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금리 인하 역설…만년필 들고 전당포 간 30대 대출난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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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지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전당포에 휴대전화와 만년필을 전당 잡히려는 30대 남성이 찾아왔다.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는 2년 전 기종인 휴대전화(15만원)와 몽블랑 만년필(8만원)을 담보로 맡기고 23만원을 받아서 떠났다. 한 달 안에 전당 잡힌 물건을 찾으러 와야 하지만, 전당포 사장 이모(65)씨는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씨는 “저가의 제품을 맡기러 오는 사람일수록 생활고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은데 휴대전화를 잡힐 정도면 삶의 낭떠러지에 서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전당포에 담보로 맡기는 물건은 보석이나 금 같은 귀금속, 명품 가방이나 고가의 디지털 기기처럼 ‘돈이 되는 물건’이다. 그런데 최근 휴대전화나 노트북 컴퓨터처럼 담보액이 10만원 안팎인 생활용품이 크게 늘었다. 이 전당포의 경우 지난해 초 5% 수준에 불과하던 생활용품 비중이 올해 들어 전체 담보물의 20%로 높아졌다.

“전당포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

이씨는 “전당포는 불법 사금융으로 가기 전에 들르는 마지막 보루 같은 곳”이라며 “생존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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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소득·저신용자인 금융 취약계층은 제도권 금융에서는 대출받지 못하는 ‘대출 난민’이다. 대부업체나 전당포 같은 이른바 ‘제3금융’이 이들에게 마지노선이다. 하지만 여기서 밀려나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이가 늘고 있다. 이들을 생존 절벽으로 밀어내는 건, 역설적으로도 이들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도입한 법정 최고금리 인하다.

문재인 정부는 가계부채 위험을 해소하고 취약계층의 이자 부담을 덜어주겠다며 법정 최고 금리(대부업, 시행령 기준)를 27.9%에서 지난해 7월 20%까지 낮췄다. 문제는 최고 금리 인하 조치로 취약계층이 돈을 빌릴 길이 막힌 데 있다. 금융위원회는 최고 금리 인하로 31만6000명(2조원)의 민간 금융 이용이 축소되고, 3만9000명(2300억원)이 불법 사금융을 이용할 것으로 본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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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최고 금리 인하로 금융 취약계층이 밟았던 대출 사다리가 흔들리고 있다. 통상 대출창구는 ‘시중은행인 제1금융권→저축은행 같은 제2금융권→대부업체 같은 제3금융권’ 순서를 거친다. 제도권 안에서는 대부업체가 마지노선이다. 여기서도 대출을 받지 못하면 불법 사금융에 손을 벌려야 한다. 그런데 대부업체 등 제3금융권이 ‘고객 고르기’에 나서며 취약계층이 돈을 빌릴 길이 막혔다.

대부업체는 대개 은행 등에서 돈을 빌려와 개인이나 법인에 다시 돈을 빌려준다. 대형 대부업체의 경우 저축은행에서 돈을 빌려오는 조달금리가 6% 선이다. 여기에 빌려주고 회수하지 못하는 대손 비용이나 마케팅 비용, 일반관리 비용 같은 지출까지 더하면 현재 최고 금리 (20%) 내에서 수익을 내기 쉽지 않다. 여기에 지난해부터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조달금리도 뛰고 있다.

대부업체 입장에선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위험 부담이 큰 취약계층 대출을 꺼리게 된다. 저축은행도 비슷한 상황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저축은행(가계신용대출 규모 3억원 이상) 40곳 중 12곳은 저신용 대출을 하지 않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3곳에 불과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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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보 한국대부금융협회장은 “담보나 신용이 기반인 대출의 특성상 대부업계의 위기는 취약계층의 대출이 어려운 상황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대부업체가 감소하면서 공급도 줄고 있다. 금융위에 등록한 대부업체는 2018년 1500곳에서 지난해 968곳(6월 말 기준)으로 줄었다. 대부업계에선 현재 800여 곳 정도만 실제 영업하는 것으로 여긴다. 신규 대출을 중단하고 이전 대출 만기일만 기다리며 간판만 걸어놓은 곳도 적지 않아서다.

대부업체인 강남캐피탈대부는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관련 담보율을 최대 80%에서 70%로 줄였다. 지흥진 강남캐피탈대부 대표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주택담보대출 이자가 높아지자 분양권 등을 담보로 맡기려는 수요가 늘었는데 ‘거래 절벽’이라 담보물 처리도 쉽지 않고 최고 금리가 낮아져 수익이 줄어서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최고 금리, 시장연동해야”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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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금리 인하에도 대부업체 이용자가 줄어든 이유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대부업체를 이용한 개인 이용자 수는 9만7000명으로 2018년보다 23% 줄었다. 대신 불법 사금융 피해는 늘고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는 2019년 4986건에서 지난해 9238건으로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불법 사금융 신고의 45%는 미등록 대부 관련 문제였다.

이 때문에 최고 금리 적용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나온다. 대출자의 신용도에 따라 금리를 산정해야 하는데 최고 금리가 20%로 제한돼 있으면 취약계층이 대출을 받지 못하는 악순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조달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96만9000명의 취약계층이 대출을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최고 금리 제도를 고정형이 아니라 시장연동형으로 바꿔 시시각각 변하는 조달금리에 의한 충격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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