전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동편제(東便制)의 거장 국창 송만갑(1865~1939·사진) 선생이다. “강하고 무거운 발성과 간결한 소리마침으로 가장 동편제적인 아름다움을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는 명창이다. 그는 천둥과 같은 굉음을 내며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피를 토하며 목을 단련했다고 한다.

근대 최고의 명창으로 꼽히는 송만갑 선생이 수락폭포에서 가다듬은 것은 철성(鐵聲)이다. 동편제 판소리에서 쇠와 같이 강하고 딱딱한 성음을 말한다. 전문가들은 그의 소리에 대해 “돌덩이처럼 뭉친 소리, 높은 음역에서 가지고 노는 최고의 기술”이라고 평가한다. 그는 ‘춘향가’와 ‘심청가’ 등을 창극화했으며, ‘춘향가’ 중에서도 특히 ‘농부가(農夫歌)’를 잘 불렀다.

송만갑은 고종 때 어전(御前)에서 판소리 불렀고, 감찰 직책을 제수받기도 했다. 1910년 한일 강제병합 후 낙향해 구례에 살면서 소리꾼들을 가르쳤다. 그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부터 1935년까지는 네 차례 음반작업을 통해 민족의 소리를 지키는 데도 앞장섰다.

현재 구례에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동편제판소리전수관과 송만갑 생가 등이 있다. 섬진강을 경계로 각각 동쪽과 서쪽에서 전승된 소리를 동편제와 서편제로 분류한다. 동편제는 애절하고 기교적인 서편제(西便制)와 달리 씩씩하고 웅장한 소리의 특성이 있다.

장석우(62) 동편제판소리전수관 사무국장은 “음향시설이 없던 옛날 소리꾼들은 시끄러운 시장이나 폭포 등에서도 그 소리가 또렷이 들릴 정도로 수련해야 청중에게 판소리를 들려줄 수 있었다”며 “송만갑 명창의 철성이 명성을 떨친 것은 수락폭포와 화엄사 등을 돌며 소리 공부를 한 것과 연관성이 크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많은 폭포가 있지만, 물맞이가 가능한 폭포는 손에 꼽는다. 이름난 대형 폭포는 대부분 폭포 앞에 수심이 깊은 폭호(瀑湖)가 있어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아서다. 반면 수락폭포 같은 물맞이 폭포는 물줄기가 쏟아지는 곳에 암반 등이 있고 폭호가 깊지 않다.

지리산 자락인 수락폭포 외에 대표적인 물맞이 명소는 제주에 있다. 서귀포 바닷가에 있는 소정방폭포와 한라산 깊숙이 자리한 원앙폭포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24절기 중 한가운데인 백중(百中)에 물맞이 풍속이 있다. 음력 7월 15일에 물을 맞으면 병이 낫는다는 속설에 따라 물맞이를 하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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