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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시와 이용수 할머니 만났어야…한·미 뭉치면 日 바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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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중앙DB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중앙DB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방한했을 때, 이용수 할머니와의 만남을 주선해야 했다. 위안부 이슈는 한국 입장에서 미국의 여론을 빌어 한·일 간 문제에 다가갈 수 있는 중요한 어젠다다. (미국에서) 인권보다 우선하는 정치·외교 이슈는 없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김동석(64)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지난 11일 중앙일보와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2007년 미 하원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전방위로 뛰었던 미국 내 한인단체 인사 중 한 명이다.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 당시 하원의원이 발의한 위안부 결의안은 2차대전 당시 일본군 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역사적 책임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3일 밤 서울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 지원 요청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2022.8.3/뉴스1

(서울=뉴스1) 장수영 기자 =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3일 밤 서울에 위치한 한 호텔에서 낸시 펠로시 미국 연방하원의장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 지원 요청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2022.8.3/뉴스1

김 대표는 “펠로시 의장과 이용수 할머니는 지금까지 두 번 만났다"며 "하원의 결의안 통과 당시 의장이었고, 펠로시 의장이 그간 워싱턴에서 한국의 정치인을 만날 때마다 결의안 통과를 늘 자랑스럽게 말한 점을 보면 두 사람 간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지난 4일 펠로시 의장이 방한했을 때 이용수 할머니는 국회에서 기다렸지만, 국회는 “사전 약속이 없었다”는 점을 이유로 이용수 할머니의 접근을 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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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표는 결의안 통과 후 15년이 지났지만, 더는 나아가지 못한 현실에도 아쉬움을 토로했다. 김 대표는 “미국 대통령의 선언까지 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반면 미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은 지난해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을 ‘제노사이드’로 선언하게끔 했다”고 지적했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20세기 초 터키인이 아르메니아인을 대상으로 저지른 사건이다.

그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 징용 등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한국의 사죄·배상 요구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에 중점을 두고 전 세계를 대상으로 설득해야 공감대를 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방법론에 관해선 '현실주의적' 접근을 주장했다.

김 대표는 “위안부 결의안 통과를 위해 한인 사회가 미 의회에 로비할 당시 홀로코스트 관련 유대인 단체로부터 얻은 조언은 ‘사죄를 받으려면, 가해자 입장을 염두에 두고 전략을 짜라’였다”고 밝혔다. 예컨대 위안부 결의안 발의를 한 하원의원이 일본계인 마이크 혼다였다는 점이다.

그는 “결의안 통과 후에도 혼다 의원은 한국에 많은 도움을 줬다. 지금 일본 내에 위안부 문제를 인권 차원 시각에서 바라보는 많은 시민과 시민단체가 있다. 이들과 유대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한·미 결속의 힘으로 (위안부·강제징용에 대해) 일본의 변화를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15년 전에 이미 미 의회가 ‘일본의 책임’을 물었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일 간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랫동안 한인단체 대표를 하는 동안 한국 정부의 대미 정책을 지켜봐 온 그는 그동안 정부·의회가 미국의 정치권을 대상으로 보인 '분열적' 행태에 아쉬움을 표했다. 김 대표는 “한국의 여·야 정치권 인사들은 워싱턴에 오면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간다”며 “미국 정치인들은 그때마다 헛갈릴 수밖에 없고 신뢰를 쌓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중 긴장이 고조된 만큼 한·일 관계 개선과 한·미·일 결속에 대한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시기라고 지적했다.

김동석씨는 1992년 LA 폭동을 계기로 미국 내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키우는 운동에 뛰어들었다. 2007년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 통과, 2008년 버락 오바마 선거 캠프에서 활동하며 한·미간비자 면제 등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3년부턴 워싱턴 기반 한인유권자연대를 설립해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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