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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떨어진 美 핵억지력…핵전쟁 부를 수 있다, 이 두나라의 오판 [Focus 인사이드]

중앙일보

입력

바야흐로 3차 핵시대에 들어섰다.

핵폭발

핵폭발

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의 붕괴까지인 1차 핵시대에는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전략적 균형으로 인한 억제가 작동했다. 두 패권국은 상호 비등하지만, 다른 국가에 비해서는 압도적인 수천 기의 핵무기를 보유했다. 한 쪽이 다른 쪽에 사용하는 순간 사용한 쪽 역시 공멸할 것이므로, 핵무기는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할 무기로 인식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양국의 군사적 대립으로 핵사용 직전까지 갔던 사례로서, 역설적이게도 전 세계적으로 핵사용을 더욱 금기시하는 계기가 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직전, 1998년의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2차 핵시대의 시작을 알렸다. 이들뿐 아니라 북한ㆍ이란ㆍ리비아ㆍ시리아 등 소위 불량국가들, 심지어 테러리스트들로의 핵 확산이 우려된 시대였다. 이처럼 새롭게 핵무기를 보유하거나 보유하려는 행위자들은 이미 핵을 보유한 강대국에 비해 취약하고 비합리적이다. 그래서 심각한 위협을 받으면 핵사용을 무릅쓸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핵에 의한 안정성이 크게 낮아짐에 따라, 핵안보와 ‘핵무기 없는 세계’에 대한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2차 핵시대는 미국의 핵능력이 얼마나 무력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서로 핵을 사용하려 한다 해도, 미국이 가진 핵능력으로 이를 억제할 의지는 없었다. 미국의 핵능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시를 강타한 9ㆍ11 테러가 일어났고, 3000명에 이르는 미국인이 목숨을 잃었다. 시리아가 자국민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하는 것에도,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ICBM을 개발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이 가진 핵은 억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북한은 5월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미국 전역에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다. 노동신문

북한은 5월 24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미국 전역에 핵공격을 할 수 있는 장거리 미사일이다. 노동신문

3차 핵시대는 다량의 핵을 보유한 강대국들에 의해 미국 주도의 패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을 배경으로 한다. 2014년에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사건은 이전 시대와는 다른 특징의 핵시대를 예고했다. 전략폭격기와 핵타격 모의실험 등 러시아가 드리운 핵 그림자는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성공적으로 위협했고, 미국은 이를 막지 못했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3차 핵시대에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적수였던 러시아뿐 아니라 또 다른 주인공, 중국이 있다. 중국은 2030년까지 약 1000기의 핵무기를 가질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2049년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군을 건설하겠다는 시진핑 주석의 포부(강군몽ㆍ强軍夢)를 고려할 때, 미국과 러시아 수준의 핵능력 증강도 고려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핵능력 고도화는 주춤했던 미국과 러시아의 핵능력 증강을 재촉하고 있다. 이들은 전에 없이 사용 가능성에 무게를 두며, 핵전력 현대화를 추구하고 있다. 이제 양자가 아닌 삼자에 의한 핵 경쟁인 것이다.

삼자 간의 핵 경쟁은 그 자체로 계산이 훨씬 복잡해진다. 셋 중에 둘이 한 편을 하자고 하면, 균형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둘의 핵무기를 합친 양과 비등해져야 한다. 또한 미국이 상대하는 나머지 둘은 미국을 먼저 때리는 것이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는 핵전력 사용 가능성으로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극복하기 원한다. 중국은 아직 미국보다 열세인 핵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맞고서 반격을 하기보다는 먼저 타격을 해서 적의 능력을 급격히 약화하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사이버와 같은 신흥 기술은 전략적 균형을 위협할 수 있게 됐다. 로이터

사이버와 같은 신흥 기술은 전략적 균형을 위협할 수 있게 됐다. 로이터

이처럼 3차 핵시대는 강대국 간의 군비경쟁에 초점이 맞춰진 점에서 1차 핵시대와 닮았지만, 급격히 낮아진 핵 안정성은 2차 핵시대를 닮아 있다. 그런데 핵 안정성을 낮추는 것은 행위자 때문만은 아니다. 핵무기와 비핵 전략무기와 결합은 핵 균형의 명료함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략적 임무에 사용될 수 있는 극초음속활강체(HGV), 사이버 무기, 인공지능(AI) 등 신흥 기술에 기반을 둔 능력이 핵태세와 결합하면서, 빈틈없이 억제가 가능하다고 믿겨지는 상황에 구멍이 늘고 있다.

예컨대, 센서 기능, 실시간 데이터 처리, 표적 추적 및 정밀 타격의 능력 향상은 이전에는 은밀하게 기동 가능했던 핵무기를 쉽게 찾고 정확히 손상시킬 수 있다. 또한 적의 핵 지휘통제통신체계의 디지털화는 적의 약점을 틈탈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침투에 취약한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 더불어 인공지능 기술에 기반해서는 미사일 방어 임무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요격 방법과 지원 인프라가 발전되고 있다.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은 전투기를 동원해 시리아가 비밀리에 짓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폭격했다. 작전명은 '상자밖(Outside the Box)'. 왼쪽은 폭격 전, 오른쪽은 폭격 후 위성사진. 북한이 시리아 원전 건설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스라엘군

2007년 9월 6일 이스라엘 공군은 전투기를 동원해 시리아가 비밀리에 짓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폭격했다. 작전명은 '상자밖(Outside the Box)'. 왼쪽은 폭격 전, 오른쪽은 폭격 후 위성사진. 북한이 시리아 원전 건설에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스라엘군

이제까지의 국제정치 아래에서는 핵이 주는 전략적 안정에 의지해 전술적 도발로 인한 불안정을 감수하고, 대신 더 큰 정치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장담이 어렵다. 안정-불안정의 경계는 더는 예전만큼 두텁지 않다. 핵이 보유한 폭발력과 기존의 예측 범위를 극복한 첨단 무기체계의 결합, 그리고 이에 대한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경쟁은 오인과 오판에 의한 핵확전의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 남의 동네 얘기가 아니라, 한반도와 국경을 접한 두 국가와 한국의 동맹국 간에 벌어지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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