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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산 쌀도 다 못팔았는데” 풍년이 걱정되는 농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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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면

세종시 연동면 세종시농협쌀조합공동사업법인(세종통합RPC) 창고에는 무게 800㎏에 달하는 포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지난해 가을 농민들에게서 사들인 벼를 보관하는 포대다. 이곳에 저장 중인 벼(쌀)는 1만4000t에 달한다.

세종통합RPC는 9월 중순까지 1만t가량을 판매할 예정이지만 남은 4000t은 처리가 불확실한 상황이다. 재고를 처리하지 못하면 묵은쌀이 창고에 계속 쌓여 햅쌀을 매입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적재공간 부족으로 예정된 물량보다 적게 매입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얘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매달 1억원가량의 적자가 쌓인다. 적자는 세종통합RPC에 출자한 세종지역 8개 농협 몫으로 돌아간다.

세종통합RPC 관계자는 “작년에도 풍년이 들어 벼를 매입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올해도 이런 날씨가 이어지면 풍작이 이어질 텐데 풍년을 걱정하는 말도 안 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벼를 보관하는 전국 미곡종합처리장(RPC)이 포화 상태다. RPC(Rice Processing Complex) 창고마다 대형 포대가 겹겹이 쌓였고 언제 출하될지는 감감무소식이다.  늘어가는 건 적자뿐이다. 두 달 뒤 시작하는 수매를 앞두고 RPC를 운영하는 농협과 농민의 한숨이 깊어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종통합RPC는 지난해 농민들로부터 40㎏당 6만3000원에 벼를 매입했다. 이를 가공해 판매하는 가격은 5만3000원(40㎏ 기준 )이다. 이윤은 고사하고 손해를 보고 팔아야 하는 구조다. 턱없이 떨어진 쌀값 때문이다.

농협충남세종본부 산하 창고에 쌓여 있는 쌀 재고량은 18만t에 달한다. 이 물량이 줄어들지 않으면 올가을 수매를 놓고 정부와 농협, 농민 간 갈등이 불가피해진다.

쌀값이 계속 떨어지고 재고가 줄지 않자 정부는 올해 들어 두 차례 총 27만t의 벼를 수매했다. 시장에서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자 결국 지난 18일 10만t을 추가로 사들였다. 하지만 현장에선 “10만t으로는 어림도 없다. 적어도 20만~30만t은 매입해줘야 숨통이 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농협은 추가 판매 등을 통해 보관 중인 벼를 처리하더라도 전국에서 23만6000~31만6000t의 재고가 남을 것으로 전망했다.

농민들은 쌀값이 더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재고 물량이 줄어들지 않으면 2022년 햅쌀 가격도 하락이 불가피해서다. 충남 태안에서 벼농사를 짓는 한 농민은 “요즘 쌀값을 제외하고 모든 물가가 오르지 않느냐”며 “이대로라면 쌀값이 오르기는커녕 햅쌀을 얼마나 수매할지도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쌀값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소비 감소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1년 116.3㎏이던 우리나라 1인당 연간 쌀 소비는 지난해 절반 수준인 56.9㎏으로 줄었다. 1인당 하루 156g을 먹는 것으로 계산하면 즉석밥(200g 기준) 1개도 안 되는 양이다. 농협 자료를 기준으로 지난해 6월 5만5904원(20㎏들이)이던 쌀값은 1년 만인 올해 6월 4만5537원까지 떨어졌다.

정부의 3차 추가 수매에 이어 전국 농협과 공공기관은 ‘쌀 팔아주기 운동’과 ‘쌀밥 먹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라는 게 현장의 반응이다. 쌀 소비가 획기적으로 늘어나 재고 물량을 줄이지 않으면 쌀값 폭락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농협과 농민들은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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