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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만 5세 입학과 아륀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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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호 30면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합창을 해본 사람은 안다. 한 명의 튀는 소리가 얼마나 귀에 거슬리는지. 합창은 둥근 소리가 모여야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는 법인데 뾰족한 소리가 불쑥 끼어들면 아무리 작은 소리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목에 힘을 잔뜩 주고 부르는 이런 소리는 음도 반음 플랫되기 십상이어서 화음을 엉망으로 만들곤 한다. 훌륭한 성악가가 훌륭한 합창단원이 되기 쉽지 않은 것도 같은 이치다. 바이브레이션에 반 박자 늦게 부르기, 레가토로 멋지게 이어 부르기 등 각종 성악 기법이 독창엔 도움이 될 수 있어도 합창엔 절대 금기다. 이를 잘 이해하는 성악가는 합창단에서도 멋진 솔리스트로 인정받을 수 있지만 자기 스타일만 고집하면 오히려 짐만 될 뿐이다.

이런 대원들의 특징은 자신의 소리가 튀는지, 반음 플랫이 되는지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옆 사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기 목소리가 멋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기 쉽다.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자들이 가장 난감해하는 것 중 하나도 음이 튀는 대원에게 아무리 설명해도 본인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는 거다. 합창은 좋은 성대보다 듣는 귀가 더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귀를 열고 함께 맞춰가려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합창단원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한 명의 튀는 언행, 내각 전체에 치명타

국민 눈높이 안 맞추면 장관 자격 없어

정치도 마찬가지다. 특히 내각은 더욱 그렇다. 내각이야말로 팀워크가 생명이다. 요즘 스타 장관이 대세고 유행이라지만 한 명의 장관이 잘하는 건 사실 크게 돋보이지 않는다. 반면 장관 한 명이 튀고 헛발질하고 엉뚱한 언행을 일삼으면 내각 전체가 욕을 먹는 게 여론의 생리다. 검은색 물방울 하나가 순식간에 온 도화지를 검게 물들이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장관일수록 자신의 문제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도 합창과 똑같다. 자기가 가장 잘났고 자기가 하는 일이 최선이란 확신에 차 있는 것도 똑같다. 내각의 지휘자 입장에서 이런 착각에 빠진 참모를 보면 속이 타들어갈 일이다.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린다고 모두 스타 장관으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여론의 칭찬을 받는 자도 스타 장관으로 불리고 여론의 뭇매를 맞는 자도 “스타 장관 났네”라는 얘길 듣지만 의미는 정반대이지 않나. 황제라는 단어가 한 분야의 최고 권위자라는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동시에 권위와 재력을 이용해 부당한 특혜를 누리는 자를 꼬집을 때 곧잘 쓰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골프 황제’와 ‘황제 골프’도 전혀 다른 뉘앙스이지 않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는 지난해 친정팀 맨유로 컴백한 뒤 리그에서 18골을 넣으며 존재감을 재확인했지만 그로 인해 팀워크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비판 속에 결국 팀이 챔피언스리그에도 나가지 못하는 현실에 직면해야 했다. 본인의 성적은 챙겼을지 몰라도 팀은 최악의 상황에 빠져버린 셈이다. 스타도 팀에 녹아들 때 더욱 빛을 발한다. 케빈 더 브라위너나 모하메드 살라 등 프리미어리그 스타들도 공격은 물론 끊임없이 전방 압박에 가담하며 팀을 위해 헌신하기 때문에 인정받는 거다. 스포츠의 오랜 경구가 웅변하듯 “팀보다 더 위대한 선수는 없다”지 않은가.

장관들의 발언이 잇따라 화를 자초하고 있다. 튀려는 욕심, 자기가 옳다는 외곬 확신에 윗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까지 읽힌다는 세간의 혹평도 적잖다. 만 5세 입학 등 최근 장관들이 야기하는 일련의 논란을 보면서 14년 전 ‘아륀지’ 발언 파문이 오버랩되는 건 비단 나만의 노파심일까. 어렵게 정권 교체에 성공했는데 이렇게 찬물을 끼얹고 있으니 그 책임은 대체 누가 질 것인가. 국민과 눈높이를 맞추지 않는 장관은 내각에 있을 자격이 없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단어 하나가, 무모하게 추진하는 정책 하나가 전체 내각에 얼마나 큰 치명타를 가하는지, 국정 지지율을 얼마나 깎아먹는지 역대 정부 사례는 차고도 넘친다. ‘무조건 고’가 결코 능사는 아니다. 이제라도 닫힌 귀를 열라. 아직 늦지 않았다.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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