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단학살 논란 속 “역사적 순간”…사상 첫 원주민 대법관

중앙일보

입력

캐나다 첫 원주민 대법관으로 지명된 미셸 오본스윈.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 첫 원주민 대법관으로 지명된 미셸 오본스윈. 로이터=연합뉴스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원주민 대법관이 나왔다. 19일(현지시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원주민 여성 법조인 미셸 오본스윈을 대법관에 지명했다고 캐나다 총리실이 이날 밝혔다. 캐나다 의회 청문회와 투표 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이달 말에는 정식 임명될 것으로 보인다. 가디언은 “캐나다 대법원에 원주민 대표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지 수십 년 만에 원주민 대법관이 나오게 됐다”고 했다.

캐나다 대법원에선 지난해 최초 유색인종 대법관인 마흐무드 자말에 이은 2년 연속 역사적인 지명으로 꼽힌다. 트뤼도 총리는 이날 성명을 통해 “이번 지명은 개방적이고 중립적인 절차를 통해 이뤄졌다”며 “오본스윈 대법관은 캐나다 대법원에 귀중한 경험과 지식을 활용해 공헌해줄 것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데이비드 라메티 캐나다 법무부 장관도 “캐나다 법 역사상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오본스윈은 캐나다 온타리오주 출신으로 퀘벡 원주민 부족 중 하나인 아베나키족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에 능통하다. 2017년부터 오타와에 있는 온타리오주 고등법원 판사로 일하고 있다. 앞서 경찰과 우체국 등에서 9년간 사내 변호사로 일한 뒤 오타와대학교의 로열정신건강센터에서 법률 고문을 지냈다. 오타와대학교에서 원주민 관련 법학을 가르치는 등 원주민 관련 법 전문가이기도 하다. 캐나다 총리실은 오본스윈을 “정신건강, 인권, 노동 관련법 전문가”라고 소개했다.

원주민 놀림받던 소녀…변호사 꿈꿨다

캐나다 최초 원주민 대법관으로 지명된 미셸 오본스윈. [유튜브 캡처]

캐나다 최초 원주민 대법관으로 지명된 미셸 오본스윈. [유튜브 캡처]

오본스윈은 어릴 때 남들과 다른 원주민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넉넉하지 못한 노동자 계급의 가정에서 자랐다고 밝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가게 점원이나 베이비 시팅 등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도 투어 가이드와 레스토랑 서빙 등의 일을 했다. 로스쿨에 진학한 뒤로 원주민법률학생협회에 가입해 원주민 법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키웠다.

그는 지원서에서 “퍼스트 네이션(캐나다 원주민) 여성으로서, 스스로를 대변하지 못했던 사람들을 대신해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어릴 때부터 변호사를 꿈꿨고 그다음 목표는 내 경험을 공유하고 공공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판사가 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두 아이의 엄마이자 변호사, 학자, 판사로서 나의 경험은 캐나다 다양성의 일부”라며 “(주류 사회가) 원주민과 그 문화에 얼마나 배타적인지 알았지만, 나는 여전히 우리가 국가로서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통합적이라고 믿는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캐나다인들의 다양한 관점을 통찰하고 캐나다가 보다 포용적인 사회가 되도록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본스윈의 지명은 최근 원주민 집단학살 논란 속에 이뤄진 만큼 더욱 의미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논란은 지난해 5월 캐나다 원주민 기숙학교 부지 3곳에서 원주민 아동 유해가 1200구 넘게 발견되면서 격화됐다. 19~20세기 캐나다 정부가 원주민들을 백인 사회에 동화시키겠다며 설립해 가톨릭 교회가 위탁 운영했던 학교들이다. 아이들 상당수가 각종 학대와 영양 결핍 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4월 공식 사과하고 7월엔 현장을 직접 방문했었다.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