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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몰린 ‘빚투’…20대 채무조정신청, 3년 새 28% 급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회사원 이모(38)씨는 지난해 여름 셋째 아이 임신 이야기를 듣고 목돈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코인 투자를 결심했다. 주식 투자로 모았던 쌈짓돈으로 사들인 코인 가격이 급등하자 아내 모르게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투자액을 늘렸다. 하지만 올해 초 셋째가 태어나기 전에 코인 시장이 급락했고, 초조해진 이씨는 제2금융권에서 1억원가량 신용대출을 받아 코인 선물거래에 나섰다. 시장 상황이 더 나빠지며 신용대출을 받은 돈까지 모두 잃었다.

지난해 주식과 코인의 광풍 속 투자에 나섰던 2030세대가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자산시장 과열 속에 저금리를 레버리지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섰다가 자산시장 하락과 금리 인상의 역풍에 휘청대고 있다. ‘2030세대 금융 잔혹사’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

23일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이 신용회복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내용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20대 채무조정 신청자는 7594명으로 투자 광풍이 불기 이전인 2019년(5917명)보다 28.3%나 늘었다.

카드론에 주식담보대출 … 증권사 담보부족계좌 21%가 20·30대

세대별 증가율을 보면 고령화 등의 원인으로 60대 이상 증가율(31.8%)이 가장 높다. 문제는 다른 연령층에 비해 20대의 채무조정 신청 증가율이 두드러지는 데 있다. 채무조정 신청이 줄어든 40대(-0.7%)를 제외해도 30대(6%)와 50대(4%)와 비교해도 증가 폭이 크다.

신용회복위원회의 개인채무조정은 신속채무조정을 제외하면 연체 발생 이후에 신청할 수 있다. 따라서 늘어난 숫자는 이미 위기에 처한 청년인 셈이다. 특히 올해 상반기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꾸준히 올라가고, 주식과 코인 등의 가격이 하락한 점을 고려하면 올해 하반기에 20대 채무조정신청자는 더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국내 5대 증권사의 연령별 담보부족계좌를 받아 분석한 결과 2030의 비중은 21.3%(6월 24일 기준)에 달했다. 주식담보대출은 주로 주식투자에 익숙한 4050의 전유물이라 여겨졌지만 상당수의 젊은 세대 역시 주식을 담보로 빚을 내는 위험한 투자를 했다가 손실을 본 것이다.

이성수 유니인베스트 대표는 “2000년 초반 닷컴 버블 때도 젊은 투자자들이 카드론을 당겨서 투자하거나 외상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미수 풀베팅’을 하는 걸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고 말했다. 2002년 카드 사태는 소득이 없는 청년층에게 무작위로 카드를 발급해 주며, 카드빚에 쫓기는 청년층이 급증하며 사회적 문제가 됐다.

최근의 분위기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청년 세대의 공격적 투자→피해와 사회적 위기→국가의 구제’가 시차를 두고 비슷한 패턴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청년 특례 프로그램을 통해 신용 평점 하위 20% 이하인 청년(34세 이하)을 대상으로 최장 3년의 상환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3.25%의 저금리를 적용하기로 하며 ‘빚투’ 조장 논란 등이 빚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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