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방학에도 에너지 분야 열공, 지속가능성이 관건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23 00:01

업데이트 2022.07.23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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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8호 18면

첫 학기 마친 ‘한전공대’ 

공사 부지에서 내려다 본 학교 공사현장. 2025년까지 행정·강의동, 기숙사, 연구동 등이 단계별로 건설될 예정이다. 오유진 기자

공사 부지에서 내려다 본 학교 공사현장. 2025년까지 행정·강의동, 기숙사, 연구동 등이 단계별로 건설될 예정이다. 오유진 기자

지난달 28일 전남 나주시의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켄텍, KENTECH)는 대학 부지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여전히 허허벌판이었다. 학교 건물은 행정시설과 강의실이 위치한 1개 동이 전부다. 현재 학부 107명, 대학원 49명의 학생이 기존 골프텔을 리모델링한 기숙사와 강의동을 오가며 생활한다. 부지 곳곳에서는 신축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 수가 많은 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현 시설만으로도 큰 무리가 없다”고 전했다. 하지만 7월 현재 내년도 신입생이 사용할 기숙사조차 완공 여부도 불투명하다. 이 학교는 2025년 편제가 완성될 경우 학부생 400명, 대학원생 600명 규모의 소형 대학으로 자리를 잡을 계획이다.

강의실에 들어서니 일반 대학에서는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칠판, 교탁은 온데간데없고, 모든 책상은 정면이 아닌 학생들끼리 마주 볼 수 있게 삼각형으로 디자인되어 있다. 자리에 앉아 마이크에 대고 말을 하자 자동으로 카메라가 움직여 강의실 안의 모든 모니터에 얼굴이 떴다. 켄텍에서 자체 개발해 특허까지 출원한 액티브 러닝 클래스룸(ALC)이다.

허허벌판에 건물 1개동, 신축공사 한창

장현규(왼쪽) 켄텍 학생회장, 김수하 부학생회장이 액티브 러닝 클래스룸(ALC)에서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오유진 기자

장현규(왼쪽) 켄텍 학생회장, 김수하 부학생회장이 액티브 러닝 클래스룸(ALC)에서 시설을 살펴보고 있다. 오유진 기자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강의실에서는 켄텍의 교육철학이 녹아있다. 단순 이론식, 주입식 수업 대신 모든 수업을 탐구기반학습(IBL)으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켄텍 교육 혁신을 담당하는 김경 에너지공학부장은 “기존 대학과 유사한 또 하나의 대학이 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강의실”이라며 “19세기에 만들어진 강의실에서 20세기의 교수가 21세기 학생을 가르치는 대학 학습 환경을 전면 수정해 ‘학생 중심’의 교육환경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김 학부장은 몇 달간의 토론과 해외 대학 벤치마킹을 통해 기존 팀 기반 학습의 한계점을 해결하려 노력했다. 팀 프로젝트에서 낙오되는 학생은 없는지, 프로젝트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진 않은지 점검하기 위해 교실 곳곳에 인공지능(AI)을 활용했다. 강의실에서 발생하는 모든 음성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교수에게 전달되고,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학생을 일대일 밀착 지도할 수 있다.

다소 독특한 학사제도도 눈에 띈다. 한 학기에서 한 학년까지 자유롭게 수업을 듣는 자율전공은 타 대학에도 많지만, 4년 내내 전공이 없는 학교는 국내에서 켄텍이 유일하다. 학생들은 ▶에너지AI ▶에너지 신소재 ▶차세대 그리드 ▶수소에너지 ▶환경·기후기술 등 5개의 트랙을 자유롭게 오가며 원하는 강의를 수강한다. 김 학부장은 “전공 필수, 선택 등의 제약이 없어 학생들이 스스로 커리큘럼을 만드는 셈”이라며 “우리 학교에는 1등도, 꼴찌도 없다”고 말했다.

행정시설 및 강의실이 위치한 1호관 전경. 오유진 기자

행정시설 및 강의실이 위치한 1호관 전경. 오유진 기자

매 학기 수업 시작 전 공개되는 수업계획서도 이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첫 수업시간에 교수가 수업의 목표와 이를 위한 활동, 수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을 설명하면 그때부터 학생과 교수의 토론을 거쳐 수업계획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시험 횟수부터 현장체험 장소, 평가 방식까지 학생이 직접 개입해 설계한다. 미국의 올린 공대에서 벤치마킹해 켄텍 전 교과목에 도입된 GAPA(Goal-Activity-Products-Assessments) 수업설계 방식이다. 장현규 켄텍 학생회장은 “타 학교와 달리 학사 제도부터 교육 과정, 학습 환경 등을 학생과 교직원이 함께 꾸려갈 수 있는 환경”이라며 “알아서 배우고, 알아서 졸업한다는 느낌이 아닌 진정한 ‘학습’을 할 수 있는 학교”라고 전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대학가의 분위기가 얼어있는 반면 켄텍의 학내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방학인 지금도 70% 이상의 학생들이 학교에 잔류하며 영어 특강, 계절학기 등을 수강한다. 강민우 학년대표는 “학교가 전남 나주에 있다 보니 꿈꾸던 대학생활과는 다른 게 사실이지만 쉴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어 있어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전했다.

편의시설이 위치한 테슬라 커뮤니티 센터 내부. 오유진 기자

편의시설이 위치한 테슬라 커뮤니티 센터 내부. 오유진 기자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켄텍은 기숙형 학교(RC)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다. 영국 옥스퍼드, 미국 하버드 등에서 운영하는 RC는 학습과 생활을 통합한 공동체 교육이다. 과거 연세대학교 RC를 설계했던 김은정 RC센터장은 “전교생이 4년 내내 기숙사에 머문다는 이점을 활용한 교육”이라며 “학생 1명당 3명의 교수(담임교수, 전공지도교수, RC프로그램 교수)가 교내외 생활 전반을 지원해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첫 학기를 마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교수와 학생 관계도 마치 가족 같은 분위기다. 이날 김 센터장도 지나가던 학생에게 “머리스타일이 바뀌었네? 더 멋있어졌다”며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켄텍은 2017년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자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출발했다. 지난해 3월 ‘한국에너지공과대학교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한국전력과 전라남도·나주시, 산업통상자원부가 손잡고 세계 유일의 에너지 특화대학을 내세워 문을 열었다. 1년이 채 안 되는 준비 기간을 거쳐 지난 3월 개교해 올 6월로 첫 학기를 마쳤다. 하지만 지속가능성을 놓고 아직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국회는 특별법을 통해 한전이 지원·육성하고 산자부가 조정·감독하도록 정했다. 학교를 ‘특별법법인’으로 만들어 지자체, 공공기관,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길을 연 셈이다. 다만 한전과 정부의 지원 금액이나 규모가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지 않아 정책 방향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상황이다. 또 2020년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해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학교를 지원하게 만든 것에 대해 특혜 시비도 이어졌다. 전기요금의 3.7%로 조성하는 기금으로 특정 학교만 지원하는 것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드론으로 촬영한 학교 전경. 오유진 기자

드론으로 촬영한 학교 전경. 오유진 기자

한전과 지자체, 정부는 2031년까지 부지비를 포함한 1조6112억원을 투입해야 한다. 2020년만 해도 한전은 4조1000억원의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에 5조9000억원의 적자로 돌아선데 이어 올해에는 1분기에만 적자 규모가 7조8000억원으로 커졌다. 국제 유가, 석탄, 가스값 고공행진이 이어질 경우 올해 적자가 최대 30조원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정자립도가 각각 26%, 17%로 낮은 전라남도와 나주시도 앞으로 지원금액을 감당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켄텍과 유사한 포항공대(포스텍)는 포스코가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 없이 사업을 추진했고, 가장 최근 지어진 과학기술원인 유니스트의 경우 기업의 참여 없이 정부와 울산시, 울주군이 주도해서 만들었다. 장광재 입학센터장은 “학교 운영 방식에는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에너지 문제 해결과 인재 양성에 대한 필요성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라며 “과거 반도체 분야에 적극적으로 투자해 지금의 반도체 강국이 됐듯, 에너지 분야 또한 국가 차원에서 과감히 투자해 양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작은 규모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문제다. 포스텍은 1개 학부·11개 학과에서 매년 370명을, 카이스트는 7개 학부·27개 학과에서 860명을 선발한다. 재학 중인 대학원생만 각각 2400명, 7200명에 달한다. 매년 110명을 뽑는 켄텍이 화학·전기·원자력·기계 등을 망라하는 에너지 분야 융합 연구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켄텍 측은 미국의 올린공대도 학부생이 300명 규모지만 명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 큰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총장부터가 에너지 전문가가 아닌데다 이사회에 대학 운영에 전문성을 갖고 있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고 지적했다.

전공·이론 수업·커리큘럼 없어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방대학이 쇠퇴해가는 시점에서 재정자립이 어려운 학교가 살아남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방 대학들이 문을 닫고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이 굳이 또 하나의 대학을 연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미 지스트, 유니스트 등 동일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대학이 있는 상황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국가가 주도해서 특정 학교를 세계적인 명문대로 만들겠다는 것은 제국주의 시절에나 통하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덕환 교수 역시 “재학생이 수천명인 학교도 자립을 못하는데 한전공대가 경제적으로 자생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수하 켄텍 부학생회장은 “정치적 의도로 지어진 학교는 맞지만, 에너지에 대해 공부하려는 학생들까지 정치적으로 판단하진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 학부장도 “4년 뒤에도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비판은 그때 듣겠다”며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지켜봐 주신다면 그동안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인재들이 나올 것이라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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