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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포옹, 캐나다 먼산, 한국엔 무덤덤…사진속 中왕이 책략 [사진을 보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 때로 말보다 더 깊은 메시지를 전하는 이미지의 시대. [사진을 보자]는 국제뉴스를 담은 사진 속 흥미로운 뒷얘기들을 펼쳐드립니다.

 지난 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지난 8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 레트노 마르수디 인도네시아 외교장관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

지난 7~9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영국과 일본, 튀르키예(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브라질, 멕시코를 제외한 14개국 외교장관, 유럽연합(EU) 고위대표와 일대일 회담을 가졌다. 중국 외교부는 각국 회담이 끝난 뒤 사진과 함께 회담 자료를 배포했다. 각 사진 속 우연히 혹은 계산된 왕이 부장의 모습에서 현재 중국 외교 관계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버선발’ 호의, 유럽ㆍ중동

8일 호세프 보렐 EU 외교ㆍ안보 정책 고위대표와 왕이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호세프 보렐 EU 외교ㆍ안보 정책 고위대표와 왕이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15차례에 걸친 단독 회담 중 왕이 부장의 표정이 가장 밝았던 건 호세프 보렐 EU 외교ㆍ안보 정책 고위대표를 만날 때였다. 왕 부장은 양팔을 강하게 붙잡으며 눈이 안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이어 카메라 앞에서 등 뒤를 껴안으며 친분을 과시했다. 미ㆍ중 갈등 속 EU와의 관계 강화가 시급한 중국의 입장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보렐 대표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중국의 평화적 역할을 촉구했고 왕 부장은 “중국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시종일관 사태의 옳고 그름에 따라 평화 실현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중국 입장을 변호했다.

8일 보프커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보프커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왕 부장은 EU 국가 중 보프커 훅스트라 네덜란드 외무부 장관과 회담에서 제일 환하게 웃었다. 미국은 중국의 반도체 기술 개발을 막기 위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네덜란드 ASML사에  장비 수출을 중단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중국 입장에서 반드시 들여와야 하는 장비인데 아직 ASML사는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중국이 네덜란드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의 회담은 중국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독회담이었다. 5시간에 걸쳐 진행됐고 사진만 6장이 실렸다.

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9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유일하게 두 사람이 바짝 붙어 걸으며 대화하는 사진을 맨 앞에 내세웠는데 수주 내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사이에 정상회담이 예고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확대, 인도·태평양 동맹국 확장, 관세 인하, 대만 문제 등을 두고 심도있는 대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눈에 띄는 건 모두 왕 부장이 말하고 블링컨 장관은 경청하는 사진만 실렸다는 점이다.

8일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외교장관에 대해서도 호의적이었다. 왕이 부장은 마스크를 벗고 악수를 하면서 등을 감싸 안았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사우디를 포함해 중국은 중동국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날 왕 부장은 “시진핑 주석은 양국 관계를 항상 전략적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으며 사우디 내정에 대한 어떠한 간섭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8일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싱가포르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싱가포르는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홍콩 반환 25주년 기념식에 시진핑 주석에 축전을 보낸 유일한 국가였다. 왕이 부장은 비비안 발라크리쉬난 외교장관과 어깨를 맞댈 만큼 바짝 붙어 악수했다.

‘미묘한’ 중립, 한국ㆍ러시아

7일 박진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7일 박진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박진 외교장관을 만난 왕이 부장의 표정은 무덤덤하다. 사진도 회담 장면만 실었다. 3장 중 마지막 사진에선 박 장관의 다소 어색한 웃음이 걸린다. 왕 부장은 무표정하다. 왕 부장은 이날 “상호존중이 양국 관계에 중요하다”며 “냉전 정신의 부활을 막고 다자주의 실천을 강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대로 박 장관은 모두 발언에서부터 “평등하게 협력하는 좋은 동반자가 돼야 성숙한 한·중 관계를 쌓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과 거리를 좁히는 한국을 경계하는 중국, 평등한 협력을 요구하는 한국 사이의 외교적 긴장감이 사진에 담겼다.

7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7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똣밖이었던 건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과 만난 왕이 부장의 모습이다. 마스크를 끼지 않고 악수를 했지만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 반대로 라브로프 장관이 왕 부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민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중국은 러시아에 대한 반대 표시를 하지 않는 방식으로 암묵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국제무대에서 왕 부장은 미국,EU 국가들의 시선을 감안해 러시아와 눈에 띄게 등거리를 유지하려는 모습이다. 이날 왕이 부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가 느끼는 안보적 우려를 이해한다”는 선까지 발언하는 데 그쳤다.

8일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안나레나 베어복 독일 외무장관, 카트린 콜로나 프랑스 외교장관과 잇따라 만난 왕이 부장은 마스크를 낀 채 팔꿈치만 부딪혔다. 특히 프랑스 외교장관은 왕 부장이 팔꿈치로 다가가려 하자 뒤로 빠지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메르켈 총리 퇴임 후 독일과 중국의 관계는 다소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불편한’ 캐나다ㆍ호주ㆍ인도

8일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15차례 회담 중 왕 부장의 불편한 심기가 드러난 건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교장관과의 회담 사진에서다. 왕 부장은 다른 곳을 바라보며 팔꿈치를 마주친다. 그마저도 나란히 서 있지도 않았다. 캐나다는 지난 2018년 미국의 요청으로 화웨이 멍완저우 부회장을 밴쿠버 공항에서 체포했다 3년여만인 지난해 9월 석방했다. 지난달엔 중국 전투기가 동중국해 해상에서 캐나다 해상 초계기에 6m까지 초근접 비행을 해 쥐스탱 트뤼도 총리가 “무책임하고 도발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8일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8일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호주 역시 수년 내 중국과 관계가 가장 악화된 국가다. 왕이 부장은 페니 웡 호주 외교장관과 팔꿈치만 맞부딪쳤다. 2019년 코로나19 발생 당시 중국을 강하게 비판했고 이후 중국은 호주의 석탄 수입을 금지했다.

7일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7일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 [중국 외교부]

자이샨카르 인도 외교부장관과 만난 왕이 부장은 악수를 하며 더 가깝게 다가섰다. 하지만 인도 장관이 오히려 팔을 빼고 옆으로 물러섰다. 지난해 국경 무장 충돌 사태까지 벌어진 인도가 불편하면서도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인도에 밀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국은 공을 들이지만 인도가 더 경계하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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