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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은경의 법률리뷰

의사조력자살이 존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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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

삶의 여정이 길어진 고령화사회,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인간 숙명이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건강수명과 기대수명 사이엔 10여년 격차도 있다 하니 인생 마지막은 고통을 친구 삼아, 때론 중병에 걸려 보내야 하는가 보다. 나도 노후를 고민하는 시간이 늘었다.

마침 안규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5일 “고령화사회로 가는 만큼 죽음의 금기시보단 존엄한 죽음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의사조력자살 법안을 발의했다. 임종 과정에 있지 않은 환자라고 하더라도 근원적인 회복 가능성이 없는 경우 본인의 의사로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할 필요성이 있고,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 환자들의 경우엔 담당 의사의 조력을 받아 삶을 종결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취지다.

죽음의 자기결정 오류 회복 불가
자살할 권리 속 위헌성 검토해야
살인을 존엄사로 포장할 위험성
초고령사회 선택지가 죽음인가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일러스트 =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사망이 임박한 상태라야 가능한 ‘연명의료 중단’을 넘어 적극적인 ‘의사조력 자살’까지 법제화한다는 계획이다. ‘삶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명분 삼아 자연적 죽음 외에, 의도적 죽음까지 존엄사로 규정했다. 그럴듯하게 들리긴 한다. 한마디로 ‘자살할 권리’를 준다는 건데, 죽음도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권리라는 인식이 과연 합당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혹여 정치인들이 초고령사회의 대안으로 자살이란 극단적 선택지까지 내놓은 건 아닌지 뒷맛이 씁쓸하다.

무엇보다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부르는 게 마음에 걸린다. 인간 생명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의든 타의든 침해할 수 없다는 신념까지 존엄에 반한다고 할 순 없지 않은가. 특히 생명에 관한 자기 결정의 오류는 돌이킬 수 없다. 삶의 종결 여부에 대한 판단능력이 원활치 않은 사람이 꽤 있을 거고,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속내를 숨기는 사람도 많을 거다.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란 기구를 통해 부작용을 막아본다 한들 본인의 내심까지 확인할 순 없다.

오래전, ‘공공의 적’이란 꽤 유명한 영화가 있었다. 유산 문제로 자식에게 살해당하는 엄마가 죽기 직전 살인의 흔적을 삼키는 장면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혹여 자식들 압력에 못 이겨 죽음에 내몰리는 노인은 없을까? 돈이 없으면 치료비 때문에 죽어야 하고, 돈이 있으면 물려줄 재산 축내지 않기 위해 죽어야 하는 부모들 말이다. 변호사들은 살인을 존엄사로 포장하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경제적인 이유로 죽음을 강요당하는 노인들도 적지 않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안타까운 건, 법안 발의 다음 날 노인단체 주도로 ‘적극적 안락사 도입’ 집회를 열고, 심지어 “치매 등 정신적 고통을 겪는 사람도 조력자살을 허용하라”고 요구했다는 뉴스도 있었다. 정신 질환이 있는 40대 딸을 간병해 온 80대 노모가 딸과 같이 투신한 사건, 25년간 돌본 식물인간 아들과 함께 생을 마감한 50대 아버지 사례를 들어 “회복할 수 없는 병이 가족을 살인자로 만든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건 국민 개개인에게 삶의 종지부를 찍는 방법으로 해결하라고 할 사안이 아니다.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인격적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의 마련을 촉구하는 게 맞지 않나.

대한민국 노인 인구가 조만간 100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우리도 고령화사회의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병상 인구 감소, 호스피스 정착이 시급하고, 죽음의 질을 관리할 인력도 필요하다. 특히 말기 환자의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줄이고 존엄하고 품위 있는 임종을 돕는 건 국가의 어젠다로 봐야지 국민에게 공을 넘길 일이 아니다.

발의 중인 법안은 축조 형식이 추상적이고, 남용 방지도 제한적이다. 국가의 생명보호 의무 포기, 위원회 결정의 형법(자살방조) 배제에 대한 위헌성도 큰 문제다. 공식적으로 자살할 수 있다는 건 국가가 공인한 제도를 옵션으로 고려하란 뜻이니 자살예방법과의 규범적 충돌이 발생하고, 개인이 본인과 타인에 대한 실존적 유용성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규범구조라 ‘주관화의 위험’이 상존한다.

나는 정치인들이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마치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게 영 못마땅하다. 공동체의 돌봄과 관심에 초점을 맞춘 법안은 사치로 보나. 인간존엄성의 코어인 생명권 앞에 고통의 경감, 가족의 부담 같은 공리주의의 잣대를 들이대고, 한술 더 떠 존엄이란 말로 미화하는 건 진중치 못한 태도다. 적어도 의사조력자살을 존엄사로 부르지 말아야 할 이유다.

이은경 법무법인 산지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