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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대통령의 국정쇄신, 개헌 논의로 돌파하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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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상임대표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상임대표

중국 한나라 고조 유방을 도와 창업에 기여한 육가는 “마상에서 천하를 얻을 수 있지만, 마상에서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면서 “옛날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신하의 신분으로 천하를 취했으나, 민심에 순응하여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설파했다. 유방은 육가의 말을 듣고 낯빛을 바꾸고 그의 말에 따른다. 창업은 힘으로 할 수 있으나 수성은 힘으로만 이룰 수 없다는 육가의 진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가 취임 후 처음으로 20%대로 떨어졌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정을 너무 쉽게 보고 자신감에 넘쳐 일방적으로 이끈 결과가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제기된다.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인식하고 국정과제를 함께 풀어나간다는 겸손하고 균형 잡힌 모습이 요구된다. 이와 함께 누구를 위한 대통령이 돼야 하는가 돌이켜보고 국가적 과제에 대한 확고한 정책 방향을 세워 국민, 특히 약자들에게도 희망과 안정감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낡은 헌법, 시대 맞게 개정하고
당면한 민생위기 해법 마련해야
국회는 개헌특위 속히 구성해야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대통령이 담대한 비전을 확실히 제시해 국정 전반을 안정적으로 이끌지 못하면 지지층도 떠난다. 검찰·경찰을 장악하고 사정 정국을 만든 후 야당을 압박해 정국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버티다가, 다음 총선에 승리해 국정 동력을 찾겠다는 일각의 위험한 시도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국정에 대한 협상과 타협이라는 정치 본질을 앞장서 복원해야 한다. 야당도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선거 승리에만 몰두하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 이기는 선거만을 위해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지 말고, 당을 개혁하고 정책적 비전을 제시해 국민 지지를 얻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김진표 국회의장의 수락 연설은 경청할 만하다. 김 의장은 “35년 된 낡은 헌법 체계를 시대에 맞게 전면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21대 국회 임기 안에 개헌을 이뤄낼 수 있도록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생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국회 민생경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민생 경제에의 매진’이라는 단기적 정책 과제와 ‘헌법 개정’이라는 장기적 개혁 과제의 실현이라는 조화로운 병행을 제시했다. 일각에서는 국회 개헌특위가 구성되면 모든 초점이 거기로 빨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면서 지금 단계에서 개헌특위 구성을 논의할 때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재 정국은 국정의 장·단기 과제를 병행적으로 풀어가는 동시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균형 잡힌 미래에 대한 예측은 현재의 반목과 갈등을 합리적으로 극복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승자 독식 구도 타파, 기득권 양당 체제 청산, 더 큰 다수를 창출하는 합의제 민주주의 구축 등 국정 운영의 새로운 틀을 여야 공동으로 이루겠다는 결의만으로도 협치에 대한 기대를 높여줄 것이다.

우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현실적 개헌 작업을 시작하고, 헌법개정절차법을 제정해 개헌의 절차적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 개헌특위 내 ‘국민 참여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국민 참여 개헌 작업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 개헌절차법 통과로 개헌 로드맵이 확실히 보이면 정치권도 미래에 대한 전망을 공유하며 상호 신뢰를 회복해 당면한 민생경제 해결을 위한 협치 리더십을 기대할 수 있다. 헌법 개정은 정치적 타협을 통해 시대 의지를 확인해내는 어려운 작업이다. 이를 위해 ‘성숙한 시민들’이 참여해 조직적 힘을 발휘하도록 국회 개헌특위에 ‘숙의민주주의 공론장’을 만들어 운영할 것을 제안한다.

이제 승자 독식 구도의 사슬에 얽매어 국회가 선거 고지를 선점하기 위해 죽고 살기 식 싸움을 벌이는 베이스캠프가 아니라 민생의 바람직한 토론장으로 변모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촛불 개혁을 제쳐 놓고 적폐 청산에 몰두하다 개혁 동력을 잃은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당장 임기 중에 개헌을 실행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음 총선 전까지 개헌은 하되, 그 시행 시기는 사안에 따라 여러 방법으로 조정할 수 있다. 미래를 위한 개헌 로드맵 합의 자체가 진정한 국정 위업을 달성하는 단초가 될 것이다. 국민은 곧 대통령과 국회의장이 만나 국회 개헌특위 구성 등 헌법 개정 문제를 논의하는 것을 포함한 국정 쇄신 기회가 마련되길 기대하고 있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상수 전 노동부 장관·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상임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