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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아들과의 캐치볼…아팠던 최동원, 그날 가장 웃었다

중앙일보

입력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전성기의 최동원. [사진 영화사 진]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전성기의 최동원. [사진 영화사 진]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11번 투수가 전광판에 등장했다. 유니폼 뒤에 적힌 이름은 최동원. 잠실야구장의 만원 관중이 일제히 환호했다. 영상 속 최동원이 특유의 역동적인 폼으로 불꽃 같은 공을 뿌리자 잠실구장 마운드에 서 있던 선동열이 와인드업을 시작했다. 가상과 현실을 잇는 두 '전설'의 릴레이 시구. 지난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KBO 올스타전의 서막이자 하이라이트였다.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32) 씨는 백스톱 뒤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다 솟구치는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최 씨는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생전 아버지 모습과 정말 비슷해서 깜짝 놀랐다. 아버지가 이 자리에 직접 오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 울컥했다"고 털어놨다.

아버지 최동원 대신 지난 16일 KBO 올스타전에 참석해 '레전드 40인' 트로피를 받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아들 최기호 씨. [뉴스1]

아버지 최동원 대신 지난 16일 KBO 올스타전에 참석해 '레전드 40인' 트로피를 받고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아들 최기호 씨. [뉴스1]

KBO는 올해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기념하는 '레전드 40인'을 선정했다.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한 뒤 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선수 4명을 올스타전에서 먼저 공개했다. 최동원은 '국보' 선동열에 이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3위 이종범, 4위 이승엽이 그 뒤를 따랐다.

다만 올스타전 초대장은 최동원 본인에게 닿지 못했다. 그는 2011년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일본에서 회사원으로 일하는 아들 최 씨가 짧은 휴가를 내고 잠시 귀국해 아버지 대신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 최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벌써 11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야구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아직도 아버지를 기억해주시고, 추억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게 느껴져서 뭉클했다"며 "항상 감사했지만, 더 큰 감동을 느꼈다"고 했다.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전성기의 최동원. [사진 영화사 진]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활짝 웃고 있는 전성기의 최동원. [사진 영화사 진]

최동원은 마운드에 불꽃 같은 이야기를 남긴 투수였다. 금테 안경 뒤로 날카로운 눈빛을 번뜩이면서 지칠 줄 모르고 공을 던졌다. 특히 1984년은 그 스토리의 하이라이트였다. 최동원은 그해 51경기에 등판해 284와 3분의 2이닝을 소화했다. 성적은 27승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 그해 잡은 삼진 223개는 이후 36년간 역대 단일 시즌 최다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최동원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냈다. 롯데의 창단 첫 우승은 최동원으로 시작해 최동원으로 끝났다. 그 누구도 범접하기 힘들, 불멸의 역사다.

최동원은 1985년 20승 8세이브, 평균자책점 1.92을 기록했고 1986년 19승 2세이브, 평균자책점 1.55을 올렸다. 그렇게 프로에서의 첫 5년간 1209와 3분의 1이닝(연 평균 241.6이닝)을 책임졌다. 그 여파로 팔 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전성기가 길지 않았지만,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투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되는 이유다. 롯데는 최동원이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등 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최동원의 '분신'인 최 씨는 영구결번식에도 아버지 대신 참석했다. 아버지가 은퇴하던 해 세상의 빛을 봤던 어린 아들이 처음으로 '투수 최동원'의 위용을 실감한 하루였다. 최 씨는 "내게는 그냥 다정하고, 때로는 엄격하기도 한 평범한 아버지셨다. 그런데 유명한 야구선수 분들께 전해 듣는 아버지는 또 다른 모습이셨다. 낯설면서도 신기하고, 또 자랑스러웠다"고 떠올렸다.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40인'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4인이 지난 16일 KBO 올스타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선동열,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씨, 허구연 KBO 총재, 이종범, 이승엽. [뉴스1]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40인'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4인이 지난 16일 KBO 올스타전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선동열,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씨, 허구연 KBO 총재, 이종범, 이승엽. [뉴스1]

최동원의 역사를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 하나 있다. '선동열'이다. 나이로는 5년 터울이고 프로 경력으로는 4년 선후배 사이였던 이들은 영남(최동원)과 호남(선동열), 연세대(최동원)와 고려대(선동열)의 대리전까지 펼친 필생의 맞수였다.

선수 시절 세 차례 맞대결 성적은 1승 1무 1패. 1986년 4월 첫 대결에서는 선동열이 완봉승을 올렸고, 최동원이 솔로홈런 하나를 맞아 1실점 완투패했다. 그해 8월에는 최동원이 선동열을 상대로 완봉승했고, 선동열은 자책점 없이 2실점(수비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 완투패했다.

1987년 5월 16일 세 번째 대결은 '퍼펙트게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됐을 만큼 극적이었다. 두 투수가 연장 15회까지 완투하면서 4시간 56분 혈전을 벌였다. 결과는 2-2 무승부. 이날 최동원은 공 209개, 선동열은 232개를 던졌다. 최 씨는 "야구를 직접 해보면, 공을 100개만 전력 투구해도 팔이 빠질 것 같고 쓰러질 것 같이 힘들다. 그런데 두 분 다 200개를 넘기면서 버티셨다"며 "양 팀 에이스로서 긴장감과 압박감을 모두 이겨내고 끝까지 책임감을 보여줬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다시 한번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선동열 감독님이 존경스러웠다"고 감탄했다.

최 씨는 올스타전에서 선동열과 같은 차를 타고 그라운드로 나왔다. 그 안에서 아버지 얘기를 주고 받다 또 한 번 눈물을 참아냈다. "선동열 감독님이 예전에 아버지가 어떤 분이셨는지, 또 아버지의 연투 능력, 자기 관리, 야구를 대하는 마음가짐 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세히 얘기해주셨다. 새삼 감동을 받아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고 했다.

2011년 9월 부산 사직구장에서 진행된 최동원 영구결번 기념식. [중앙포토]

2011년 9월 부산 사직구장에서 진행된 최동원 영구결번 기념식. [중앙포토]

많은 야구인은 최동원을 자존심 강한 천재 투수이자 냉철한 승부사로 기억한다. 아들이 떠올리는 아버지의 얼굴은 조금 다르다. 집 근처 공원에서 함께 캐치볼을 하며 즐거워하던, 고교시절 어느날의 함박웃음이 기억에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최 씨는 "그날 집에 있다가 갑자기 아버지와 캐치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하러 나가실래요?' 하니까 흔쾌히 '그러자' 하셨다. 우리 둘이 캐치볼을 하니 어느새 (아버지를 알아본) 주변 분들이 곁에 모여 응원을 해주시더라"며 웃었다.

당시 최동원은 캐치볼조차 힘들 만큼, 어깨에 만성 통증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도 아들의 공을 받고 아들을 향해 공을 던지며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아들은 "그 순간이 너무 즐거워서, 그 장면이 여전히 생생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에 오래 담아뒀던 그리움을 조심스럽게 털어놨다.

"평소엔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버지의 빈자리가 무척 커요. 여전히 투수 최동원을 그리워해주시는 많은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도 실은, 아버지가 정말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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