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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칩4 반대, 무시할 수 없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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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중국은 우리나라와 미국·일본·대만이 참여하는 칩(Chip)4 동맹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와 상무부는 칩4가 자유무역에 부합하지 않으며 반도체 공급망을 교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중국의 반발과 항의에도 미국 기술과 장비에 많이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칩4에 가입할 수밖에 없다. 불참할 경우 미국은 중국에 부과한 다양한 제재를 우리 기업에도 적용할 것이다. 지난달 말 미 의회를 통과한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도 문제다. 이 조항에 따르면 미국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은 기업은 중국을 위시한 ‘우려 국가’에 향후 10년간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는 공장을 신설할 수 없다. 1990년대 미·일 반도체 협정으로 몰락한 일본 반도체 산업의 역사적 교훈을 보면 칩4 가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할 수 있다.

칩4 가입은 선택 아니라 필수지만
중국, 한국 반도체 수출 60% 차지
미국 설득해 우리 피해 없게 해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중국의 반대를 완전히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의 약 60%가 중국으로 간다. 물론 우리 기업이 수출한 반도체 모두가 중국 안에서 소비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수입한 반도체의 절반 정도는 완제품에 조립돼 해외로 재수출된다. 미국반도체협회에 따르면 반도체의 최종 소비지를 기준으로 미국과 중국이 거의 비슷하지만 2025년을 전후로 중국이 미국을 능가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 기업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더 심화한다.

우리나라 무역흑자의 대부분은 대중 무역에서 나온다. 1993년부터 2021년까지 전체 수출액에서 중국 비중은 22.5%였으나, 전체 무역흑자에서는 86.0%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최대 수출품인 반도체는 대중 무역흑자의 가장 큰 원천이다. 그래서 반도체 수출이 감소하면 대중 무역흑자는 물론 전체 무역흑자가 줄어들게 된다. 지난 5월과 6월 28년 만에 처음으로 월간 대중 무역적자가 발생했다. 올 상반기 한국 증시가 20% 이상 하락했고 원·달러 환율이 1300원을 넘었으며 외화보유액도 지난 3월부터 계속 감소하는 상황에서 무역적자 장기화는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생산시설과 공급망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전자 시안 공장은 낸스플래시 제품의 약 40%, SK하이닉스 우시 공장은 D램 제품의 거의 50%를 생산한다. 또 개별소자 반도체 부품, 메모리 반도체, 금속 소재 및 다이오드의 대중 수입 의존도가 40%를 넘고 있다. 당분간은 반도체가 부족하기 때문에 중국이 우리 기업을 당장 견제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올 상반기 주요 반도체 기업 주가가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 때문에 연초 대비 20% 이상 하락한 것을 볼 때 시장 주도권이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넘어가고 있다.

칩4가 반도체 무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18년 미국이 중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고 첨단 제품의 수출을 통제했음에도 미국은 물론 일본·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계속 증가했다. 양안 관계 악화로 군사적 긴장이 고조됐지만, 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를 보면 미국의 대중 제재 효과는 당분간 크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칩4가 실패할 경우에도 대비해야 한다. 칩4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미국·일본·대만의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삼성전자·TSMC·인텔이 자사 수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협조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지난해 9월 미 상무부가 매출·재고·고객 명단 등 영업비밀을 제출하라고 요구했을 때 대부분의 기업이 마감 시한까지 버텼다. 또 중국에 생산시설을 보유한 인텔·삼성·TSMC 모두 중국에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반도체 무역과 공급망에서 우리나라는 미국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미국은 국내에서 반도체 생산을 증가시키기 위해 해외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 반대로 우리는 국내에서 생산한 첨단 반도체를 중국 등 해외에 수출해야 한다. 칩4 가입 협상을 할 때 정부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중국에서 피해를 보지 않도록 미국 정부를 잘 설득해야 한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