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데이 칼럼] 나만의 맞춤 큐레이션을 꿈꾸며

중앙선데이

입력 2022.07.16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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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7호 31면

정여울 작가

정여울 작가

언제부턴가 큐레이션이라는 단어가 미술뿐 아니라 쇼핑몰, 웹사이트, 뉴스, 강연, 패션, 음식, 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상품과 콘텐츠를 큐레이션(선별)해야 할 것만 같은, 숨가쁜 시대다. 정보의 홍수를 넘어 정보의 대혼란을 겪고 있는 현대인에게는 불가피하게 온갖 정보의 선별작업이 필요하다. 안타까운 것은 온갖 큐레이션조차 홍보대상이 됨으로써, 전문가적 성찰을 담은 선별과정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가성비를 따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큐레이션의 과정이 아닌 결과만을 손쉽게 얻어 내려 하면, 타인의 안목이 아닌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지게 된다. 이용자의 취향에 맞춰 읽을거리를 골라 주는 뉴스큐레이션(newscuration)이나 넷플릭스의 추천콘텐츠에 의존하면,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마음으로 느끼는 능력이 퇴화되지 않을까.

빅데이터를 통해 나의 취향이 분석되어 나에게 꼭 맞는 콘텐츠를 추천해 주는 큐레이션은 우리 두뇌의 온갖 편견과 확증편향을 강화시킬 위험이 높다. 무엇보다도 큐레이션의 목표가 소비자를 향한 마케팅이나 설득이라는 점이 우려스럽다. 더 잘 팔리는 책을 고르기 위한 북큐레이션을 하다 보면 한 명 한 명의 소중한 독자를 그저 소비자로 바라보게 되고, 재테크의 관점에서 미술품을 바라보게 되면 작품의 진정한 아름다움보다는 상품으로서의 교환가치를 계산하게 된다. 나는 우리가 대기업이나 유명인사의 큐레이션에 의존하기보다는 ‘나의 눈과 귀, 나의 결단과 직감’을 믿고 진정으로 사랑할 대상을 직접 찾아내는 감성의 훈련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정보홍수시대에 선별 필요하지만
스스로 느끼는 능력 퇴화할 수도
내 취향 분석당하지 않으려면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 지켜야
선데이 칼럼 7/16

선데이 칼럼 7/16

큐레이션은 대상 하나하나를 의미 있게 바라보기보다는 덜어내기와 쳐내기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든 덜 중요한 것을 가려내어 최고의 가성비를 뽑아내려는 상업적 큐레이션은 모든 대상을 그래도 의미 있게 바라보려 안간힘 쓰는, 우리 안의 빛나는 순수를 빼앗아 간다. 나는 위대한 책들로부터도 많이 배웠지만 좀 모자란 듯한 책으로부터도 많이 배웠다. 뛰어난 걸작 영화로부터도 감동받았지만, 별점 테러를 받은 그저 그런 영화들로부터도 뜻밖의 깨달음을 얻었다. 나에게 반짝이는 감수성을 선물한 수많은 책과 영화와 음악과 미술작품은 그것이 베스트셀러이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하나 우리 인류가 만들어 낸 소중한 작품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B급 콘텐츠에조차 자기만의 아우라가 있고, 아무도 거들떠본 적 없는 독립영화야말로 천재의 산실일 수 있다. 권위 있는 큐레이션에 의해 추방되고 배제된 작품들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소중히 여겨야 할 문화적 자산일 수 있다.

그렇다면 ‘나를 믿고 시작하는 나만의 큐레이션’을 위해서는 어떤 훈련이 필요할까. 첫째, 온갖 전문가들이 추천한 최고의 작품이 아니더라도 ‘내가 나의 언어로 내 감동을 설명할 수 있는 작품’을 천천히 찾아보는 것이다. 둘째, 교환가치나 가성비가 아니라 사용가치와 진정한 심리적 가치를 평가할 줄 아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섯 개의 작품 중에서 내게 맞는 작품 딱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다섯 개의 작품을 빠짐없이 보고 나의 언어로, 나의 마음으로, 그 모든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셋째, 틀릴 자유, 망가질 자유, 방황할 자유를 느껴보자.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만 급하게 돌아볼 것이 아니라, 무작정 ‘소설’이나 ‘에세이’ 코너로 돌진하여 내게 감동을 주는 문장을 기어이 찾아낼 때까지 서점에서 버텨 보는 것이다. 멋진 서점이나 도서관은 아름다운 책들의 숲속을 거리낌 없이 방황할 자유를 선물한다. 무작정 아무 책이나 읽고 또 읽을 자유를 즐겨 보는 것이다. ‘반드시 성공해야만 하는 나’의 미래를 레고모형처럼 철저히 조립할 것이 아니라, 틀려도 괜찮고, 망가져도 괜찮고, 방황해도 괜찮은 나를 만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발 빠르게 미리 다 고른 책’을 선물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책을 천천히 고를 시간을 주고 왜 그 책을 골랐는지 이야기해 볼 기회를 주는 것이다. 대단한 책 딱 하나만 골라내는 큐레이션과 반대로, 나는 아무것도 배제하지 않는 ‘전작주의자(한 작가의 모든 작품을 빠짐없이 읽고 그의 작품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의 길을 선택하고 싶다. 나는 요즘 김훈 작가의 『저만치 혼자서』에 푹 빠져 그의 모든 작품을 처음부터 다시 읽는 행복한 전작주의자의 꿈을 꾸고 있다. 발터 벤야민, 버지니아 울프, 카를 구스타프 융, 김소연, 권여선, 윤이형은 내 머릿속에서 항상 펼쳐져 있는 책갈피의 주인공들이다. 나도 모르게 세 번이나 읽은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다. 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추천콘텐츠를 일부러 피하는데, 내 취향이 거대기업에 분석당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영혼을 도둑맞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 어떤 통계로도 분석당하지 않는 마음, 분류당하거나 통계화되지 않는 자기만의 독특한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저마다 지켜야 할 ‘나다움’이 아닐까. 내가 단 한 번이라도 사랑했던 누군가의 손길이 닿은 그 모든 것들은, 끝내 빠짐없이, 모든 부분이 소중하니까. 우리가 사랑했던 모든 것은 끝내 눈부시게 빛나니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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