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전투 중" 무기 대신 악기 들다…우크라 난민 74명 임무

중앙일보

입력 2022.08.15 05:00

지난 7월 28일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의 세계 투어를 앞두고 바르샤바 오페라 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지휘자 케리 린 윌슨. AFP=연합뉴스

지난 7월 28일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의 세계 투어를 앞두고 바르샤바 오페라 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지휘자 케리 린 윌슨. AFP=연합뉴스

지난 2월 24일(현지시간) 이른 아침 키이우에 살던 우크라이나의 바이올리니스트 카테리나 수프룬(31)은 엄청난 폭음 소리에 잠에서 깼다. 몇 시간 후 수프룬은 2살짜리 딸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수만 명의 대피 행렬에 합류했다. 나흘 만에 폴란드 국경에 도착한 그는 500만 우크라이나 난민 중 한 명이 됐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수프룬은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UFO) 단원으로 세계 순회공연을 하고 있다. 지휘자 케리 린 윌슨(55)이 결성해 이끄는 오케스트라다.

사촌은 돈바스 최전선에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는 우크라이나 난민들과 키이우 국립 오페라, 우크라이나 국립 심포니 오케스트라, 리비우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하르키우 오페라 등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음악가 74명으로 구성됐다. UFO는 네덜란드와 영국 등을 거쳐 미국에선 오는 18~19일 링컨 센터와, 이어 20일 케네디 센터에서 순회 공연을 한다. 워싱턴포스트는 12일 “무대에서 조국의 ‘예술적 방어’를 위해 빠르게 힘을 모았다”며 오케스트라를 결성한 지휘자 윌슨을 조명했다.

케리 린 윌슨. 사진 페이스북

케리 린 윌슨. 사진 페이스북

윌슨은 줄리어드 재학 시절인 1989년 카네기홀에서 첫 공연을 했고, 줄리어드에서 플루트와 지휘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댈러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부지휘자를 거쳐 2013년 여성 최초로 슬로베니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자가 됐다. 캐나다의 음악가 집안으로, 증조부모가 우크라이나 남서부 도시 체르니우치 출신이다. 증조부모의 고향 체르니우치에 여전히 살던 그의 사촌은 현재 돈바스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윌슨은 현지에서 의료물품 수송 등 자원봉사를 하는 또 다른 사촌에게 각종 지원 물품을 보내고 있다.

윌슨은 “나는 우크라이나를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하지만, 그 고향에는 우크라이나뿐 아니라 항상 러시아도 포함돼있다”고 했다. 윌슨은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우크라이나 예술가로 예우받았고, 러시아의 볼쇼이 극장을 ‘예술적 고향’으로 삼는다. 윌슨은 워싱턴포스트에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정말로 한 국가나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그런 그에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소식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TV에서 폐허가 된 우크라이나를 보면서 뭔가를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했다.

“무기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지난 3월 각각 다른 국가에서 4개 오케스트라의 객원 지휘자로 유럽 투어 중이었다. 당시 공연계에서는 러시아 음악이나 음악가들의 공연을 보이콧하기 시작했지만, 윌슨은 그만의 방식으로 대응했다. 프로그램에 우크라이나 국가를 추가하고 각국 언어로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하는 짧은 연설을 했다. 그는 차이코프스키 곡 연주를 앞두고 “1년 전만 해도 이런 분위기에서 러시아 곡을 연주할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며 “하지만 우리는 푸틴과 러시아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28일 바르샤바 오페라 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 지휘자 케리 린 윌슨. AFP=연합뉴스

지난 7월 28일 바르샤바 오페라 극장에서 리허설 중인 '우크라이나 프리덤 오케스트라' 지휘자 케리 린 윌슨. AFP=연합뉴스

당시 투어 셋째 주엔 오데사 필하모닉과의 연주가 예정돼 있었지만, 단원들의 대피로 연주는 불발됐다. 그러다 TV에서 난민 수백만 명이 폴란드 바르샤바에 도착하는 것을 보고 이 중 몇 명이나 음악가일지 궁금해졌다. 오케스트라 결성의 시작점이었다. 당장 바르샤바로 건너가 현지 음악가에게 오케스트라에 합류할 수 있는 단원 명단을 받고 폴란드 국립 오페라 극장 사용 허가를 받아 열흘 만에 첫 콘서트를 열었다. 윌슨은 “나도 싸우고 싶었다”며 “나는 무기를 들고 싸울 순 없었지만,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고 말했다.

윌슨은 “이것은 단지 연주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전투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그는 매일 모든 방법을 동원해 우크라이나를 침묵시키려고 한다”며 “우크라이나엔 문화와 전통이 없다고 말하지만,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다.

“이 공연은 (푸틴에게) 이야기하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문화는 우크라이나의 영혼이다. 그러니 당신은 이길 수 없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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