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삼성에 갑질' 브로드컴, 공정위에 "자진시정 하겠다" 왜

중앙일보

입력 2022.08.05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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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미국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이 공정거래위원회에 동의의결을 신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동의의결은 제재를 받지 않는 대신 자발적으로 혐의를 시정하고 피해를 구제하는 절차다. 브로드컴은 삼성전자를 상대로 휴대전화 부품을 판매하면서 ‘갑질’한 혐의를 받는다.

“자진시정 하겠다” 동의의결 신청

4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공정위는 이달 24일 브로드컴이 신청한 동의의결 절차를 개시할지에 대해 심의한다. 브로드컴은 스마트폰 부품을 삼성전자에 공급하면서 장기계약을 강요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브로드컴은 스마트 기기에 꼭 필요한 부품인 와이파이, GNSS(위성항법시스템) 장비 등을 만드는 회사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판정 모습. 연합뉴스

정부세종청사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판정 모습. 연합뉴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3년에 달하는 장기계약으로 삼성전자의 계약 선택권을 제한하고 경쟁업체의 진입을 막았다고 본다. 다른 회사에서 더 좋은 부품을 만들더라도 교체할 수 없게끔 했다는 의미다. 업계에선 피해를 본 기업이 소수에 불과한 데다 제재 심의를 앞두고 동의의결을 신청한 만큼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본다.

경쟁사 퀄컴·브도르컴, 서로 신고

브로드컴 사건은 미국의 반도체와 통신장비 기업인 퀄컴의 신고로 시작됐다. 브로드컴이 퀄컴을 공정위에 먼저 신고했고, 이를 안 퀄컴이 브로드컴의 장기계약 강요를 문제 삼아 ‘맞신고’했다. 퀄컴은 공정위에 브로드컴 관련 자료를 제출하고 업계 상황을 설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신고한 퀄컴에 대해서도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를 조사 중이다.

이처럼 최근들어 공정위가 글로벌 기업들의 ‘전쟁터’가 돼가고 있다. 퀄컴·브로드컴뿐 아니라 삼성전자·인텔·AMD·애플 등 초대형 기업의 신고와 협조가 공정위 주요 사건의 발단이 돼왔다. 상장 주식의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모두 200조원이 넘는 회사들이다. 애플의 경우 시가총액이 3500조원에 달한다.

시총 수백조 회사들의 대리전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2008년 제재가 이뤄진 인텔 사건이 시초다. 당시 공정위는 인텔이 삼성전자·삼보컴퓨터 등과 계약하면서 CPU 구매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면 리베이트를 주는 방식으로 경쟁사업자를 배제했다며 과징금 266억원을 부과했다. 이 사건을 신고한 건 미 반도체회사 AMD였다. 당시 인텔에 대해 한국·EU 등 전 세계 경쟁당국이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AMD는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공정위 역대 최고 과징금이 부과된 퀄컴 사건의 배경에도 글로벌 기업들이 있었다. 공정위는 2009년 삼성전자 등에 이동통신기술 특허를 제공하면서 경쟁사 모뎀칩을 사용하면 로열티(사용료)를 높인 퀄컴에 과징금 2732억원을 부과했다. 당시 퀄컴을 신고한 건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와 브로드컴이었다.

삼성·애플 참전한 1조 과징금 사건

2019년 12월 퀄컴 코리아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건물 앞에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2019년 12월 퀄컴 코리아 본사가 있는 서울 강남구 건물 앞에 시민들이 오가고 있다. 뉴스1

과징금만 1조311억원이 부과된 2016년 퀄컴 2차 사건엔 삼성전자·애플·인텔 등이 총출동해 공정위 편을 들었다. 삼성전자와 애플은 퀄컴이 스마트폰 제조사에 특허 계약 체결을 강제했다고 밝혔다. 인텔은 퀄컴으로 인해 칩셋 공급 경쟁이 제한된다며 관련 자료를 제출했다. 애플은 공정위 심판정에 직접 나와 퀄컴 사업모델의 부당함을 PT로 설명하기도 했다. 이를 발단으로 애플과 퀄컴은 미국에서 쌍방 소송전까지 벌였다.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반도체·통신 거대 기업 간의 분쟁이 국내에서 벌어지는 건 삼성전자가 있어서다. 이들 기업에서 만든 칩과 특허를 사용하는 삼성전자가 있다 보니 공정위가 사건 중심에 선 것이다. 제조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이 같은 분쟁은 언제든 다시 발생할 수 있다. 공정위는 브로드컴이 신고한 퀄컴 사건도 아직 검토 중이다.

다만 앞으론 공정위 사건의 중심이 하드웨어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브로드컴 사건이 10여년간 이어진 제조사 간 다툼의 막바지로 보인다”며 “인앱결제 문제가 불거지듯 앞으론 구글·아마존 등 플랫폼 기업이 사건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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