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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좋은 일자리 늘어야 MZ세대-고령층 공존 가능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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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세대간 일자리 갈등 어떻게 푸나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

2015년 박근혜 정부가 정년연장으로 청년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논거에서 강력하게 추진한 임금피크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대법원의 판결이 지난 5월에 있었다.

대법원은 노조와의 합의를 통해 정년을 유지하되 55세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한 연구기관을 상대로 제기한 퇴직자의 임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를 한 원심을 확정했다. 연령만을 이유로 합리적 이유 없이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노조 또는 근로자 대표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해 무효라는 것이다.

노동시장 세대 갈등 갈수록 커져
청년층 실질 실업률은 20% 넘어
60세 이상 일자리는 증가 추세
규제·노동 개혁 해내느냐가 관건

박영범의 이코노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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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부는 “대법원 판결로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가 모두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으나,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이번 판결이 기업 부담을 가중하고 고용 불안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우려된다”고 밝혔다.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도 고령자고용법 위반으로 본 고등법원의 판단이 지난해 9월에 이미 있었다. 이 판결은 도입 절차를 주로 문제 삼기도 했지만, 과도한 임금삭감액 등으로 고령자고용법도 위반한 것으로 보았다.

2009년에 도입된 임금피크제에 관한 대법원의 판단이긴 하지만, 법적으로 강제된 정년 연장으로 정부 정책에 따라 2015년부터 임금피크제를 도입한 많은 기업에서 관련 분쟁이나 소송이 늘어날 전망이다. 정년제도가 있는 1인 이상 35만 개 사업장의 22%에서 임금피크제가 운용되고 있다. 운영방식, 도입 목적 등 유형이 다양해 많은 사업장에서의 혼란은 불가피하다.

대법원 판결로 임금피크제 제동 걸려

21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밝혔듯이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속도로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적인 법적 정년연장 논의가 불가피하다. 그런데 경직적 호봉제 임금체계의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확산에 제동이 걸리면서 정년연장 논의도 지지부진해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정년 연장과 함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조직에 새로운 피를 수혈하여 활력을 불어넣으려는 기업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최악의 청년 일자리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취업자 수는 2727만 3000명으로, 코로나 펜데믹으로 인한 최악의 고용상황을 벗어나면서 2019년보다 15만 명 늘어났다. 그러나 젊은 층(15~29세) 일자리는 같은 기간 6만8000명 줄었다. 반면에 세금이 투입되는 재정 일자리의 영향이 크지만, 60세 이상 일자리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70만5000명 증가했다. 2021년 말 기준으로 청년층이 느끼는 실질적 실업률인 확장 실업률은 여전히 20%에 가깝다. 비경제활동인구에서 구체적 이유 없이 일하지 않고 ‘쉬었음’이 차지하는 비중이 60세 이상을 제외하고는 청년층이 제일 높았다.

전체 인구의 35%(2019년 기준)를 차지하는 1980년대 초~2020년대 초 출생한 MZ세대가 노동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성과 배분을 둘러싼 노동시장에서의 세대 갈등이 커지고 있다. 평생직장이 이미 먼 나라의 이야기이고, 능력이 있고 기회가 되면 이직을 주저하지 않는 MZ세대는 자기주장을 관철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MZ세대에게 평생직장은 먼 나라 이야기

지난해 5월경 삼성전자의 입사 7년 차 직원 한 명이 사내 게시판에 인사팀의 임금 산정 오류를 노동부에 신고하고 부회장과 인사팀의 해명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보냈다는 글을 올려 화제가 된 바 있었다. SK하이닉스에서는 지난해 1월 초 성과급으로 연봉의 20%수준을 지급하겠다는 사측 발표에 대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분 직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입사 4년 차 직원이 “성과급 산정 기준을 투명하게 공개해 달라”고 요구하는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고 2만 8000명의 직원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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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카카오·넥슨 등 IT기업들도 노조들이 생겼다.  IT 업계 호황으로 IT 개발자들의 입지가 높아진 영향이 있지만 MZ세대들이 전면에 나서서 보다 높은 즉각적인 보상과 투명하고 합리적인 성과급 기준을 요구하면서 판교 밸리에 투쟁의 이미지가 강한 민주노총 소속 노조들이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성 노조에 대항하는 MZ세대 노조

생산직 노조가 주축인 제조 기업에서도 기존의 노조 방향에 반발해 사무직 중심의 노조가 생겨나고 있다. LG전자의 ‘사람 중심 사무직 노조’, 현대자동차 그룹의 ‘인재 존중 사무연구직 노조’, 서울교통공사 제3 노조인 ‘올(All)바른 노조’ 등이다. 이들 노조의 생산직, 혹은 근속연수가 높은 근로자 위주로 운영되는 노조와는 별개로 자신들 만의 방식으로 MZ세대의 요구를 관철하고자 한다. 현대자동차에서는 생산직 노조가 단체협상에서 정년연장을 요구하면서 노조 간에 갈등이 생기고 있다.

일자리, 성과 배분을 둘러싼 노동시장에서의 세대 간의 갈등이 줄어들기 위해서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청년들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야 한다.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는 대기업·공무원·공기업 등 공공부문 일자리에 있다. 문재인 정부에서 많이 늘어난 공무원·공공부문 일자리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최소한으로 늘어날 것이다. 새로운 정부는 공공부문의 경우 구조조정을 하는 공기업에 인센티브를 줄 방침이다.

대기업 일자리 약속, 규제 개혁돼야 실행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대기업들이 1000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5월 말 삼성·SK·LG·한화·GS·포스코가 공개한 계획에 따르면 이들 그룹이 향후 5년간 국내에서 신규 채용할 인원은 25만 명 이상이 될 전망이다. 대규모 투자에 따른 유발효과, 그리고 아직 발표하지 않은 기업들의 투자 계획을 고려하면 앞으로 5년은 고용시장에 훈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낙관은 금물이다.

정권이 출범할 때마다 재계에서 투자 및 고용 계획을 발표하였으나 그대로 실행된 경우는 드물다. 기업 친화적 정책 기조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가 규제 타파 등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실질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가가 향후 5년간 고용시장 훈풍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임금체계 혁신 등 노동시장 개혁도 필요하다. 임금체계가 호봉제 위주에서 성과·직무 중심으로 바뀌어야 세대 간 상생하는 노동시장이 만들어질 수 있다.

MZ세대는 호봉제 못 받아들여

한국경제연구원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2019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요 근로자의 63.4%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매년 오르는 호봉급이 주된 임금체계다. 직무 성격 및 난이도에 따라 직무급이 주된 임금체계인 근로자는 18.5%, 근로자의 능력, 숙련 정도 등이 중요한 직능급이 주된 임금체계인 근로자는 16.4%로 조사되었다.

주된 임금체계는 직종별로 다르다. 생산직의 경우 호봉제가 압도적이다. 호봉급의 비중이 95.1%이다. 사무직은 직능급과 호봉직이 많다. 직능급이 40.5%, 호봉급이 38.4%로 비슷하고 직무급이 20.9%이다. 연구기술직은 직무급이 49.6%로 절반 가까이 되고 호봉급 31.8%, 직능급 18.4%이다. 판매 서비스직은 호봉급 비중이 65.5%로 제일 높고 직무급 18.3%, 직능급 6.8%의 순이다.

성과·직무 중심의 임금체계가 임금체계 개편의 기본방향이나 성과 및 직무 평가의 합리성·공정성 제고가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IT 기업을 중심으로 성과급과 관련돼 MZ세대가 불만을 표출하고 노조를 결성하게 된 것은 현재의 성과 및 직무 평가 방식을 수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기업에서 호봉제 하에서 위로부터의 일방적 성과 평가 방식 직무급이나 성과급의 평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세계 1위의 컨설팅 회사 매켄지는 상대성을 기반으로 한 평가체계의 종식을 권고한 바 있다. GE·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성과 창출의 근간으로 인식되던 상대평가에 기준을 둔 성과 평가제도와 결별하고 있다.

노조 결성을 기피하면서 평가와 관련한 불만을 SNS·이메일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제기하는 MZ세대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인사제도의 혁신이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

박영범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