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호영 직무 집행 정지, 여당 대혼돈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803호 01면

[뉴스분석] 법원, 이준석 가처분 일부 인용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전 대구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잠시 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주 비대위원장의 직무 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6일 오전 대구에서 열린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잠시 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낸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여 주 비대위원장의 직무 집행 정지를 결정했다. [사진 대통령실사진기자단]

“정당 민주주의에 반한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6일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전환의 전 과정을 이렇게 판단했다. 이준석(사진) 전 국민의힘 대표가 신청한 비대위 효력 정지 가처분에 대해 주호영 비대위원장 직무 집행 정지를 결정하면서다. 법원의 판단은 내용으로 볼 때 이 전 대표의 ‘100 대 0’ 완승이란 평가가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온다. 반면 비대위 전환을 주도하며 ‘이준석 몰아내기’ 의혹을 받았던 ‘친윤(친 윤석열)계’는 일단 ‘법률적’ 명분은 잃게 됐고 ‘정치적’ 명분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법원은 무엇보다 비대위 전환의 근거였던 ‘비상 상황’이란 판단이 문제라고 봤다. 국민의힘 당헌에 따르면 비상 상황으로 볼 수 있으려면 ‘당대표 궐위 또는 최고위원회의 기능 상실에 준하는 경우’가 발생해야 한다. 하지만 이 전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 징계 직후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대표 ‘궐위’가 아닌 ‘사고’ 상태라고 정의한 뒤 자신은 권한대행이 아닌 직무대행을 맡았다. 비대위 전환을 주도했던 권 원내대표 스스로 ‘비상 상황’이 아니라는 근거를 제시하는 자충수를 뒀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다.

관련기사

법원은 비상 상황의 또 다른 조건인 ‘최고위 기능 상실’도 사실상 친윤계가 자승자박하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봤다. 권 원내대표 등은 배현진 최고위원을 비롯해 최고위원 과반이 사퇴 의사를 표명해 최고위 기능이 상실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 2일 최고위에 권 원내대표와 배 최고위원 등이 참석해 비대위 전환을 위한 최고위 의결을 했다. ‘기능 상실’을 주장하고는 스스로 최고위 핵심 기능인 ‘의결’을 한 데 대해 법원은 “(최고위) 기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이런 전반의 과정에 대해 “(비상 상황을 가져올) 외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하기보다는 일부 최고위원들이 지도 체제 전환을 위해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셀프 비상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특히 지난 9일 전국위에서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임명 결의한 부분에 대해선 당헌뿐 아니라 정당법과 헌법까지 거론하며 “위배된다” “위반했다”고 적시했다. 당내 민주주의 문제 이상의 위법·위헌 문제까지 있다고 지적한 셈이다.

이준석

이준석

이 전 대표는 이날 법원 결정 후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법원의 판단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 변호인단도 “사법부가 정당 민주주의를 위반한 헌법 파괴 행위에 내린 역사적인 결정”이라며 “국민의힘은 법원의 결정을 엄중히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은 대혼돈 상황에 빠졌다. 주 위원장은 “이번 결정은 정당 자치라는 헌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매우 당혹스럽다”고 밝혔다. 기자들과 만나서는 “재판장이 편향성이 있어 이상한 결과가 있을 거란 우려가 있었는데 우려가 현실화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남부지법은 이날 밤 공지를 통해  “재판장인 황정수 부장판사는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회원이 아니다”고 밝혔다.

친윤계에 정치적 치명타, 윤 대통령도 곤혹…국민의힘, 법원에 이의 신청

이날 법원의 결정은 비대위 전환을 주도한 친윤계에겐 엄청난 정치적 치명타일 수밖에 없다는 게 중론이다. 정당 민주주의는 물론 절차적 정당성과 정치적 명분 모두 문제가 있다고 법원이 봤기 때문이다. 친윤계와 주 위원장은 법원의 가처분 결정을 앞두고 “비대위 전환은 정당 내부의 자율적 의사 결정”이라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법원은 “정당 활동 자율성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지적했다. 정도가 지나쳤다는 의미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하태경 의원은 페이스북에 “당 지도부는 이 파국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고 썼다.

윤석열 대통령으로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됐다. 자칫 책임론의 대상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이 전 대표는 비대위 전환을 밀어붙인 친윤계의 배후로 윤 대통령을 지목해 왔다. 지난달 26일엔 윤 대통령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다”고 권 원내대표에게 보낸 텔레그램 메시지가 노출됐고, 이후 국민의힘은 비대위 전환을 위해 가속 페달을 밟아 왔다.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시절이던 2020년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명령으로 직무 정지된 적이 있다. 이후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며 복귀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이 전 대표가 승자의 입장이 됐다.

이 전 대표는 내년 1월 대표 복귀 가능성뿐 아니라 정치적 정당성이란 과실도 함께 얻었다는 평가다. 하지만 당분간은 정치적인 목소리를 줄이고 신중하게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이날 예정돼 있던 방송 인터뷰도 모두 취소했다. 향후 경찰 수사와 국민의힘 내부 여론 등을 고려한 행보로 분석된다. 반면 ‘주호영 비대위’ 체제는 좌초 위기에 빠졌다. 이와 관련, 유상범 의원은 “법원 결정은 비대위원장 직무 집행만 정지한 것이어서 본안 소송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비대위는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대위 발족과 비대위원 임명 또한 유효하다고 보면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 전 대표 변호인단은 “법원 인용 결정문의 핵심은 ‘비상 상황이 아니므로 비대위 설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인 만큼 비대위 자체가 무효”라고 반박했다.

국민의힘은 내부 논의 끝에 이날 오후 “비상 상황이 아니라는 법원 판단이 위법”이란 취지의 가처분 결정 불복 이의 신청서를 서울남부지법에 제출했다. 당은 또 급박한 상황을 고려해 토요일인 27일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소속 의원들 의견을 모아 대응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 당 수습 방안이 논의될 예정인데, 핵심 주제 중 하나는 권 원내대표의 퇴진 문제가 될 전망이다.

당 안팎에선 ‘정치의 사법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금태섭 전 의원도 “한국 정치가 극적으로 실패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정당 내부 의사 결정의 정당성 여부를 사법부 판단에 맡긴다는 것 자체가 정당이 안에서 많이 곯아 있고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며 “이번 결정의 후폭풍과 역풍이 만만찮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