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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국어 배우는 영국신사…여자 축구대표에 진심 통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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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콜린 벨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대만전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 콜린 벨(61·잉글랜드)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은 선수들부터 챙겼다. 스코어는 4-0. 2005년 이후 17년 만의 우승컵 탈환 꿈을 이루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마지막 경기를 완승으로 장식한 선수들과 일일이 축하 인사를 나누며 격려했다. 내년 7월 개막하는 여자 월드컵 본선(호주-뉴질랜드 공동 개최)을 목표로 ‘원 팀’을 만들어가는 그에겐 선수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하다.

벨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6일 일본 이바라키현 가시마의 가시마 사커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만과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챔피언십(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4-0으로 이겼다. 이민아(31·현대제철)가 2골을 터뜨리며 공격을 이끌었고, 강채림(24·현대제철)이 추가골을 터뜨렸다. 후반 추가 시간에 고민정(19·경남 창녕 WFC)이 쐐기골까지 넣으면서 한국은 4골 차의 완승을 거뒀다. 앞서 일본전(1-2패)과 중국전(1-1무) 결과를 묶어 한국은 종합 전적 1승1무1패(승점 4점)로 대회를 마쳤다.

경기 후 벨 감독은 “월드 클래스 일본과 중국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하고도 승점 1점에 그친 게 아쉽다”면서 “세계 수준과 격차를 좁힌 걸 확인한 만큼, 더욱 박차를 가해 ‘이기는 팀’으로 바꿔가겠다”고 말했다.

벨 감독의 ‘한국 사랑’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종목을 통틀어 역대 외국인 감독 가운데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지도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2019년 10월 취임 인터뷰 첫 인사부터 우리말로 했다.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6일 동아시안컵 대만과의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선수들이 26일 동아시안컵 대만과의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둔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사진 대한축구협회]

“안녕하세요, 저는 콜린입니다. 잉글랜드에서 왔어요. 대한민국 여자 축구대표팀 첫 외국인 감독이 되어서 영광입니다”라는 문장을 미리 적어와 또박또박 발음했다. 그는 “선수들이 나에게 맞추기보단 내가 선수들에게 맞추는 게 효과적”이라면서 “문화적 융합에 바탕을 두고 팀 정체성을 만들어가고 싶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3년간 벨 감독은 선수 및 팬들과의 약속을 지켰다. 일과표에 ‘한국어 공부 시간’을 포함시켜 매일 오전 9시30분에 한국말을 배웠다. 처음엔 한국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대면 교육이 어려워지자 독학으로 전환했다. 벨 감독은 “선수들과 좀 더 친밀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3년 차에 접어든 현재는 우리말로 공식 인터뷰를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지난 4월 대표팀 소집 기간 중엔 기자회견에서 영어로 설명하다가 강조하고 싶은 대목은 한국말을 사용해 눈길을 끌었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월드컵을 생각해요” “우리는 팀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과정을 시작했어요” 등의 문장을 구사하는 모습을 지켜본 취재진 사이에선 탄성이 터져 나왔다.

지난달 캐나다와 A매치 원정 평가전 기간에 진행한 비대면 기자회견에선 모든 질문에 한국어로 대답했다. 느리고 서툴지만, 단어와 문장 하나하나를 정확히 발음하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캐나다를 상대로 전술적인 유연함을 실험합니다” “우리 선수들은 신체적으로 강한 팀과 상대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이번 경기에서 강팀의 스피드와 피지컬, 멘털을 배워야 합니다.” 등등 수준 높은 한국어가 술술 흘러나왔다.

감독의 진심을 읽은 선수들은 무한한 신뢰를 보낸다. 에이스 지소연(31·수원FC위민)은 “감독님이 한국말을 배우는 건 선수들에 대한 존중의 표시라고 생각한다”면서 “외국인 지도자가 한국에 건너와 열정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모습을 이전엔 본 적이 없다. 이 모든 노력은 열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벨 감독은 “나는 한국의 국가대표팀 감독이고,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낸다”며 “선수와 팀을 사랑한다. 이 선수들과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벨 감독은 여자 대표팀의 실력을 끌어올려 내년 월드컵 본선에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게 목표다. 이를 위해 스태프 및 선수들과 진심으로 소통하고 교감한다. 전술적으로는 ‘조직적이고 간결한 수비, 다양한 찬스를 만드는 공격’을 모토로 다채로운 실험을 진행 중이다. 선수 개개인의 특징과 강점을 살린 전술을 가다듬고 있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토트넘의 손흥민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한 유럽 무대에서 성공을 거둔 핵심 비결 중 하나는 현지 언어와 문화에 완벽히 적응했다는 것”이라면서 “한국말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벨 감독의 진심을 선수들도 신뢰한다. 팀 분위기는 역대 어느 대표팀보다 끈끈하다”고 말했다.

‘영국 신사’ 콜린 벨 감독

콜린 벨 감독

콜린 벨 감독

● 출생: 1961년 8월5일, 영국 레스터
● 소속: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
● 선수 경력: 레스터시티(잉글랜드), 하므, 마인츠(이상 독일)
● 감독 경력: 코블렌츠, 드레스덴, 마인츠, 프랑크푸르트(이상 독일),  아일랜드 여자대표팀, 한국 여자대표팀
● 특이 사항: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최초 외국인 사령탑,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과 절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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