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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플] 정의선 pick 포티투닷, 자율주행 ‘게임체인저’ 될까

중앙일보

입력

정의선(오른쪽)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서울 논현동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만나 모빌리티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오른쪽) 현대차 수석부회장이 서울 논현동 현대모터스튜디오 서울에서 만나 모빌리티 서비스에 대해 의견을 나눈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 현대자동차그룹]

네이버 최고기술책임자(CTO) 출신 송창현 대표가 설립한 스타트업 포티투닷(42dot)이 현대차그룹에 인수된다.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포티투닷은 기업가치로 약 5700억원을 인정받았다.

무슨 일이야 

현대차·기아는 12일 “포티투닷을 4276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포티투닷 초기 투자자였던 현대차는 212만 9160주(2746억 6200만원)를 추가 확보해 최대 주주(지분 55.9%)에 올라섰다. 기아도 기존 지분에 168만 6106주(1530억 800만원)를 더해 37.3%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번 인수 마무리후 포티투닷은 현대차그룹 계열사에 편입된다.

포티투닷은 송 대표가 네이버 퇴사후 2019년 창업했다. 기업용 자율주행 키트 ‘에이킷’(AKit), 자율주행차 호출 플랫폼 ‘탭!’(TAP!) 등을 개발하고 있다. 도시 내 이동을 연결하는 모빌리티 서비스들의 운영체제(OS) 장악을 목표로 한다. 현대차·기아를 비롯해 SK텔레콤, LG, 신한금융그룹, 롯데렌탈 등 국내 대기업들이 포티투닷 초기부터 투자했다. 2022년 기준 누적 투자유치금은 1570억원.

이게 왜 중요해

이날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소프트웨어(SW)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그 일환으로 포티투닷을 인수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SW센터는 미래 모빌리티의 핵심인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로 제어하는 자동차) 개발 체계를 총괄하는 조직.

● 알맹이(SW)의 시대 : 현대차그룹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무게추를 옮기는 중이다. 전통 내연기관차 제조기업에서 ‘지능형 모빌리티 회사’로의 변신을 목표로 한다. 최근 수년간 현대차그룹이 굵직한 투자를 잇따라 내놓은 배경이다. 2020년 ‘로봇개’로 유명한 미국 보스턴다이나믹스를 1조원에 인수했고, 미국에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자회사도 설립했다. 지난 2019년엔 미국 자율주행 스타트업 앱티브와 손잡고 40억달러 규모 합작회사(JV) 모셔널을 설립해 로보택시를 개발 중이다. 이번 포티투닷 인수도 그 연장선에 있다. 앞서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전기차, 자율주행 등 미래 전략 사업에 95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 기술 스타트업의 엑시트: 포티투닷과 현대차그룹의 결합은 기술 스타트업의 엑시트(exit·투자금 회수) 사례로도 주목할 만하다. 송창현 대표는 애플·MS 등 실리콘밸리 기업을 거쳐 2008년 네이버에 합류했다. 11년간 재직하며 네이버의 AI와 로보틱스 연구개발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돌연 2019년 대기업 네이버를 박차고 나와 창업가로 변신했다. 김도현 국민대(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이 가능성 있는 미래에 투자하고 시장성이나 기술력이 검증되면 후속 투자하거나 인수하는 옵션 투자의 교과서격인 성공 사례”라고 평가했다. 특히, 국내 톱 수준의 개발자가 대기업 퇴사 후 창업한 스타트업이 또 다른 대기업의 혁신 동력이 됐다는 점에서 기술 창업 생태계에도 긍정적인 신호.

[사진 포티투닷]

[사진 포티투닷]

현대차는 왜? 

● 옥(玉) 같은 개발 조직 : 포티투닷 임직원 200여명 중 70%는 개발 인력이다. 이번 인수로 현대차그룹은 자율주행 연구개발 조직을 대폭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익명을 요구한 한 모빌리티 스타트업 관계자는 “국내에서 검증된 자율주행 개발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옥석 구분이 끝난 핵심 인재들을 한번에 수혈할 수 있다는 게 현대차의 최고 수확일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 처음부터 끝까지 : 포티투닷은 자율주행 운영시스템·SW 등을 전부 아우르는 풀스택(Full Stack·자율주행 전 요소기술) 스타트업이다. 현재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에 주력하고 있다. 레벨4는 자율주행 수준 6단계(레벨0~5) 중 5번째로 높은 수준으로, 인간의 개입이 필요 없다. 특히, 포티투닷은 고가의 라이다(LiDAR) 없이 카메라·레이더로 자율주행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라이다가 빠지면 기기 비용이 절감돼 양산 효율성을 높일 수 있어서다. 오는 9월에는 차량 외부에 센서가 없는 형태의 자율주행 기술 ‘GEN3’를 공개하고 2023년 자율주행 수직통합솔루션을 OEM 차량에 통합할 계획이다.

포티투닷은 왜?

● 찬겨울엔 우산 속으로: 벤처투자에 불어닥친 찬바람, 자율주행 스타트업에도 예외는 아니다. 신규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운데 연구개발 비중에 큰 스타트업이라면 당장 돈 벌 수 있는 수익 모델도 마땅치 않다. 현대차그룹 합류를 선택한 포티투닷은 당분간 곳간 걱정 없이 자율주행 개발에 매진할 수 있게 됐다.

● 하드웨어 기지 확보: 포티투닷으로선 자율주행 개발에 꼭 필요한 완성차(하드웨어)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에겐 이를 실증할 완성차가 필수다. 포티투닷이 강조해온 도시 이동을 위한 통합운영체제(UMOS)도 현대차 그룹 내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업계 반응은  

자율주행 기술업계는 이번 인수를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한 자율주행 스타트업의 임원은 “경기가 차갑게 식은 가운데 거래가 성사됐다는 것 자체로 자율주행 기술 업계엔 긍정적인 시그널”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스타트업 대표는 “대기업에 인수되는 길을 모델로 보여줬다 점에서 의미 있다”면서도 “독자적으로 비전을 펼치지 못한 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서 “현대차의 초기 투자가 (포티투닷) 인수의 연결고리가 된 것처럼 대기업과의 협력 관계가 기술 스타트업의 성장과 출구 전략에 점점 더 중요해질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으로는  

모빌리티 업계에선 이번 인수를 '예고된 수순'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포티투닷 창업 전부터 송 대표 영입에 공을 들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 러브콜을 받던 송 대표는 지난해 4월부터 현대차 TaaS(Transportation-as-a-Service, 사람·물류의 이동을 포괄하는 서비스형 운송) 본부장을 맡아 현대차의 글로벌 모빌리티 서비스 전략 수립부터 기획·개발·운영 등을 총괄해 왔다. 지난해 말 사장 승진 후에는 연구개발본부 산하에 신설된 차량 소프트웨어 담당도 맡고 있다. 이번 인수로 현대차그룹 내에서 송 대표의 입지가 한층 더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