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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라서 안돼? 쉰이니까 해!" 美구글 뚫은 토종 워킹맘 비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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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김경숙 구글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인생의 계단을 꾸준히 올라간다. 차근차근, 차곡차곡. 강정현 기자

정김경숙 구글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디렉터. 인생의 계단을 꾸준히 올라간다. 차근차근, 차곡차곡. 강정현 기자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쇼핑몰 의류 상점들을 돌아다니며 “두 유 해브 쟈거스?”라는 폭풍 질문을 하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면, 이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 구글 본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정김경숙 디렉터. 구글 본사에서 잘나가는 핵심 인재라고 해서 그가 영어가 한국어보다 편한 교포라고 생각하면 오산. 그는 일명 ‘토종’이다. 구글 코리아에서 일하다 쉰이 되던 2019년, 본사로 옮겨왔다.

그에게 영어 공부는 일상이다. 매일 공부하는 영어 표현을 정리한 노트는 최근, 1400 페이지를 돌파했다. 최근엔 한국에서 ‘조거 팬츠’로 불리는 바지를 운동할 때 입고 싶어 구하러 다니다가 미국식 표현은 ‘쟈거스(joggers)’라는 걸 깨닫고 실전 삼아 이곳 저곳에서 “쟈거스 있냐”는 질문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창피할 게 뭐 있어요, 새로운 표현을 배웠으면 써봐야죠”라며 “배움엔 끝이 없는 걸요”라는 그의 눈이 반짝였다. 진심으로 재미를 느끼는 사람만이 낼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가 바쁜 시간을 쪼개 방한한 건 영어뿐 아니라 자신의 인생 꿀팁을 가감없이 공유한 책, 『계속 가봅시다 남는 게 체력인데』(웅진지식하우스) 출판을 기념해서다. 부제는 ‘50대 구글 디렉터의 지치지 않고 인생을 키우는 기술’로 지었다. ‘체력’ 그리고 지치지 않고’ 다섯 글자에 핵심 비밀이 함축돼 있다.

정김경숙 디렉터에게 "오늘은 어떤 공부를 하셨나"고 물으니 바로 내놓은 메모지와 영어 공부 커뮤니티. 오른쪽 화면 공부방 이름, "계속 가봅시다"는 그의 인생 모토다. 전수진 기자,

정김경숙 디렉터에게 "오늘은 어떤 공부를 하셨나"고 물으니 바로 내놓은 메모지와 영어 공부 커뮤니티. 오른쪽 화면 공부방 이름, "계속 가봅시다"는 그의 인생 모토다. 전수진 기자,

조거 팬츠, 아니, 쟈거스를 사러 갔다는 일화에서 유추할 수 있듯, 그는 운동 매니어다. 매일 조깅은 안 하면 오히려 몸이 아프고, 등산을 좋아해 비록 고산병 떄문에 고생은 했지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완등도 해냈다. 물을 무서워한 그는 물을 피하는 대신 수영을 배웠다. 검도도 배우고 있다. 이쯤 되면 운동 천재아닌가 싶지만, 그는 “검도를 14년 배웠어도 경기에 나가면 30초만에 지기 일쑤”라며 웃는다. 그가 인터뷰 중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일단 해보는 거죠.” 일단 한 뒤엔 꾸준히 하는 방법을 찾는다.

못하면 지루하고, 지루하면 안 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 그는 “지루함은 지루함으로 극복해야 한다”며 “재미가 없더라도 나름의 루틴을 만들어 계속하는 것, 지금 당장 나아지지 않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일단 계속하는 힘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1400페이지의 영어 공부는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그는 “때론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고 그냥 기계적으로 몸을 움직이다보면 마음의 근력도 길러진다”고 덧붙였다. 민소매 차림의 그의 팔의 구릿빛 이두근이 아름다웠다. 그는 미국과 한국에서 대학원을 5곳 모두 끝마쳤고, 지금도 미국에서 홍보 관련 전문가 프로그램을 밟고 있다.

정김경숙 디렉터가 펴낸 책 표지.

정김경숙 디렉터가 펴낸 책 표지.

영어는 어떻게 공부하는지 물었다. 그에게 사실 영어는 그가 ”인생 최악의 실수“라고 부르는 뼈아픈 경험도 안겨줬다. 구글 입사 직후 첫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망쳤기 때문. 그러나 그는 쥐구멍을 찾는대신 자신의 실패를 성공의 밑거름으로 바꿨다. 실수담을 주변에, 스스로 퍼뜨렸다. “동료들에게 ‘나 이렇게 끔찍한 경험이 있었는데, 더 잘하고 싶으니 혹시 내가 잘못 말하는 거 있으면 알려달라’고 먼저 다가갔어요. 동료들이 회의 때 하는 말을 100% 이해하긴 어려우니까 질문이 있으면 제가 제일 먼저 하고요. 그날 새로 배운 표현은 어떻게든 실제 회의 등에서 써보는 걸 습관화 합니다. 외국어 공부는 머리뿐 아니라 입으로 하는 거니까요.”

50세에 구글 본사로 옮기는 선택은 어떻게 가능했던 건지 물었다. 그는 “‘쉰이니까 못하지’가 아니라, ‘쉰이니까 해야지, 지금 아니면 언제 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구글 한국 오피스에서 일정 정도 성장을 하고 나니 다음 단계로의 성장에 목말랐던 차, 구글 본사 홍보 부서에 해외 특파원 담당자가 없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본인이 꼭 해야 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다. 조직에 그런 자리가 있으면 확장성이 커지겠다는 생각에 제안을 했고, 회사에서 흔쾌히 받아들인 것. “아래의 의견을 바로 반영하다니 이 조직은 참 건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만 해도 제가 직접 그 자리에 지원할 생각은 못헀고, 트레킹 휴가를 떠났는데 문득, ‘내가 해볼까?’ 생각이 떠올랐어요. 바로 지원했고, 감사히 붙었죠.” 그는 이어 “새로운 환경에서, 그것도 영어로 나를 또다시 증명해야 했지만 일단 부딪쳐보자”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정김경숙 디렉터는 꾸준한 운동으로 몸과 마음 모두의 체력을 길렀다. 강정현 기자, 장소 협조 커피초이스

정김경숙 디렉터는 꾸준한 운동으로 몸과 마음 모두의 체력을 길렀다. 강정현 기자, 장소 협조 커피초이스

그의 앞으로의 꿈은 뭘까. 그는 “스타트업과 영어,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등의 제 경험을 살려 국내외에 모두 도움이 되는 삶을 꾸려가고 싶다”며 “먼 미래엔 비정부기구(NGO)에서도 인권을 위해 일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이번 책 수익금 역시 청소년 성소수자 NGO인 ‘띵동’이라는 단체에 기부된다고 한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이야기가 슈퍼우먼 신화로 읽히는 건 우려했다. 20대 중반인 아들도 장성했지만 그는 “처음부터 전업엄마들이 해주는 것처럼 해줄 수 없다고 포기했고, 귀를 닫았다”며 “아침시간에도 서로 바쁘니 아예 이모님에게 모든 걸 맡겼고, 대신 정기적으로 1박2일 동안 아이가 원하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집중 시간’을 온전히 주는 식으로 타협했다”고 말했다. 삶이 버거워 출산은커녕 결혼도 어렵게 느끼는 젊은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옮긴다.

“인생은 각양 각색입니다. 베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세요. 쓸데없는 걱정도 하지 마세요. 일단 하세요. 대신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과 '서포트 시스템'은 구축하시고요. 일단 하다보면 상황이, 환경이, 나 자신이 바뀔 수도 있고 시간이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걱정을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 꾸준히 할 수 있는 몸과 마음의 근력을 기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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