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몽골이 반도체ㆍ배터리ㆍ디스플레이 등 핵심 산업의 원료 광물을 확보하기 위한 ‘희소금속 협력센터’를 조속히 설립하기로 했다. 미ㆍ중 경쟁 속 가시화된 중국의 자원무기화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박진 외교부장관은 29일 울란바토르에서 열린 바트뭉크 바트체첵 몽골 외교부장관과의 회담을 마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반도체ㆍ디스플레이를 위한 희토류와 배터리용 희소 금속과 같은 몽골에 풍부한 광물과 자원이 한국의 인프라와 기술과 결합해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협력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며 이 같은 계획을 밝혔다.
바트체첵 장관도 “몽골의 자원과 한국의 노하우, 선진 기술을 결합하는 방향에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협력센터는 몽골이 부지를 제공하고 한국이 공적개발원조(ODA) 자금으로 시설을 짓는 방향으로 추진된다.
박 장관은 이러한 계획을 밝히며 “세계 10위권의 자원 부국인 몽골은 한국의 공급망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파트너국”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 등으로 당면 과제로 떠오른 원자재의 탈(脫)중국화를 위한 대응 조치로 해석된다.
지난 17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서명하면서 발효된 IRA에 따라 미국은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이 지급하기로 했다. 당장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현대ㆍ기아차는 세액공제 대상에서 제외돼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 역시 내년부터 투입 광물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에서 40% 이상, 부품은 북미 생산분이 50%가 넘어야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2027년엔 비율이 80%까지 높아진다. 리튬, 코발트, 흑연 등 핵심 광물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관련 기업들이 피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 6월 30일 한국은행의 ‘조사통계월보’ 보고서에 따르면 구리ㆍ알루미늄ㆍ아연 등 주요 광물의 중국 수입 의존도는 평균 67%다. 수입 대체선을 구하지 못할 경우 자동차에 이어 배터리와 반도체 등 한국의 핵심 산업이 줄줄이 타격을 받는다는 의미다.
박 장관은 이날 회담에서 몽골과의 경제안보 분야의 협력을 강조하며 “몽골과 가치연대를 강화해 나가고자 한다”며 사실상 중국의 자원무기화를 겨냥한 가치연대를 언급했다. 그러면서 “몽골은 우리와 민주주의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며 “한국과 몽골은 역내 자유, 평화, 번영을 위해 함께 연대하며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바트체첵 장관 역시 “몽골과 한국은 민주주의ㆍ인권ㆍ자유ㆍ시장경제 등 공동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며 “몽골ㆍ한국ㆍ미국의 3자회담을 개최하자는 몽골 측 구상에 한국이 지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박 장관은 이밖에 남북한과 동시 외교관계를 수립한 몽골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정부의 대북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에 대해 몽골 측에 설명했다”고 밝혔다.
한편 양국은 이번 회담을 통해 ‘한ㆍ몽 기후변화 협력 기본협정’에 가서명했다. 몽골의 ‘10억 그루 나무심기 운동’에도 한국이 동참하고, 3단계 한ㆍ몽 그린벨트 조림사업을 추통해 몽골의 사막화 방지에 기여하기로 했다. 이에 대해 박 장관은 “황사와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외교부 장관의 몽골 공식 방문은 2014년 이후 8년만이다.
박 장관은 외교장관 회담에 이어 이날 오흐나 후렐수흐 몽골 대통령, 롭상남스라이 어용에르덴 총리, 검버자브 잔당샤타르 국회의장 등을 잇달아 예방했다. 박 장관의 카운터파트인 외교장관 외에 국가 지도자들이 직접 나설 정도로 몽골도 적극적 관계 개선 의지를 보였다는 의미다.
특히 후렐스흐 대통령은 일정을 변경해 당초 몽골 외교장관이 주재하기로 돼 있던 만찬도 직접 주재했다. 한국도 박 장관 편에 양국의 관계 개선을 요청하는 내용의 윤석열 대통령의 친서를 직접 전달하며 예우를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