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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억원 공연 포기 후회 안한다” 격투기 대부 된 가수 박상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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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박상민은 우연히 본 TV 중계를 통해 격투기의 매력에 빠졌다. [사진 로드FC]

박상민은 우연히 본 TV 중계를 통해 격투기의 매력에 빠졌다. [사진 로드FC]

가수 박상민(58)은 ‘데뷔 30년차 베테랑 가수’ ‘대한가수협회 이사’ 외에도 직함이 하나 더 있다.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의 부대표다. 올해로 10년째다. 트레이드마크인 콧수염에 선글라스와 중절모를 쓴 그를 팬과 선수들은 ‘격투기계 대부’라고 부른다. 지난 23일 로드FC 대회가 열린 강원도 원주종합체육관에서 만난 박상민은 “케이지(격투기 경기장)가 공연 무대처럼 편안하다. 격투기 대회를 잘 치르면 마치 콘서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것 같다. 내 삶의 일부”라고 말했다.

박상민은 2010년 로드FC와 인연을 맺었다. 연예계 소문난 스포츠광이었던 그는 원래 축구·야구·농구·핸드볼 등 구기 종목 경기장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TV에서 본 격투기에 빠졌다. 체격이 작은 일본 선수가 환상적인 펀치로 거구의 서양 선수를 쓰러뜨리는 장면이었다. 그는 “주먹을 주고받는 건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공으로 승부하는 스포츠에선 볼 수 없는 매력이어서 신선한 충격을 느꼈다”고 했다. 박상민은 그 길로 국내 격투기 경기를 찾았다. 하지만 당시 한국 격투기는 걸음마 단계라서 경기가 드물게 열렸다. 2010년 창설된 로드FC가 사실상 꾸준히 경기를 여는 유일한 국내 격투기 대회였다. 박상민은 반가운 마음으로 로드FC의 문을 두드렸지만, 문전박대당했다. 격투기계가 그의 진정성을 의심해서다. 박상민은 “직접 표를 사서 경기장을 갔는데도 격투기 관계자들은 본 체도 안 했다. 나를 폼 잡기 위해 잠시 기웃대는 연예인 정도로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박상민은 자발적으로 지인을 찾아가 격투기 대회 후원을 부탁했다. 선수들의 결혼식에 제 발로 찾아가 축가를 불렀다. 돈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진심은 통했다. 박상민은 “수개월을 격투기 선수들과 뒤엉켜 살다 보니, 로드FC 측에서 부대표직을 제안하더라. 무보수 직책이었지만, 마침내 인정받은 것 같아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고 말했다.

로드FC는 13년 동안 61회의 공식 대회를 치른 국내 최대 격투기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박상민은 선수들을 이끌고 ‘선행 프로젝트’에 나섰다. 각 체급 챔피언, 유명 선수들 함께 전국 중·고교를 돌며 일진 학생 모아 학교폭력 예방 교실을 열었다. 그는 “지난 10년간 격투기 경기장을 찾는 대신 주말 공연을 했다면 수억 원을 벌었겠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매니저는 내가 돈 벌 기회를 포기했다고 속상해하지만, 나는 정직한 땀방울 흘리는 선수들의 처우가 조금이라도 개선된 것으로 만족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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