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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폐기물 분리 No.1…‘벤처 대부’가 단박에 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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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빈 김정빈 대표가 2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수퍼빈 김정빈 대표가 2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파란색. 지난 24일 경기도 성남시 사무실에서 김정빈(49) 수퍼빈 대표를 만나자 파란색으로 염색한 헤어 스타일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새치를 가리기 위해 3년 전부터 20년 인연의 헤어 디자이너에게 헤어 매니큐어(모발에 색을 입히는 것)를 받고 있다고 했다. 색상은 헤어 디자이너가 어울릴 것 같다며 고른 것인데 마침 수퍼빈의 상징색인 파란색 계열이다.

[혁신창업] 김정빈 수퍼빈 대표 인터뷰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 있는 수퍼빈 사무실에는 바다나 하늘, 환경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파란색이 곳곳에 보인다. 이 회사는 로봇공학 기술을 기반으로 도시 속 순환자원 체계를 설계하는 회사가 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은 ‘산업용 로봇 스타트업’으로 구분된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순환자원은 재활용할 수 있는 자원을 말한다. 수퍼빈은 순환자원 회수 로봇인 ‘네프론’을 개발, 제작하는 회사다. 네프론은 신장 구조의 단위를 뜻하는 단어로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걸러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순환자원 회수 로봇, 전국에 600대

네프론에 빈 음료 캔이나 라벨과 뚜껑을 제거한 페트병을 넣으면 현금화할 수 있는 포인트를 준다. 개당 10포인트가 지급되며 2000포인트부터 현금으로 바꿀 수 있다. 캔·페트병이 아니거나 오염돼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는 다시 토해낸다. 캔과 페트병은 기계 안에서 종류별로 분류된 뒤 운반하기 좋게 압축돼 쌓인다. 일정량이 차면 외부 가공업체로 옮겨진다.

이런 기계가 전국의 공원·주민센터 앞, 기업체 사옥 등에 600대가량 설치돼 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 안양이 100대로 가장 많다. 월평균 폐기물 회수량은 200t에 이른다. 현재까지 31만 명이 이용했으며 올 상반기에만 3억원어치 포인트가 현금으로 지급됐다.

국내에 없던 이 자판기가 로봇으로 불리는 것은 3차원(3D) 물체를 인식하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알고리즘 ‘뉴로지니’를 이용해서다. 캔과 페트병은 종류가 다양하다. 뉴로지니는 다양한 캔·페트병 폐기물의 이미지를 학습한다. 이를 적용한 카메라가 내부에서 사람 눈으로 보는 것처럼 재활용 가능한 캔과 페트병을 선별하고, 종류별로 분류한다. 폐기물 데이터도 점점 쌓이고 있다.

수퍼빈 김정빈 대표가 2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수퍼빈 김정빈 대표가 2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2015년 설립된 이 회사는 현재까지 ‘벤처기업의 대부’로 불리는 변대규 휴맥스홀딩스 회장이 의장으로 있는 휴맥스를 비롯해 SK지오센트릭, 산업은행, TBT, 화인PEF 등으로부터 352억원을 투자받았다. 기업가치는 2000억원대로 평가받았다.

최근엔 ‘환경 노벨상’으로 불리는 ‘어스샷 상’ 최종 후보에 오르면서 주목받았다. 어스샷 상은 영국 왕실재단인 로열 파운데이션과 윌리엄 영국 왕세손, 환경보호론자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환경문제 해결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든 상이다. 수퍼빈은 이번에 ‘쓰레기 없는 세상’ 부문 후보로 지명됐다. 국내 기업이 어스샷 상 후보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수상 기업(기업인) 발표는 올해 말 예정이다.

창업 7년 만에 ‘환경 노벨상’ 후보로  

차세대 유니콘(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으로 꼽히는 이 회사의 시작은 ‘페트병을 넣으면 보상해주는 기계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김 대표는 “기계 개발자를 영입하는 것은 자본금 3000만원의 스타트업에게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외부 기술자를 찾아다니며 기계 개발에 매달렸지만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바코드로 페트병을 인식하게 할 생각이었지만 바코드 정보를 받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이듬해 기술사업화 전문회사인 미래과학기술지주로부터 시드 투자(극초기 투자)를 받으면서 권인소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와 RCV(로보틱스&컴퓨터 비전)팀이 개발한 3D 물체 인식 AI 기술을 인수하게 됐다. 이 기술은 인간형 로봇 ‘휴보’에 적용됐지만 상용화되지 못한 기술이다. 기술과 아이디어가 만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냈다. 김 대표는 “수퍼빈이 AI라는 기술 세계를 받아들이는 마중물이 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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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ST의 ‘AI 기술’ 장착하면서 로봇 업체로    

김 대표와 인연이 없던 변대규 회장이 직접 공유오피스로 찾아와 당일 투자 결정을 한 이유도 여기 있었다. 변 회장은 “폐기물 시장은 오래돼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데 거기 로봇공학 기술이 들어간다고 하니 전에 없던 반전을 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고 투자 이유를 밝혔다고 한다.

핵심 기술을 확보해 기계 개발에 성공했지만 실제 수익과 연결하기까지는 갈 길이 멀었다. 김 대표는 “시제품을 제작해 경기도 과천시에 한 대만 설치하게 해 달라고 무릎을 꿇고 사정했다”고 소개했다.

“(시로부터) ‘민원이 들어오면 바로 철거하겠다’는 조건을 붙여서 겨우 한 대 설치했는데 아무도 안 쓰더라고요. 매일 페트병을 들고 옆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써보라고 권유했어요.”

뜻밖으로 그해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전이 벌어져 ‘AI 붐’이 일어난 것이 행운이었다. ‘AI 기반 자판기’라는 소문이 나면서 방송사에서 네프론 관련 뉴스를 방영했고, 경북 구미시에서 찾아와 6대를 설치해보겠다고 나서면서 판매 물꼬가 트였다.

수퍼빈이 개발한 순환 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의 핵심 기술인 '뉴로지니' 서버. 우상조 기자

수퍼빈이 개발한 순환 자원 회수 로봇 '네프론'의 핵심 기술인 '뉴로지니' 서버. 우상조 기자

당시 구미시에서 자원재활용을 담당했던 이명희 과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이전에 없던 기기라 낯설었지만 아이들 교육 효과, 주민 홍보 효과가 클 것이라고 판단했다”며 “주변 지역에서도 문의가 많이 와 재활용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네프론 운영 대수는 2020년 150대, 지난해 350대에서 현재 600대로 늘고 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네프론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라며 “HOW(어떻게)보다 WHY(왜)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시를 재설계할 때부터 관여자가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인구 증가로 도시 밀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환경 문제, 폐기물 문제가 발생하게 돼요.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폐기물 활용을 극대화하려면 생산자(기업)가 돈을 주고 재활용 소재를 다시 사도록 해야 합니다. 순환경제가 이뤄질 수 있는 도시 구조가 필요하지요.”

고부가가치 소재 생산해 순환경제 이룬다    

수퍼빈은 폐기물 선별과 수집뿐 아니라 가공까지 직접 하기 위해 올 4분기 가동을 목표로 경기도 화성에 1만4876㎡(약 4500평) 규모의 폐기물 가공 공장을 짓고 있다. 수집한 폐기물을 이곳에서 AI 기술로 선별해 연간 2만t의 고부가가치 재활용 소재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 소재들은 또 다른 페트병, 옷·신발 등을 만들 수 있는 섬유로 재탄생한다. 롯데케미칼·SK지오센트릭 등 고객도 확보했다. 또한 폐기물의 디지털 정보화로 다양한 기업이 원하는 소재를 고를 수 있게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나중에는 자판기가 아닌 땅속이나 건물 안에 회수 장치가 들어서 가공 시설과 연결될 수도 있다”고 기대했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가 2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김정빈 수퍼빈 대표가 24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했다. 우상조 기자

남대일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김정빈 대표가 수퍼빈에 대해 자원을 회수하는 환경업체가 아닌 ‘로봇업체’로 소개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며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별 능력이 갈수록 향상될 수 있어 투자 가치도 높아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양질의 폐기물을 공장까지 깨끗하게 보내 고부가가치 소재로 재생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게 중요한데 실현을 앞둔 것 같다”며 “다만 AI 기술이 스토리텔링 요소로만 쓰인다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 기술 역량을 잘 키워나가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술 개발자들 세상에 부딪혀봐야”  

미국 하버드대 정치학 석사, 코넬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김 대표는 40대 초반에 중견 철강업체인 코스틸 최고경영자(CEO)를 지냈다. 이후 스스로 의사결정을 해 나 다운 회사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에 창업을 결심했고, 과거 비슷한 아이템으로 창업했지만 기계 제작 기술의 부재로 실패한 경험을 살려 새롭게 도전했다.

“창업에서 ‘기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다만 진보된 기술이나 연구 결과를 세상에 적용하는 창업이 활성화하려면 그 주체가 세상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돼야 해요. 그래서 개발자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부딪치고 경험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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