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민의 생각의 공화국

잘 먹고 잘사는 사회를 향하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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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세상만사가 깃든 음식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생존과 삶이 다르고, 말싸움과 대화가 다르듯이, 흡입과 식사는 다르다. 제대로 잘 먹는 일에는 온 세상이 달려 있다. 먹을 것을 얻는 과정은 곧 경제활동이니, 이 세상의 정치 경제가 이 먹는 일에 함축되어 있다. 아무도 굶주리지 않는 사회, 먹는 일을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그러한 이상사회까지 갈 길은 아직도 요원하다.

먹는 것은 단순히 위장 문제만은 아니다. 외모에도 영향을 끼친다. 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생긴 이후, 내가 음식을 가려 먹기 시작한 것은 단순히 건강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옆집 개가 사료를 바꾼 후 더 잘생겨졌기 때문이다. 음식을 가려 먹으면 나 같은 사람도 좀 멀끔해 보이지 않을까. 가려 먹은 사람의 육질은 탐스럽지 않던가. 잘 먹는 이상 사회가 도래하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잘생겨져 있을 것이다.

잘 먹는 건 삶 전체와 관계 있어
외모·마음·문명 등에 영향 미쳐
맛은 시대와 환경 따라 달라져
정치·경제 모든 활동의 축약판

잘 먹으면 기분과 머리 좋아져

김영민의 생각의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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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일은 단순히 외모 문제만은 아니다. 마음에도 영향을 끼친다. 잘 먹으면 기분도 좋아지고 머리도 잘 돌아간다. 내가 음식을 가려 먹는 것은 단순히 외모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옆집 개가 사료를 바꾼 후 더 영리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그릇된 판단을 일삼으면, 말하는 거다. 맛있는 걸 드세요, 그러면 생각이 바뀔지도 몰라요. 누가 오랫동안 우울해 하면 말하는 거다. 정성스러운 한 끼 식사가 당신을 구원할지도 몰라요. 잘 먹는 이상사회가 도래하면, 사람들은 좀 더 명랑해져 있을 것이다.

먹는 일은 단순히 마음 문제만은 아니다. 문명 전체와 관련 있다. 문명이 충분히 발달하지 않은 밥상머리에서는 식탐의 긴장과 공포가 감돈다. 어떤 이는 음식을 먹는 게 아니라 음식을 덮친다. 뭐든 갈비 뜯듯이 먹는다. 밥도 초콜릿도 아이스크림도 뜯는다. 커피도 뜯어 마신다. 음식을 흘리고 괴수처럼 울부짖는다. 어느 시인이 노래하지 않았던가,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폐허’라고. 문명 없이 식사했던 자리마다 폐허다. 특히 선짓국을 그렇게 먹고 있으면 흡혈귀 같아 보이니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 과도한 식탐을 부리면, 식사 후에 점잖게 묻는 거다. “이제 좀 정신이 돌아오셨어요?”

문명이란 결국 탁월함을 인정하고, 그 탁월함을 모든 이가 누리는 일이다. 음식의 세계에도 탁월함이 존재한다. 단순한 단맛으로 승부하는 식당은 하수다. 당분으로만 맛을 낸 음식을 먹고 나면, 결국 싸한 패배감이 찾아온다. 당뇨환자가 아이스크림 먹고 5분 후 느낀다는 서늘한 자책감이 찾아온다.

사치스럽다고 능사 아니야

그렇다고 비싸고 정교한 음식이 능사라는 건 아니다. 이른바 쾌락주의자 에피쿠로스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결핍으로 인한 고통이 사라지면, 단순한 음식도 우리에게 사치스러운 음식과 마찬가지의 쾌락을 준다. 빵과 물만으로도 그것을 필요로 하는 배고픈 사람에게 가장 큰 쾌락을 제공한다. 그러므로 사치스럽지 않고 단순한 음식에 익숙해지면, 완전한 건강이 찾아오고 생활에 꼭 필요한 것들에 주저하지 않게 된다.”

화려하고 정교한 음식으로 정평이 난 식당에서 매끼 먹다 보면, 그 정교함에 질린 나머지 허겁지겁 맨밥이나 컵라면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정교한 음식도 반복되면 그 맛을 즐기기 어려운 법, 소박한 음식을 먹어야 가끔 먹게 되는 정교한 음식의 참맛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정교한 음식을 간혹 먹어주어야 소박한 음식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이처럼 먹는 일에 온 세상이 달려 있으니, 잘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맛있게 먹으려면 일정한 허기가 기본이다. 만취한 자가 술맛을 모르듯, 배부른 자는 음식 맛을 모른다. 소동파(蘇東坡)는 ‘증장악(贈張鶚)’이란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허기진 뒤 먹으면 채소도 산해진미보다 맛있고, 배부른 뒤에는 고기반찬도 누가 어서 치워버렸으면 할 거요.”(夫已饑而食, 蔬食有過於八珍, 而旣飽之餘, 雖芻豢滿前, 唯恐其不待去也) 물론 허기가 능사는 아니다. 너무 허기진 상태에서 먹으면 참맛을 즐길 수 없다. 아무거나 다 맛있게 느껴지므로. 외로움에 사무친 사람이 주선하는 소개팅을 믿을 수 없듯이, 늘 허기진 사람이 추천하는 맛집은 믿을 수 없다. 당장의 허기가 가시고 나면,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할 것이다.

과식과 허기는 쌍둥이 같아

너무 허기지면 과식하게 된다. 나는 과식한다, 고로 존재한다! 무저갱(無底坑) 같은 위로 존재감을 과시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과식은 대체로 건강에 해롭다. 내가 과식할 때는 고민거리가 있을 때뿐이다. 배가 부르면 아무리 심각한 고민도 배부른 고민으로 느껴진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다이어트를 의식하라는 말은 아니다. 음식을 마주하면 음식에 진지해야 하는 법. 다이어트가 급하다면, 대장에 생긴 용종을 제거해서 몸무게를 줄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허기가 가시고 나면, 먹는 일이 단순히 미각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음식에도 일정한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다. 삼겹살이 무엇인지 모르면, 살은 살대로 지방은 지방대로 따로따로 먹게 된다. 먹는 일을 통해 지식이 늘어나기도 한다. 돼지 목살을 먹어보고 나서야, 돼지에게 목이 있다는 걸 알게 되기도 한다.

물론 먹는 일이 단지 지식 문제만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느낌의 영역이다. 그 느낌은 단순히 쓰고, 달고, 시고, 짜고의 사안만은 아니다. 식감 자체도 중요하다. 과일 중에서 딸기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그 특유의 식감 때문이다. 딸기는 씹을 때, 단감처럼 과육이 딱딱하여 강한 저항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고, 홍시나 무화과처럼 과육이 너무 연약하여 죄의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딱 적절하다.

음식은 경험 확대의 지름길

그래도 좋아하는 음식만 반복해서 먹는 것은 좋지 않다. 음식은 경험 확대의 지름길이다. 음식 선택에 과감할 필요가 있다. 호기심 충만한 사람들이 다양한 먹거리를 즐긴다. 언젠가 홍어 쉬폰 케이크나 홍어 아메리카노 같은 것도 한번 먹어보고 싶다. 음식을 과감하게 찾아다니다 보면, 맛있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한 기분마저 느낄 때가 온다. 언제였던가, 짜장면이 너무 맛있는 나머지 신비하게 느껴졌던 적이. 그렇게 맛있는 짜장면은 향정신성 약물로 분류되어야 한다.

하나 이상의 음식을 먹을 때는, 과정의 서사를 즐겨야 한다. 코스요리에서는 종적인 기승전결을 누리고, 한상차림에서는 거대한 화폭을 감상하는 자세를 갖는다. 물론 한상차림의 궁극은 뷔페다. 그 긴 음식 서사의 끝에 위치하는 것이 바로 디저트다. 디저트는 어떤 초과, 어떤 풍요를 상징한다. 당신 마음처럼 부드러운 푸딩을 입에 넣다 보면, 내 마음도 푸딩처럼 부드러워질 것이다. 방금의 식사가 그저 생존을 위한 단백질 흡입이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심오한 의미가 디저트에 있다.

음식은 풍족한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싸우게 되기 때문이다. 다 큰 어른이 음식 가지고 싸우면 깊은 자괴감이 든다. 식당에서도 고객이 마지막 한 점을 남길 수 있게 넉넉한 양을 제공하는 게 좋다. 그 한 점을 남김으로써 고객은 자신이 식탐의 노예가 아니라, 자제력을 갖춘 어엿한 성인이라는 자존심을 얻게 된다. 배부른 자의 헝그리 정신이라고나 할까. 음식을 너무 적게 주면, 그 소중한 자존심을 훼손하게 된다.

음식 맛은 결국 상상의 산물

잘 먹기 위해서는 누구와 먹느냐도 중요하다. 같이 먹는 상대에 따라 식욕이 크게 좌우된다. 배우자가 밥상머리에서 자기 콧구멍이 너무 크지 않느냐며 봐 달라고 한 이후, 한동안 식욕을 잃어버린 사람을 알고 있다. 그의 위장 속 무언가가 충격을 받아 그만 죽어버린 것이다. 너무 깨작거려도, 너무 음식을 탐해도 상대가 식욕을 잃을 수 있다. 먹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상대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가 되면 곤란하다. 밥 먹으면서 대화를 나눌 수 없으니까. 정말 음식에 고도로 집중하고 싶으면 혼자 먹는 것을 추천한다. 달리 미식가가 고독하겠는가.

같이 먹든 혼자 먹든, 먹는 공간도 중요하다. 맛있는 걸 먹다가 더러운 화장실에 다녀오면 입맛이 쓸 것이다. 인테리어가 음식과 어울리지 않으면 기분이 고양되지 않는다. 냉면의 명가 을지면옥이 장소를 옮기겠다고 하자 고객이 말했다. “하동관이 을지로에서 마지막 영업을 하던 날도 찾아가 맛을 봤는데, 결국 자리를 옮기면 맛이 변하더라. 지금 이 맛은 이 자리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마지막 한 그릇 먹으러 찾아왔다.”

공간이 바뀌면 음식 맛이 바뀐다는 데 동의한다. 맛은 결국 상상의 산물이므로. 그래서 식당까지의 동선, 식당 내부, 플레이팅, 음식 담는 그릇 등이 모두 중요하다. 배는 고픈데, 식욕은 없다? 이 세상 어딘가에 당신의 맛있는 상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을 것이다. 맛은 궁극적으로 시대와 환경에 의해 좌우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