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적도 있을까’…스티브 연, 공포와 손잡다

중앙일보

입력 2022.08.18 00:02

업데이트 2022.08.1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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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SF 공포 영화 ‘놉’은 구름속에 숨은 외계 포식자를 통해 스펙터클에 목숨 건 현대인을 풍자했다.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이 대중의 관심에 목마른 전직 아역 배우 역을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SF 공포 영화 ‘놉’은 구름속에 숨은 외계 포식자를 통해 스펙터클에 목숨 건 현대인을 풍자했다.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이 대중의 관심에 목마른 전직 아역 배우 역을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미국 뉴욕 태생의 코미디언 조던 필(43)은 5년 전 백인 여자친구의 부모 집에 인사하러 간 흑인 청년이 섬뜩한 납치극에 휘말리는 내용의 데뷔작 ‘겟 아웃’으로 공포영화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필 감독은 ‘어스’(2019)에선 지하세계에 숨어 살던 도플갱어들의 지상세계 습격이란 내용으로 계급 불평등을 다루면서 두 작품 만에 공포영화의 ‘거장’ 반열에 우뚝 섰다. 상상을 뛰어넘는 설정과 송곳 같은 사회 비판은 필 감독을 상징하는 인장이 됐다. 국내에서도 ‘조동필’이란 애칭과 함께 팬덤이 생겼다.

그런 필 감독이 신작 ‘놉(Nope)’(17일 개봉)에선 한국계 미국 배우 스티븐 연(39)과 손잡고 외계인 지구 침공 영화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자신이 각본·연출·프로듀서를 겸했다.

SF 공포 영화 ‘놉’은 구름속에 숨은 외계 포식자를 통해 스펙터클에 목숨 건 현대인을 풍자했다. 영화 ‘겟 아웃’ 스타 다니엘 칼루야(왼쪽)와 가수 출신 케케 파머가 말 조련사 남매 역을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SF 공포 영화 ‘놉’은 구름속에 숨은 외계 포식자를 통해 스펙터클에 목숨 건 현대인을 풍자했다. 영화 ‘겟 아웃’ 스타 다니엘 칼루야(왼쪽)와 가수 출신 케케 파머가 말 조련사 남매 역을 맡았다.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영화 제목은 “안돼!”란 의미다. 코로나 시국으로 죽어가던 영화관을 살릴 스펙터클을 구상하던 그는 동시에 “왜 우리는 이렇게 스펙터클에 집착하는가”란 질문에도 사로잡혔다고 한다. 특히 유튜브·SNS를 통한 자기 과시가 돈벌이로 연결되는 요즘엔 스스로 스펙터클이 되려는 욕망이 일상 곳곳에 넘친다.

‘놉’에서 스티브 연이 연기한 ‘리키 주프 박’은 이런 욕망을 체화한 듯한 인물이다. 리키는 만년 조연만 하던 아역 배우 시절에 당한 끔찍한 사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인기 시트콤 ‘고디의 집’ 녹화 도중 풍선 터지는 소리에 놀란 침팬지 배우가 갑자기 맹수처럼 사람들을 공격한다. 이 사건은 코미디쇼 ‘SNL(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 등에서 패러디될 만큼 유명해지고, 이는 어린 리키에게 잘못된 계시로 각인된다.

조던 필 감독

조던 필 감독

어른이 돼 할리우드 외곽에서 아역 시절 캐릭터 이름을 딴 놀이공원을 운영하던 리키는 오랫동안 목말랐던 대중의 관심을 다시금 사로잡을 기회를 잡는다. 언젠가부터 산골짜기 뭉게구름 속에 숨어 초원의 말들을 사냥하는 괴비행체를 발견하고 이를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이웃 말 농장의 말 조련사 남매 OJ(다니엘 칼루야)와 에메랄드(케케 파머)도 똑같이 한몫볼 생각을 한다. 동물 습성을 존중해온 OJ만이 이 모든 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짓인지 점차 깨닫는다. “나쁜 기적이라는 것도 있을까?”라는 그의 대사대로다. ‘겟 아웃’의 주연 배우 다니엘 칼루야가 다시 조던 필과 뭉쳤다.

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생명체를 길들여도 된다고 믿는 걸까. 애초에 길들일 수 있다는 오만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고디의 집’ 참사의 순간, 백인들의 쇼 비즈니스 무대에서 아시아계 아역 배우 리키와 침팬지 배우는 구경거리로 착취 당해왔다는 점에서 동등한 존재처럼 다가온다. 이 악명 높은 사고로 배우 경력이 단절된 리키가 제대로 된 교훈을 얻지 못한 이유에 대해 필 감독은 “무슨 일이 일어나든 상관없이 주목 받기 원하는 존재로 길러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놉’의 괴비행체는 그 정체가 명확지 않은 스펙터클로만 제시된다. [‘놉’ 예고편 캡처]

‘놉’의 괴비행체는 그 정체가 명확지 않은 스펙터클로만 제시된다. [‘놉’ 예고편 캡처]

지난달 22일 미국 개봉에 맞춰 공개된 현지 매체 ‘벌처’ 인터뷰에서 스티븐 연은 영화 ‘구니스’(1985) ‘인디아나 존스: 미궁의 사원’(1984) 등 80년대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아역 배우로 활약한 베트남계 미국 배우 조너선 케 콴을 떠올렸다고 했다. 그 자신도 백인 중심의 미국 사회에서 누군가 “야, ‘워킹데드’에 나오는 동양인이야!”라고 외쳤을 때 “내 존재가 인종으로 규정될 때 독특한 고립감을 느낀다”면서 “누군가를 어떤 틀 안에 넣어 정의하는 느낌, 그 비인간화의 깊은 외로움 속에 리키가 살아왔다고 봤다”고 말했다.

또 “리키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이해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SNL’(같은 코미디쇼)에서 그것을 패러디했다는 게 얼마나 지독한 일이냐”며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예상으로 만들어진 삶을 살아가는 그 느낌은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감정”이라고 지적했다.

‘놉’은 스펙터클의 함정을 지적하지만, 그 혹독한 교훈을 또 다른 스펙터클로 제시한다는 점에서 모순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제작비는 6800만 달러로, ‘겟 아웃’의 15배 규모다. 필 감독이 처음 SF 요소를 접목하며 잡은 목표점도 할리우드 여름 블록버스터의 시초로 꼽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죠스’(1975)다. ‘어스’에 이어 함께한 프로듀서 이안 쿠퍼는 “조던 필은 ‘죠스’에서 사람들이 바다를 두렵게 바라봤던 것처럼, 이 영화를 보고 나면 구름을 그렇게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극중 ‘진 재킷’으로 불리는 괴비행체는 사흘째 움직이지 않는 뭉게구름 속에 숨어있다가 후반부에야 전체 모습을 드러낸다. 공학 교수의 감수를 거쳐 해파리, 새의 움직임과 일본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을 참고한 외계생명체를 디자인하는 데 18개월이 걸렸다. ‘덩케르크’ ‘테넷’ 등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에 참여해온 호이트 반 호이테마 촬영감독의 화면도 몰입감을 더한다. 네 종류의 아이맥스 카메라로 영화의 40%를 촬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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