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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위기에 이탈리아 '휘청'…총리 사의, 조기 총선 가능성

중앙일보

입력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에너지·생활비 위기가 지속하는 와중에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가 14일(현지시간) 사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연립정부가 붕괴 위기에 빠졌다. 세르조 마타렐라 대통령이 드라기 총리의 사임을 반려했으나 조기 총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고 로이터·AFP 통신 등 외신이 보도했다.

드라기 총리, 최대 정당 '오성운동' 대립에 사임 선언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드라기 총리는 내각회의에서 사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원내 최대 정당인 범좌파 오성운동(M5S)이 에너지 대란으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는 260억 유로(약 34조2376억 원) 규모의 민생지원 법안에 대한 상원의 내각 신임 투표에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M5S는 해당 법안의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며 반대 입장을 보였다.

M5S 불참에도 해당 법안은 통과됐지만 드라기 총리는 "이 정부를 지지해 온 국가적인 연대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사임에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마타렐라 대통령은 바로 사임서를 반려하고 드라기 총리에게 정국 위기 상황을 의회에 설명하고 해법을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따라 드라기 총리는 오는 20일 상·하원에 연이어 출석해 현 정국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이날 드라기 내각의 의회 과반 점유 여부를 확인하는 별도의 신임 표결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가디언은 이탈리아의 프란체스코 갈리에티 정치평론가를 인용해 "다음 주에 드라기 총리에 대한 신임 투표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는데, M5S의 지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M5S를 이끄는 주세페 콘테 전 총리는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에 반대하며 드라기 총리와 각을 세워왔다. 2009년 창당한 M5S는 지난 2018년 총선에서 득표율 33%로 제1당으로 부상했지만 현재 지지율이 11%까지 떨어졌다. 지난달에는 M5S 소속 루이지 디 마이오 외무장관이 탈당하고 드라기 총리를 지지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등 내홍을 겪었다.

에너지·생활비 위기인데, 조기 총선 열릴까

지난달 23일 이탈리아 로마의 한 주유소에 경유(L당 2.02유로)와 휘발유(L당 2.06유로) 가격이 적혀있다. 신화=연합뉴스

지난달 23일 이탈리아 로마의 한 주유소에 경유(L당 2.02유로)와 휘발유(L당 2.06유로) 가격이 적혀있다. 신화=연합뉴스

드라기 총리가 신임 투표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면 올가을 조기 총선을 치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9∼10월은 차기 년도 예산안을 수립하는 중요한 시기인지라 이탈리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한 번도 가을 총선을 실시한 적이 없다. 예정대로라면 다음 총선은 내년 초에 열린다.

마타렐라 대통령이 드라기 총리의 사임서를 반려한 것과 관련해 현지 정가에서는 드라기 총리가 내년 총선까지 총리직을 맡아주길 바란다는 해석이 나왔다. 중도우파 전진이탈리아, 지난달 M5S에서 나온 신당 등 몇몇 정당들은 마타렐라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했다고 CNN이 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가격 상승과 생활비 문제가 심각해지고 코로나19 재확산까지 겹치는 등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조기 총선을 치르는 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드라기 총리가 물러나면 유럽의 불안정화를 촉발할 수 있다는 위기론도 제기됐다. 폴리티코는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집권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재선했으나 총선 과반 실패로 세력이 약해진 상황이라 유럽에서 드라기 총리 역할이 가장 중요해졌다"면서 "드라기 총리가 러시아 석유·가스 가격 상한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등 현재 유럽 지도자 사이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서 사임 시 유럽 전체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출신인 드라기 총리는 한 번도 선거에 나서본 적이 없다. 지난해 2월 연정 붕괴로 사임한 콘테 전 총리의 후임으로 실무형 관료 내각을 이끌었다. 이후 코로나19 사태와 경제 위기 등 현안에 무난하게 대응해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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