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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상철의 미래를 묻다

“우주의 비밀 풀어라” 달·화성에도 망원경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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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제임스웹 망원경으로 본 천문학의 미래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이하 웹망원경)은 역시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광학 파장만 보던 2.4m 지름의 허블 우주망원경과 달리 적외선 파장을 이용해 6.5m 지름의 거울로  본 우주의 모습은 우리의 시각과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첨단 망원경을 보유한 국가에서는 실력이 낮은 천문학자조차도 훌륭한 논문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순전히 성능이 뛰어난 첨단 망원경 덕분이다. 이제 향후 수십 년간은 웹망원경이 최첨단 자료를 생산하는 최고의 망원경이 될 것이다. 인류는 웹망원경을 통해 이제껏 알지 못했던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보고, 알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천문학자들은 이런 경우, 교과서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표현한다.

자연과학은 실험과 이론의 방법을 사용하는데, 천문학에서의 실험은 보는 것, 즉 관측이 전부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천문학은 늘 망원경으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먼저였고 그것에 대한 해석이 뒤따르는 순서였다. 망원경과 관측기기를 먼저 만드는 자, 더 크게 만드는 자, 그것을 우주에 올리는 자가 늘 앞설 수밖에 없는 게임이다.

131억년 전 ‘최초의 빛’ 사진으로
망원경 발달사가 천문학 발전사

지름 25m 마젤란망원경도 추진
한국 등 5개국 2030년 칠레 배치

“외계 행성에 생명체 살고 있을까”
누리호 성공 계기 한국도 잰걸음

지상망원경으론 볼 수 없는 것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찍은 용골자리 대성운(Carina Nebula) 사진. 지구에서 7600 광년 떨어져 있는 이 천체는 ‘별의 요람’이란 별명처럼 별들이 태어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어, 별의 형성 과정을 밝힐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NASA]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이 찍은 용골자리 대성운(Carina Nebula) 사진. 지구에서 7600 광년 떨어져 있는 이 천체는 ‘별의 요람’이란 별명처럼 별들이 태어나는 곳으로 잘 알려져 있어, 별의 형성 과정을 밝힐 열쇠로 주목받고 있다. [사진 NASA]

우주는 워낙 커서 직접 도달하기에 너무 멀다. 결국 태양계 바깥의 천체의 경우 정보 전달체인 ‘빛’을 통해 연구하고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이 빛을 받아들여 빛의 세기와 색 정보, 또 감마선부터 전파까지 빛의 파장에 따른 세기를 측정한다. 이런 자료와 물리학적 지식을 동원해 별의 온도·나이·질량 등을 계산한다.

나아가 별이 어떤 상태에 있는지, 은하라면 어떤 종류의 은하이고 어떤 진화 과정을 거쳤으며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 우리의 우주는 언제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진화해 현재에 이르렀으며 미래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연구하고자 한다.

우주의 빛은 우리 눈까지 오는 동안 지구 대기를 통과해야 한다. 지구 대기는 감마선·X선·자외선·적외선을 대부분 흡수하고, 가시광선과 전파 파장의 빛만 통과시켜 지표면까지 도달하게 한다. 그래서 갈릴레이 이후 광학망원경을 만들어 가시광선으로 우주를 관측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전파로도 우주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시작했다.

멀리 있거나 어두운 천체를 보려면 희미한 빛을 최대한 모아야, 즉 집광력을 키워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망원경의 렌즈나 오목거울의 지름을 크게 해야 한다. 1m보다 큰 렌즈는 제작이 어려워서 현재의 8∼10m 천체망원경은 모두 오목거울을 사용한다. 거울 크기를 키우니 집광력은 좋지만, 이 지상망원경은 여전히 대기가 일으키는 난류 때문에 우주를 선명하게 볼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세계 각국 다양한 망원경 계획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제임스웹 우주망원경.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우주망원경(Space Telescope)이다.  지름 2.4m의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상 약 550㎞ 높이에서 지구 궤도를 돌며 우주를 관측함으로써 대기를 극복한 영웅이 되었다. 천문학자 스피처는 허블 우주망원경처럼 광학 파장에서 우주를 관측하는 망원경 외에 적외선 파장을 볼 수 있는 적외선 우주망원경도 제안했다.

우주가 팽창하면서 우리로부터 빠르게 멀어지는 천체들이 내는 빛은 지구까지 오는 동안 파장이 길어진다. 그래서 우주의 가장 먼 곳을 보고자 한다면 파장이 더 긴 적외선 빛을 봐야 한다. 또한 막 태어난 별과 죽어가는 별 등은 적외선으로 봐야 보인다. 그래서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한, 30여 년 노력의 결정체가 바로 제임스웹 우주망원경이다. 이 망원경은 지름이 6.5m이고 적외선이 주 관측 파장대다. 태양이나 지구가 내는 적외선을 피하기 위해 지구에서 태양 반대편 150만㎞ 거리의 제2 라그랑주점에 자리 잡고 있다. 웹망원경은 131억 광년을 넘어 최초의 은하와 최초의 별이 빛을 방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134억∼135억 광년 거리까지 보려고 시도한다.

현재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우주망원경이 계획되고 있다. 지상에서 관측이 불가능해서 우주에 띄워 올려야만 하는 감마선·엑스선·자외선·적외선 파장은 물론이고, 지구 대기의 방해를 극복하기 위해 광학과 전파 파장의 우주망원경도 계획되고 있다. 유럽이 주도해 2023년 발사를 준비하는 1.2m 유클리드(Euclid) 우주망원경과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에너지부가 2027년 발사하고자 하는 광시야 적외선 탐사망원경인 2.4m 로만 우주망원경 등이 그것이다.

6개월마다 우주 샅샅이 관측

한국 역시 NASA와 함께 2024년 발사를 목표로 20㎝ 스피어엑스(SPHEREx)라는 적외선 영상분광 우주망원경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스피어엑스는 전천(全天) 우주망원경으로, 전체 하늘에 대한 영상분광 탐사로는 세계 최초다.

비록 거울은 작지만 근적외선 파장에서 전체 우주를 6개월마다 샅샅이 관측할 수 있고, 수억 개의 별과 은하의 사진뿐만 아니라 분광 관측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스피어엑스 이후에는 외계행성 관측에 특화된 우주망원경, 중력파 관측용 우주망원경, 전파 파장의 우주망원경, 초신성 관측용 자외선 우주망원경 등을 목표로 활발한 토론이 진행 중이다.

미래의 망원경은 지상망원경과 우주망원경이 상호 보완 및 경쟁하면서 함께 성장할 것이다. 미래의 지상망원경 중 대표적인 거대마젤란망원경(GMT)은 직경이 25m에 달한다. 한국 등 5개국의 13개 기관이 협력해 건설 중이며, 2030년경에 칠레 안데스 산맥에 설치될 예정이다. 아마 지금의 중학생들이 첫 사용자 세대가 될 것이다.

거대마젤란망원경에는 대기의 난류를 해결하는 적응광학이라는 기술이 개발돼 지상에서도 우주망원경에 버금가는 선명도를 얻을 수 있게 됐다. 미래에는 또 서로 떨어져 있는 망원경들이 모든 별빛을 합쳐서 인공적으로 더 큰 망원경이 관측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간섭계(VLBI) 기술이 사용될 것이다. 우주에서는 지구 대기 상공, 다섯 개의 라그랑주점 같은 우주공간 그리고 달 표면이나 화성에도 망원경이 건설될 것이다.

인간의 몸은 우주의 별에서 시작

코페르니쿠스 이후 관측천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20세기를 지나면서 인류는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혁명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1920년대까지 알고 있던 ‘우주’는 지금껏 ‘은하수’라 불러온 우리 은하였다. 이후 연구와 관측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는 우리 은하의 중심이 아닌 가장자리에 있고,  우리 은하 바깥에 수천억 개 이상의 또 다른 은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또한 이 모두를 포함하는 우주 전체는 그 크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팽창하고 있음을, 그것도 가속해서 팽창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별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한된 수명을 가지고 있으며, 인간의 몸이나 지구를 구성하는 물질은 태양이 태어나기 전에 존재하던 별들의 내부에서 만들어져 여기까지 왔다는 것과, 무거운 별들은 죽어갈 때 초신성이라는 거대한 폭발을 거치고 종국에는 중성자별이나 블랙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웹망원경 같은 큰 지름의 적외선 망원경을 통해 관측천문학자들은 우주의 진화를 비롯해 외계 행성계의 관측을 통해 생명체가 거주할 만한 대기가 있는지, 대기의 성분은 어떤지, 과연 우주에는 생명체는 우리뿐인지, 우리 은하와 안드로메다은하가 충돌한다는데 그 궁극은 어떻게 되는지, 지구에 충돌할 만한 소행성이나 혜성에 어떤 것이 있는지와 같은 의문들을 해결하려 한다.

일상 생활에 다양하게 활용

그렇다고 천문학이 인류의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의 관측천문학은 온갖 첨단 기술의 집합체이기에, 그 과정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기술들이 산업 및 생활 곳곳에서 다양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와이파이 기술, 디지털카메라에서 필름 역할을 하는 CCD, 자기공명영상(MRI) 등 의학용 기기들 다수와 분석방법이 천문학에서 비롯되거나 함께 사용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누리호 발사 성공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발사체 분야의 선두그룹에 진입했고, 세계에서 7번째로 무게 1톤 이상의 인공위성과 우주선을 자력으로 쏘아 올릴 수 있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아직 시작이다. 탑재체 개발은 별도의 연구 분야이고, 지구를 도는 궤도상에서의 자세 제어나 우주에서의 추진 등은 또 다른 세계다. 파장별로 다양한 우주망원경을 제작하고 운용할 수 있는 능력이 개발돼야 하고, 지상망원경보다 10배 이상의 예산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우주망원경과 지상망원경은 기존 선진국은 물론, 한국 역시 놓을 수 없는 분야다. 한국의 경제력과 기술력, 천문학에서의 수준은 아직 탁월하진 않지만 선두 그룹에 막 진입하는 단계이다. 지금의 흐름과 노력과 투자가 멈추지 않고 이루어진다면 한국이 후발 주자에서 선두 그룹에 진입했던 것과 같은 발전이 계속돼 한국만의 한국이 주도하는 지상망원경과 우주망원경을 보유하고 연구를 진두지휘하는 날이 10년 안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김상철

서울대 천문학과에서 학사·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2년부터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연구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교수로 학생을 지도하고 있다. 현재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 한국천문학회 이사와 동아시아천문대(EAO) 이사를 맡고 있다.

김상철 한국천문연구원 광학천문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