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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 소리 나는 호박들의 향연…쿠사마 작품 40점 한자리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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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수 천개의 거울 타일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붙여 만든 조각 ‘반짝이는 호박’, 높이 127㎝, 2021. [뉴시스]

수 천개의 거울 타일을 모자이크 기법으로 붙여 만든 조각 ‘반짝이는 호박’, 높이 127㎝, 2021. [뉴시스]

서울 영동대로 S타워 1층 여기저기에 다양한 색깔의 둥근 호박이 놓였다. 손바닥만 한 것부터 사람 크기까지 다양하다. 이 ‘호박’들은 보험가액이 400억원이다. 국내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는 쿠사마 야요이(93) 작품을 한데 모으니 ‘억’ 소리가 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호박의 향연이다.

15일 개막한 글로벌세아그룹의 문화공간 S2A 개관전 ‘쿠사마 야요이: 영원한 여정’에는 쿠사마의 1970년대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회화·조각·판화 40여점이 나왔다. 해바라기, 금붕어도 있지만, 대부분 작가의 시그니처 소재인 호박이다. 전시는 김웅기(71) 글로벌세아그룹 회장의 소장품 2점 등 국내 개인 컬렉터 10여명의 소장품으로 구성됐다.

글로벌세아그룹은 1986년 김 회장이 창업한 세아상역이 모태다. 현재 계열사는 10여개로, 지난해 매출은 4조2500억원. 특히 2018년 STX중공업 플랜트 사업 부문, 2019년 국내 1위 골판지 업체 태림페이퍼와 태림포장을 인수했고, 최근 쌍용건설 인수전에 참여해 이름이 알려졌다.

‘호박’ 그림을 보는 관람객. [뉴시스]

‘호박’ 그림을 보는 관람객. [뉴시스]

김 회장은 이번에 김환기 ‘우주’의 소장자로 밝혀져 화제를 모았다. 그간 미술계 다른 인물이 낙찰자 행세를 했다. ‘우주’는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됐는데, 한국 미술품 중 첫 100억원대 작품이다. S2A 소육영 디렉터는 “김환기 ‘우주’에 대한 관심이 높아 다음 전시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번 전시엔 보험가액만 200억원인 100호 크기 노란색 ‘호박’과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에서 국내 시장 작가 최고 낙찰가(54억5000만원)를 기록한 50호 크기의 1981년작 ‘호박’도 나왔다. 지난해 경매시장에서 쿠사마 작품은 138억원어치가 낙찰됐다. 소 디렉터는 “호박이 많이 전시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노랑도 다 같은 노랑이 아니다. 작가가 그 안에서 호박 모양, 무늬, 색상, 바탕의 그물 무늬 등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꽃’, 캔버스에 아크릴, 45.3x38㎝, 2006.

‘꽃’, 캔버스에 아크릴, 45.3x38㎝, 2006.

해바라기도 작가가 즐겨 그린 소재다. 이번 전시에 나온 해바라기는 디테일이 뛰어나고 쿠사마 작품 중 색을 가장 많이 쓴 작품으로 눈길을 끈다. 또 점무늬 대신 수천 개의 거울 타일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제작한 ‘반짝이는 호박’(높이 127㎝) 조각도 나왔다.

전시작의 절반은 판화다. 최근 젊은 층이 미술품 수집에 뛰어들면서 판화 수요가 늘었다. 과거엔 유화만 수집 대상으로 여겨졌으나, 요즘 30, 40대 컬렉터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면 판화라도 소장하겠다”는 분위기다. 판화 가격도 크게 올라 이번 전시에 나온 1992년도 노란 호박 판화는 경매 당시 시작가가 2억2000만원이었다.

전시작 중 김 회장의 소장품은 아크릴로 채색된 손바닥 크기의 ‘초록 호박’(1993,15.8x22.7㎝)과 ‘6월의 정원’ (1988. 45.5x37.9㎝)이다. 미술품 수집을 시작하며 처음 구입한 작품이다. 김 회장은 전시 인사말에서 “작가에 문외한이었던 내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처음 보는 쿠사마 작품 2점을 선택했다”고 전했다.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소장품 ‘호박’, 캔버스에 아크릴, 15.8x22.7㎝, 1993. 이은주 기자

김웅기 글로벌세아 회장 소장품 ‘호박’, 캔버스에 아크릴, 15.8x22.7㎝, 1993. 이은주 기자

쿠사마는 1929년생으로 올해 93세다. 부모님이 종자 농장을 경영해 다양한 꽃과 호박을 보며 자랐다. 10세 무렵부터 물방울과 그물 무늬를 그렸고, 57~72년 미국 뉴욕에서 조각, 패션, 퍼포먼스를 넘나들었다. 77년 일본에 돌아와 48세부터 현재까지 입원 중인 정신병원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작업해왔다.

반복되는 땡땡이와 그물 등 작품에 등장하는 패턴은 그가 앓아온 불안신경증, 강박, 편집증과 관계있다. 그는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곤혹스러운 병이 원인”이라며 “똑같은 영상이 자꾸 밀려오는 공포”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작품 창작이 자신에게는 강박과 환각을 치유하는 행위라는 얘기다.

컬렉터는 왜 그의 그림에 열광할까. 소 디렉터는 “야요이는 다양한 작업을 아우르며 자기만의 독특한 화업을 달성했다”며 “호박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활용해 정교한 디테일 표현으로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또 “투자 측면에서도 가격이 계속 오르고, 컬렉터 층이 국내외에 널리 분포한 점이 강점”이라고 덧붙였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제주 본태박물관에 쿠사마 작품이 다수 전시돼 있다. 현재 쿠사마 개인전은 일본, 이스라엘, 미국에서 열리고 있으며, 9월 홍콩에서 대규모 전시가 열릴 예정이다. 전시는 9월 14일까지. 일·월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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