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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최동원·이종범·이승엽, 프로야구 40년 빛낸 '레전드 톱 4'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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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해태 유니폼을 입고 역투하는 '국보' 선동열. [중앙포토]

1992년 해태 유니폼을 입고 역투하는 '국보' 선동열. [중앙포토]

'국보' 선동열, '무쇠팔' 최동원, '바람의 아들' 이종범, '라이언 킹' 이승엽이 프로야구 KBO리그 40년을 빛낸 최고의 올스타 1~4위로 선정됐다.

KBO는 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KBO 올스타전에 앞서 리그 40주년을 기념해 선정한 '레전드 40인'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은 4명을 먼저 공개했다. 선정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 177명 가운데 전문가 투표(80%)와 팬 투표(20%) 결과를 합산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선수는 선동열 전 KIA 타이거즈 감독이다. 선동열은 전문가 투표 156표 중에서 155표(79.49점), 팬 투표 109만2432표 중 63만1489표(11.56점)를 받아 총점 91.05로 1위에 올랐다.

선동열은 명실상부한 KBO리그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힌다. 1985년 해태(현 KIA)에 입단한 뒤 1995년까지 통산 367경기에서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탈삼진 1698개를 기록하며 '해태 왕조'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통산 이닝당 출루허용(WHIP)은 0.80. KBO리그에서 1000이닝 투구한 투수 중 단연 1위다.

11시즌 중 5차례(1986·1987·1992·1993·1995)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0을 넘긴 시즌은 1994년(2.73)밖에 없다. 7년 연속(1985~1991)을 포함해 8번이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가져갔다. 특히 1993년 기록한 0.78은 역대 한 시즌 최저 평균자책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또 1986년에는 한 시즌 262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24승 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0.99, 탈삼진 214개, 완봉승 8회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선동열은 1995년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33세이브(평균자책점 0.49)를 올린 뒤 임대 선수로 일본 프로야구(주니치)에 진출했다. 이후 리그 정상의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한국에 복귀하지 않고 1999년 은퇴했다. KIA는 그 후 선동열의 등번호 18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1984년 홀로 4승을 책임지며 롯데의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고 최동원. [중앙포토]

1984년 홀로 4승을 책임지며 롯데의 우승을 확정한 뒤 기뻐하는 고 최동원. [중앙포토]

2위에 오른 최동원은 전문가 투표에서 156명 전원(80.00점)에게 표를 얻었다. 팬 투표에서도 54만5431표(9.99점)를 확보해 총점 89.99를 기록했다. 그는 1984년 51경기에서 284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27승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한 '무쇠팔'이었다. 그해 최동원이 잡은 삼진 223개는 지난해 두산 외국인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경신하기 전까지, 36년간 역대 한 시즌 최다 기록으로 자리를 지켰다. 무엇보다 최동원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내면서 롯데에 창단 첫 우승을 안기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별명에 걸맞게 KBO리그 통산 평균자책점 2위, 최다 완투(81회) 2위에 올라 있다.

그는 1985년에도 20승 8세이브를 따내면서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했고, 1986년엔 267이닝을 소화하면서 19승(평균자책점 1.55)을 올렸다. 그러나 프로에서의 첫 5년간 1209와 3분의 1이닝(평균 241.6이닝)을 책임진 여파로 이후 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1990년 삼성에서 은퇴했다. 전성기가 길지 않았는데도 그 누구보다 강했던 KBO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2011년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등번호 11번이 뒤늦게 롯데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해태 타이거즈 왕조를 연장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 [중앙포토]

해태 타이거즈 왕조를 연장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 [중앙포토]

이종범은 전문가 투표에서 149표(76.41점), 팬 투표에서 59만5140표(10.90점)를 얻어 총점 87.31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1993년 해태에서 데뷔한 그는 공·수·주를 가리지 않고 천재적인 야구 센스를 뽐냈다. 1990년대 네 차례 유격수 골든글러브를 따내면서 '해태 왕조'의 전성기를 연장한 일등공신이다. 특히 1994년에는 타율 0.393, 196안타, 113득점, 도루 84개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남겨 단숨에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한 시즌 도루 84개는 앞으로 누구도 깨지 못할 불멸의 기록으로 여겨진다. 또 타율 0.393은 프로야구 원년의 백인천(0.412) 이후 여전히 가장 높은 기록으로 남아 있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야구 준결승에서 8회 역전 2점 홈런을 터트린 뒤 환호하는 이승엽.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2008 베이징올림픽 일본과의 야구 준결승에서 8회 역전 2점 홈런을 터트린 뒤 환호하는 이승엽.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이승엽은 전문가 투표에서 149표(76.41점), 팬 투표에서 55만3741표(10.14점)으로 총점 86.55를 얻어 근소한 차이로 이종범의 뒤를 이었다. 프로야구 역대 최고 타자로 꼽히는 이승엽은 1997년 삼성에서 데뷔한 뒤 KBO리그 홈런의 역사를 다시 써왔다. 2003년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 기록을 세웠고, 통산 최다 홈런(464개) 기록을 남기고 2017년 은퇴했다. 한국 프로야구에 처음으로 '통산 400홈런'이라는 기록을 새긴 주인공이다.

또 최연소 100홈런, 최연소·최소경기 200홈런, 7시즌 연속 30홈런 등 다양한 홈런 관련 기록도 세웠다. 8년(2004~2011년) 동안 일본에서 뛰었는데도 이승엽을 따라잡을 홈런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골든글러브 10회 수상, 정규시즌 MVP 5회 수상도 역대 최다 기록이다. 국제대회, 특히 일본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이나 적시타를 때려내던 '국가대표 4번타자' 이승엽의 존재감도 독보적이다.

선동열, 이종범, 이승엽과 최동원의 아들 최기호 씨는 이날 잠실구장을 찾아 허구연 KBO 총재가 수여하는 트로피를 받았다. 이어 공모를 통해 뽑힌 10개 구단 대표 팬들과 함께 특별한 시구를 진행했다. 팬들이 각 구단 홈 구장에서 미리 촬영한 시구 영상이 릴레이 바통 터치를 하듯 하나씩 공개된 뒤 고 최동원이 특유의 역동적인 폼으로 공을 던지는 가상 시구 영상이 전광판에 상영됐다. 그러자 선동열이 마운드에서 드림 올스타 포수 김태군(삼성)을 향해 진짜 시구를 했고, 이 공이 유격수 이종범과 1루수 이승엽에게 차례로 전달되면서 올스타전의 시작을 알렸다. KBO는 이들 네 명 외에 다른 레전드 선수 36인도 앞으로 9주 동안 매주 4명씩 공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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