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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혁명 주도한 '철의 여인'…그녀가 꿰뚫어본 푸틴 속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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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 EPA=연합뉴스

율리아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 EPA=연합뉴스

총리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그는 여전히 유력 인사로 남아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그의 신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까닭이다. 그는 그러나 자신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다음으로 러시아의 타깃이라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수도 키이우를 떠나지 않고 있다. 그는 전쟁 피로도로 인해 일각에서 언급되는 평화협정에 대해 “환상에 불과하다”고 선을 그었다.

땋은 머리가 상징, '오렌지 혁명'의 주인공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난민과 만난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 [사진 페이스북]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후 난민과 만난 율리아 티모셴코 전 총리. [사진 페이스북]

티모셴코 전 총리는 지난 200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시아 정권의 붕괴를 불러온 ‘오렌지 혁명’의 주역이다. 총리 시절 푸틴 대통령과 단독 회담도 수차례 가졌다. 그런 그는 유럽 일각에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 일부를 포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도록 하는 것을 두고 “우크라이나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라며 “모든 평화협정은 푸틴에게 다음 영토 쟁탈을 위한 또 다른 전쟁을 부추기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푸틴은 엄청난 군사적 손실에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내부 분열에 대한 희망으로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며 “그는 모든 금기와 규칙을 어길 준비가 되어 있고, 그게 바로 그의 힘의 원천”이라며 푸틴의 핵폭탄 사용 가능성도 점쳤다. 최근엔 몰도바와 벨로루시, 조지아, 카자흐스탄 등 인접국가들을 만났다. 그는 “해당 국가들에게 시간 낭비하지 말고 군사력 증강을 조언했다”며 “아직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러시아발 전쟁에 대비할 방법은)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父 버림받고 자수성가…오렌지 혁명 주도

티모셴코 전 총리는 기업인 출신이다. 그는 3살도 되기 전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가정환경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특유의 사업 수완으로 자수성가했다. 대학 졸업 후 봉제산업, 미용협동조합 등으로 활동하다 1988년 시작한 비디오 대여점 사업을 대형 체인으로 일구며 사업가로 성공했다. 이후 러시아 천연가스 수입 중개업을 독점하면서 재벌이 됐고 포브스의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반면 우크라이나에게 불리한 가스 수입 계약을 체결했다는 논란도 있다.

율리아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오른쪽)와 딸. [사진 페이스북]

율리아 티모셴코 전 우크라이나 총리(오른쪽)와 딸. [사진 페이스북]

그는 우크라이나에서 대표적인 반러시아 정치인으로 꼽힌다. 그가 정계에 입문한 건 1996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선출되면서다. 이듬해 에너지 차관으로 우크라이나 에너지 기업 비리 척결에 앞장섰다. 그러나 레오니드 쿠치마 대통령의 권위주의 통치에 반발해 2002년 율리아 티모셴코 블록을 창당한 뒤 국회에 입성했다. 해임된 빅토리 유셴코 총리와 러닝메이트로 2004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친러 여당 후보인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부정선거를 폭로하면서 오렌지 혁명을 주도, ‘오렌지 공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유셴코 대통령과 함께 티모셴코도 우크라이나 여성 최초로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취임 후에도 정치적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유셴코의 친러 정책을 두고 갈등을 빚다 2006년 결별했다. 이듬해 2년 넘게 두 번째 총리직을 지냈지만 2010년 대선에서 낙선했고, 야누코비치가 집권하자 티모셴코는 총리 시절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국제사회는 이를 정치 보복으로 보고 우려를 표명했었다. 2014년 2월 반정부 시위 격화로 야누코비치가 망명하자 반러 세력이 새로 구성한 우크라이나 의회의 결의로 석방됐다. 2019년 대선에도 출마했던 그는 전쟁이 발발하자 한때 경쟁자였던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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