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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활개친 펠로시, 시진핑 웃었다? 그가 잡은 반전의 기회 [뉴스분석]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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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7월 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 오후 6시 1분(현지시간, 한국시간 오후 7시 1분)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 일행이 약 19시간의 대만 일정을 마치고 떠났다. 지난 1997년 4월 2일 165분에 그쳤던 뉴트 깅그리치 미 하원 의장과 다른 모습을 과시했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에 오기 전까지 연일 공격성 어조를 높였던 중국 측은 3일에도 ‘반격 조치’를 강조했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관련 조치는 결연하고 힘 있고 실효적일 것이며 미국과 대만 독립 세력이 계속 느끼게 될 것"이라며 "우리는 한다면 한다. 더 인내심과 믿음을 가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이 특히 민감했던 이유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올 가을 3연임을 확정지을 20차 당 대회를 앞두고 있단 점 때문이다. 펠로시 대만 방문이 결과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 지에 대해 전문가들은 다각도로 분석을 내고 있다.

상하이 봉쇄·경기침체 악재서 여론 돌려 #군 통수권 확립, 대만 포위 훈련 구실 제공 #국민 납득, 미국과 충돌 피할 줄타기 과제

일각에선 시 주석 리더십에 기회라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코로나19 통제를 배경으로 11월 40년만의 3차 역사결의에 성공하고 올 2월 겨울 올림픽을 무탈하게 개최하는 등 순조롭던 3연임 가도가 최근 잇단 악재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상하이 봉쇄, 급격한 경기 침체로 고심하던 시 주석에게 펠로시 의장 방문은 여론을 돌릴 빌미가 됐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제로 코로나’ 고수로 민심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시 주석은 대미항전 분위기를 조성해 민족주의로 여론을 결집할 기회를 얻었다”고 짚었다. 시 주석의 권위와 중국의 힘을 과시할 기회를 얻었다는 의미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3일 오전 담화를 내고 “미국은 중국의 통일 대업을 막겠다는 환상을 갖지 말라”며 “중국의 평화 굴기를 파괴한다면 반드시 머리가 깨지고 피를 흘릴 것(頭破血流·두파혈류)”이라고 말폭탄을 쐈다. 중국 외교부는 펠로시 도착 직후 성명을 내고 “펠로시 의장이 중국 대만지역을 도둑 방문(竄訪·찬방)했다”고 비난했다. ‘찬방’은 중국 외교에서 달라이 라마에게 쓰는 비외교적 용어다.

류루이사오(劉銳紹) 홍콩 평론가는 같은날 “20차 당 대회에 앞서 미국이 (시진핑의) 핵심과 영수 지위를 더욱 공고히 해줬고 군대 내부에서도 통수권을 확립시켰다”며 “전투기의 해협 중간선 비행, 미사일 발사, 대만 상공으로 전투기를 진입시키는 등 과격한 행동을 시도할 구실을 제공했다”고 명보 칼럼에서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군은 펠로시의 대만 착륙을 기다렸다는 듯 대만 주변 해역 실사격 훈련 계획(4~7일)을 발표했다. 대만 남서부 가오슝(高雄) 해안에서 20여㎞ 떨어진 지척까지 훈련 해역을 획정하며 공포감 조성을 극대화했다. 지난 1995~1996년 리덩후이 총통의 방미가 초래한 미사일 위기 당시 훈련 해역과 비교하면 훨씬 대만 지근거리다. 유사시 대만 고립화 작전의 실전 연습이나 다름 없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중국군에 정통한 테일러 프레이블 MIT 교수는 “대만 동부 해역에서 미사일을 시험한다면 일부 미사일은 대만을 넘어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단 “훈련 시점은 펠로시가 대만을 떠난 뒤인 4일부터 7일”이라며 중국이 군사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펠로시 방문이 양날의 칼이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기관지 학습시보 부편집인을 역임한 덩위원(鄧聿文) 중국평론가는 “상하이 봉쇄와 급격한 경기 침체로 민심이 위축된 상황에서 시 주석이 펠로시 방문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지 못하면, 좌파와 애국민중, 군부의 지지를 잃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일 군사 행동의 강도가 약하면 중국 국민을 납득시키기 어렵고, 만일 강도가 지나치면 미군과 충돌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고조된 민족주의 수위를 관리하면서 중국 국민 여론과 미국의 군사력 사이에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 총통부에서 대만 최고 영예의 ‘특종 대수경운(大綬卿雲) 훈장’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3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 총통부에서 대만 최고 영예의 ‘특종 대수경운(大綬卿雲) 훈장’을 받은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AFP=연합뉴스

국제 여론도 중요하다.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은 3일 펠로시 의장에게 1941년 제정한 대만 최고 영예의 ‘특종 대수경운(大綬卿雲) 훈장’을 수여했다. 펠로시 의장은 “43년 전 미국은 ‘영원히 대만과 함께하겠다’고 승락했다”며 “이번 방문으로 세계에 대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승락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대만이 국제 여론에 호소한 셈이다. 만약 중국의 보복이 국제사회 시각에서 과도할 경우 반(反)중국 분위기를 조성해 유럽과 인도·태평양 연대를 강화하는 미국에 밀릴 수 있다. 이미 네이선 루서 호주 전략정책연구원(ASPI) 연구원은 중국 측 보복이 “지난 수십년간 가장 도발적인 움직임이며 유엔이 정의한 ‘국가침략(state aggression)’ 행위”라고 공격에 나섰다.

경제와 대만 민심도 변수다. 강준영 교수는 “시 주석에게 대만의 민심이 중국에서 더 멀어지지 않도록 대응 수위를 조절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며 “중국은 펠로시 방문이 초래할 반도체 수급과 미국·대만의 무역협정 등 경제적 파급 효과 계산에 주력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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